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박근혜 대 이명박’ 대리전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왼쪽), 이명박 서울시장 | ||
4·30 재·보선 압승 이후 당내에 형성된 ‘박근혜 대세론’에 숨죽이던 비주류측에서 당 혁신안 수용 여부를 논의할 연찬회(8월30~31일)를 계기로 대반격에 나설 채비를 차리면서다. ‘당권-대권 조기 분리’와 박근혜 대표의 ‘임기 단축’이 핵심내용인 혁신안 처리를 놓고 ‘친박’(親朴)그룹 대 ‘반박’(反朴)그룹 간 일전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연찬회는 외형상 당 혁신안을 논의하기 위한 장(場)으로 설정됐지만 당내에선 차기 대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박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MB) 간 ‘힘겨루기’의 장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이미 내년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MB로선 혁신안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 내에 ‘둥지’를 틀지, 아니면 ‘딴 살림’을 모색할지를 결정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 이 과정에서 기존의 주류-비주류, 친박-반박을 뛰어넘는 새로운 역학구도가 정립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는 터다.
계파갈등의 전운(戰雲)은 비주류 내 각 세력간 연대가 모색되면서 감돌기 시작했다. 소장-개혁파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과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주축을 이룬 국가발전전략연구회(국발연)가 혁신안 관철을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양측은 연찬회 전날인 8월29일 연석회의를 가져 구체적인 공조 방안을 결정할 예정. 이미 8월18일 23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1차 연석회의를 가진 양측은 ▲혁신안의 공동추진 ▲연찬회에서 양측 의견이 반영되도록 공동 노력 ▲현안에 대한 공동 대응 ▲일부 소수 의원들의 의견차는 각 모임에서 최소화 ▲지방선거 이전 혁신안 도입 등에 합의했다. 수요모임 대표인 박형준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의 도입, 대선 1년 6개월 전 대권-당권 분리 등 혁신위 핵심 쟁점에 대해 모임 간에 전체적으로 합의를 봤다. 혁신안이 당론으로 확정될 때까지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주목되는 것은 1차 회의에서 최근 “박 대표의 임기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혁신안의 나머지 내용을 관철시키자”고 제안했던 홍준표 의원(당 혁신위원장)에 대해 소장파들의 비판이 집중되는 등 강성 ‘반박’ 기류가 형성됐다는 점. 특히 이 과정에서 그동안 MB에 가까운 세력으로 평가됐던 국발연보다 수요모임 핵심인사들이 ‘반(反) 박근혜, 친(親) MB’ 분위기를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요모임의 한 의원은 “수요모임과 국발연 내에 각각 이견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만 지도부의 당 운영에 문제가 많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됐다. 다만 일부 의원들이 주류측의 눈치를 보느라 명확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뿐이다. 주류측이 ‘친박 대 반박’ 구도로 몰아가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중립지대’에 있는 다수 의원들을 우리편으로 충분히 이끌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박 대표가 당은 그럭저럭 이끌어 갈 수 있다손 치더라도 대통령 후보로 자질이 있느냐에 대해 회의감을 갖는 의원들이 당내에 갈수록 늘고 있다. 재·보선 이후 확산되던 ‘박근혜 대세론’의 거품이 빠지면서 본격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연찬회를 계기로 박 대표의 ‘미래’에 대한 문제제기가 급부상할 것으로 보면 틀림없다”고 밝혔다.
정병국 의원도 “당이 몇몇 사람에 의해 운영되면서 ‘이대로 가면 된다’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감지되고 있다. 자기 영역을 쌓는 행태는 당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으며 혁신안의 핵심은 친박이냐 반박이냐는 식으로 편을 가르자는 게 아니라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 당을 바꾸자는 것인 만큼 박 대표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가세하고 나섰다.
주류측의 대응도 만만찮다. 주류측은 최근 중진들과 원외를 상대로 집중적인 ‘세(勢) 확산’ 작업을 펼치는 것으로 비주류의 연대 움직임에 맞서고 있다.
박 대표의 경우 최근 1백여 명이 넘는 17대 총선 낙선자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으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했고, 기존의 측근 3인방(김무성 사무총장-유승민 대표 비서실장-전여옥 대변인)과 최근 새로운 핵심측근으로 등장한 김기춘 여의도연구소장도 의원들과의 접촉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핵심 당직자는 “비주류측이 혁신안을 고리로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터에 우리라고 가만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특히 비주류 핵심인사들이 외형상으론 혁신안을 내세우지만 실제론 ‘박근혜 흔들기’를 도모하고 있는 마당에 ‘세 대결’을 마냥 회피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주류측은 한편으론 ‘박 대표의 임기를 보장하면 혁신안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겠다’는 카드로 ‘반박’ 성향이 덜한 비주류 의원들을 포섭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당내에선 유기준 김양수 김기현 의원 등 수요모임 내 영남권 의원들과 진영 장윤석 최구식 의원 등 ‘친박’ 성향 의원들이 최근 ‘무욕회’란 별도의 모임을 결성한 것을 주류측의 세 확산 노력의 일환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당내에선 현재 혁신안을 둘러싼 주류-비주류 간 갈등이 연찬회에서 마무리되리라 보는 견해는 거의 없는 상태다. 주류측은 혁신안 중 조기 전대 등 민감한 현안을 제외한 나머지 항목을 ‘부분 수용’하는 선에서 결론을 내려는 데 반해, 비주류측은 ‘일괄 수용’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모임의 한 의원은 “아직은 박 대표를 압박해 조기 전대를 관철시킬 만한 역량이 안 되는 만큼 연찬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정한 대선 관리’를 이슈로 삼아 공론을 모아나간다는 방침”이라며 “당내 일각에서 ‘혁신안은 MB를 위한 것’이란 왜곡된 시각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주장에) 공감하는 세력이 늘어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주류측은 영남권 소장파 일부와 홍준표 김문수 이재오 의원 등 국발연 핵심인사들까지 “박 대표의 임기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임을 들어 비주류측의 시도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리라 자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비주류 일각의 조기 전대 개최 주장은 당내 주체세력을 바꾸려는 저의가 깔려 있기 때문에 중도파들의 호응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초 혁신안에 적극 지지를 표명했던 강재섭 원내대표가 최근 이렇다 할 입장 표명 없이 관망상태로 돌아선 것도 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혁신안을 매개로 한 주류-비주류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당내에선 차기 주자들 간의 경쟁이 조기 과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중도성향의 한 영남권 중진은 “박 대표와 이 시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터에 주류-비주류가 혁신안을 놓고 대립하는 상태가 오래가면 내분 양상이 급격히 에스컬레이트될 수 있다”며 “양측이 한발씩 양보하지 않으면 서로 결별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려운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