“한물간 히틀러 ‘노잼’…나는 재미 추종자”
드류 배리모어의 전 남편이었던 톰 그린은 갖가지 기행으로 화제를 몰고다니는 TV 토크쇼의 ‘악동’이다.
2000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MTV의 인기 프로그램이던 <톰 그린 쇼>가 3월에 갑자기 중단되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쇼엔 톰 그린이 거리에 나가 저지르는 엉뚱한 행동들을 담은 동영상 코너가 있었는데, 그 내용이 문제가 되어 잘나가던 TV 쇼가 갑자기 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방송망을 타진 못했지만 톰 그린이 촬영했다는 내용에 대한 추측들이 있었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톰 그린 나치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거룩한 의식인 바르미츠바(13세가 된 소년의 성인식)가 열리고 있는 유대교 회당에서, 히틀러 분장을 한 톰 그린이 히틀러 흉내를 내며 의식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의식이 치러지고 있는 곳에 난입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유대인들에겐 살아있는 악마였던 히틀러 분장을 하고 그곳에 들어갔다는 건, 나치 추종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 네티즌들의 주장이었다. 어린아이의 생일 잔치였다는 설도 있었지만 ‘유대교 회당 난입설’이 대세였고, 일순간 톰 그린은 인종주의자가 되었다.
사실 이 루머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반유대주의를 그런 자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루머를 믿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고, 처음에 이를 무시했던 톰 그린 역시 뭔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사실 그가 쇼를 중단했던 건 당시 고환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 그는 치료를 위해 잠시 휴식 기간을 가졌는데, 그것이 이런 ‘참사’를 몰고 온 것이다. 어느 날 쇼의 작가이자 친구인 데릭 하비와 함께 LA의 버뱅크 지역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다가와 히틀러 복장을 한 게 사실인지 물었고, 이에 충격을 받은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항변했다. “이런 루머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 대해 나는 아주 조금도 재미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차라리 실험용 생쥐를 항문에 넣었다는 소문이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잦아들지 않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톰 그린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그동안 그가 저지른 기행이 크게 작용했다. 1999년에 <톰 그린 쇼>를 시작하며 메인 스트림으로 진입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화제의 연속이었다. 사실 <톰 그린 쇼>는 매회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그는 이른바 충격적인 행동을 기반으로 한 ‘쇼크 유머’로 유명했는데, 죽은 무스(북미산 큰사슴)와 섹스를 하는 퍼포먼스는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그는 젖소의 젖꼭지에서 직접 우유를 빨기도 했고, 캐나다 국립 미술관에 몰래 자기 그림을 가져다 걸기도 했다. 전직 군인이며 컴퓨터 시스템 분석가인 아버지 리처드 그린은 종종 아들의 놀림감이 되어 쇼에 등장하곤 했다. 톰 그린은 아버지의 자동차에 레즈비언 섹스 장면을 그려 넣어 온통 도배를 했다. 아버지가 <대부>(1972)의 마니아라는 걸 이용해 아버지의 침대에 몰래 죽은 소 머리를 넣기도 했다. <대부>에서 톰 하겐(로버트 듀발)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를 협박하기 위해 그가 아끼는 말의 머리를 잘라 침대 속에 넣은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그레이 올>(1999) 기자회견장의 해프닝도 유명하다. 그는 그곳에서 세레나데를 부른 후 브로스넌에게 키스를 했고, 그가 누군지 몰랐던 브로스넌은 괴짜 저널리스트 정도로 생각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진 말라”며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기도 했다. 쇼의 서브 진행자이자 오랜 친구인 글렌 험플릭은 자신이 방송 일로 계속 먹고 살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쇼에 출연하는 기간에도 다니던 직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린은 이 사실을 놀리면서 방송에서 글렌의 사무실 직통 번호를 공개하기도 했다. 고환암 수술을 마친 후 회복 기간엔 <톰 그린 캔서 스페셜>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환암 수술 과정을 적나라한 그래픽으로 상세하게 보여주었다. 플로리다대학에 강연을 갔을 땐 수천 명의 학생들 앞에서 ‘Feel Your Balls’(당신의 고환을 느끼세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가 감독, 작가, 주연을 맡은 <프레디 갓 핑거드>(2001)가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골든 래즈베리 시상식에서 5개 부문을 휩쓸자, 그 시상식에 직접 참석한 최초의 배우가 되었다.
턱시도를 입고 직접 준비한 레드카펫 위를 걸어 시상식장에 들어간 그는 “이 영화의 목적이 바로 골든 래즈베리를 석권하는 것”이었다며 기쁨의 수상 소감을 전했고, 갑자기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했다. 2001년에 집에 큰불이 났는데, 바로 다음 주에 SNL에 가스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기도 했다.
대중은 이 정도의 기행들을 저지른 톰 그린이라면, 유대인들이 모인 곳에 히틀러 복장을 하고 등장하는 건 별 문제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정상’이었고 2004년에 <할리우드는 암을 유발시킨다>라는 자서전을 내면서 루머에 대해 나름 수사한 결과를 담았다. 보스턴 지역의 몇몇 틴에이저들이 비슷한 행동을 하다가 경비원에게 적발되자 둘러대면서 ‘톰 그린’이라는 이름을 언급했다는 것. 이후 급격한 와전이 이뤄지며 황당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톰 그린의 주장이다. 그리고 못 박았다. “나는 반유대주의 조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혐오감을 주며…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