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쉽게 통과? 부모가 ‘별’ 따줄 순 없어
연예인 자녀들이 방송에 쉽게 출연하는 것을 두고 특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SBS <아빠를 부탁해>의 조재현 부녀와 이경규 부녀.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여러 딸들이 연극영화과에 재학하며 연예인이 되길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빠의 유명세를 이용해 일찌감치 데뷔하려고 하며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일부 방송 관계자들과 네티즌의 지적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전에도 배우 황신혜가 모델 겸 배우인 딸 이진이와 함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고, 김부선이 배우로 활동 중인 딸 이미소에 대해 언급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방송인 김구라 역시 자신이 출연 중인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아들 김동현을 고정 게스트처럼 출연시키고 있다. 분명 김동현은 어릴 때부터 아빠와 함께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얻었고 그 덕에 래퍼의 꿈을 키우다가 얼마 전 전문 레이블과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 중인 한 배우는 “허탈하다”고 이야기했다. 서울에 있는 한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적은 출연료를 받으며 연극 무대를 전전하고 있는 이 배우의 꿈은 ‘지상파’나 ‘충무로’ 입성이다. 실력이 쟁쟁한 무명 배우들 사이에서 소위 ‘메이저’ 무대로 발탁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런 이들이 바라볼 때 손쉽게 메이저 무대를 밟는 연예인 2세들은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예로 배우 백옥담은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07년 MBC 드라마 <아현동 마님> 출연 이후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 <압구정 백야> 등 화제작에 줄줄이 출연했다. 거대 기획사 소속도 아니라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도 않던 그가 어느 순간 대중의 눈에 들어왔고 그의 배경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백옥담의 출연작은 대부분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었고, 그가 임 작가의 조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임 작가의 혈육이기 때문에 캐스팅 과정에서 특혜를 입는다는 것. 백옥담 외에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지만 유명 PD나 작가의 친척 혹은 지인이라 여러 작품의 부름을 받는 배우들이 적지 않다.
MBC 일밤 <아빠 어디가>, 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한 장면.(TV화면 캡쳐)
반면 ‘연예인 세습’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는 평가도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연예인 부모가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반박이다. 기업가의 자제들이 경영 수업을 받은 후 회사를 물려받고, 재력가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자녀들에게 증여나 상속을 통해 부를 대물림하는 것처럼 연예인 부모가 연예계에 발을 들이길 원하는 자녀들에게 기회를 주고 돕는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연예인 세습은 다른 세습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입장도 있다. 회사나 재산은 법적인 절차를 거치면 고스란히 2세들의 몫이 되지만, 연예인 부모의 인기가 연예인 자녀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수많은 연예인 2세들이 각종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비쳤지만 인기도는 크게 차이가 난다. 이는 부모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 가진 매력과 역량에서 비롯됐다”며 “부모의 도움으로 TV에 출연할 수는 있지만 대중의 인정을 받고, 그들의 마음을 얻어 인기를 쌓는 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연예인 2세’라는 꼬리표가 그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분석도 있다. 당당히 오디션을 보고 배역을 얻어도 괜한 특혜 의혹에 휩싸일 수 있고, ‘OOO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하정우는 아버지 김용건의 후광을 입지 않기 위해 ‘김성훈’이라는 본명을 뒤로하고 ‘하정우’라는 예명으로 활동해왔다. 이유비 역시 데뷔한 뒤에야 그가 견미리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유명 연예인 부모의 후광이 데뷔 초기에는 ‘반짝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는 “유명 연예인들의 가족이나 친척들의 부탁을 받고 오디션을 본 적이 많다. 그들이 오디션을 볼 기회까지는 얻을 수 있으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자신이 가진 역량”이라며 “대중의 평가가 냉정한 연예계에서 후광만으로 성공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