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금수저’는…젖떼기도 전에 억대 주식부자
진정한 ‘금수저’라 불리는 상장사 오너일가의 미성년 자녀들이 보유한 주식 자산이 올해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종가 기준 1억 원 이상의 상장사 주식을 보유한 만 19세 이하(1995년 9월 30일 이후 출생자) 미성년 주식 부자는 모두 262명으로 집계됐다.
연초보다 26명이 늘어난 수치로 100억 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한 미성년 주식 부호도 12명이 증가해 총 16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미성년 주식 부자들이 주가 상승으로 보유 주식 가치가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올해 상장사 오너 일가의 주식 증여가 늘면서 생긴 변화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제약업계 3~4세들의 보유 주식이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3~4년 전만 하더라도 미성년 주식 부자를 언급하면 GS그룹 일가가 늘 상위권을 차지했으나 이번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손주 7명이 1~7위를 싹쓸이했다. 임 회장의 친손자(11)가 854억 8000만 원으로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6명의 친·외손주들이 각 834억 9000만 원씩을 보유하고 있다.
임 회장은 2012년 전후로 당시 4~9세인 손주들에게 한미사이언스 주식 약 60만 주(24억 원어치)를 각각 증여했다. 당시엔 주당 4000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이었으나 올해 주가가 급등해 ‘어린이 주식 부자’들을 탄생시켰다.
8위와 9위는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의 장남(14)과 차남(11)으로 각각 GS주식 366억 8000만 원과 150억 8000만 원을 보유 중이다. 그 다음으로 다시 ‘제약 강자’가 등장한다. 이종호 JW중외제약 회장의 손자(17)와 이장한 종근당 회장의 딸(18)도 각각 133억 9000만 원, 129억 8000만 원의 계열사 주식을 보유해 순위를 이었다.
수백억 원에 달하지는 않지만 겨우 돌이 지난 영아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의 아들(2)은 돌을 막 넘긴 지난 6월부터 한 달여에 걸쳐 5차례의 장내매수와 증여를 통해 약 3억 원에 달하는 세아홀딩스 주식 1500주를 갖게 됐다. 이 군은 고 이종덕 세아그룹 창업주의 증손자이자 2013년 남미 출장 중 사망한 고 이운형 회장의 손자다.
집안의 전통인지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의 손자인 이주성 세아제강 전무의 아들(9)은 2007년 출생 50일 만에 세아홀딩스 주주로 이름을 올려 7월 기준 1139주를 보유 중이다. 이뿐 아니라 지난 7월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의 누나 알렉시스 제니퍼리도 자신의 두 아들(11·4)에게 각각 세아제강 지분 4300주씩을 증여했다.
비슷한 시기 고려아연도 장내매수를 통해 미성년자 주식 부자들을 탄생시켰다. 최창걸 명예회장과 최창영 명예회장의 손주들 8명이 약 60억 원의 주식을 보유하게 된 것. 최창영 명예회장의 장녀 최은아 씨의 아들 이 아무개 군(10)이 5451주로 집안 미성년자 가운데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 중이며 유학 중인 차남 최정일 씨의 아들(2)도 나이가 제일 어리지만 주식 1021주를 받았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손주 7명이 미성년 주식부자 1~7위를 싹쓸이했다.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수십억, 수백억 원의 자산을 성년이 되기 전부터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건 아니다”면서도 “다만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무라는 측면에서 국민 정서를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공정위와 국세청이 건별로는 조사한 적은 없다고 밝혔는데 탈세와 불법이 있었는지 이번 기회에 조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보다는 주식 등 금융상품을 통한 ‘부의 대물림’이 추세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미성년자들의 부동산 소유도 갈수록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과 상가 등 부동산 증여는 24만 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상가 및 업무용 빌딩 증여는 전국 평균 27% 증가했고 주택과 토지 증여도 20% 안팎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특히 서울 강남구는 주택 증여가 전년 대비 76%가 늘어나 가장 증여가 많은 지역으로 분류됐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 세금을 절약하며 증여를 하겠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인지 근로소득이 없는 미성년자가 수십 채의 주택을 소유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5년간 18세 미만 미성년자 3717명이 부동산을 취득했는데 그 금액만도 1조 4254억 원에 이른다. 변재일 새정치연합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부동산 실거래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자료 등에 따르면 미성년자가 소유한 평균 부동산 가격은 3억 8349만 원에 달한다.
미성년자가 보유한 가장 비싼 부동산은 대전 서구의 7만 8963㎡(약 2만 2886평) 토지인데 1121억 2791만 원에 거래됐다. 또 고등학교 1학년인 김 아무개 군은 지난 3월 서초구 신논현역 인근 일반상업지역 11층 빌딩을 216억 원에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군의 부모가 해당 건물을 구입하며 3명의 자녀와 함께 각각 5분의 1씩 소유권을 나눠가지며 증여한 것으로 보인다.
월세만도 1억 원에 달하는 용답동의 12층 오피스텔 건물은 서초구에 거주하는 16세 미성년 임대업자가 가족과 함께 소유하고 있다. 그는 이곳을 포함해 총 374채를 가족과 공동 소유하고 있다. 또 강남구에 거주하는 10대 형제는 노량진역 대로변의 5층 건물을 포함해 15채나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겨우 3세에 불과한 여아는 21억 원에 거래된 서초구 반포의 아파트 지분 25%를 가지고 있기도 하며, 네 살배기가 소유한 공릉동의 5층 건물에서는 한 달 임대수익만 1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이런 식의 미성년 임대사업자는 전국에 65명에 이른다. 이들은 1인당 평균 10.4채를 가지고 있는데 서초·강남·송파, 이른바 강남 3구의 미성년자 26명이 전체 74%를 보유 중이다.
변재일 의원은 “평범한 직장인이 10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이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3세부터 아파트를 보유하는 등 금수저의 재산 취득 과정과 증여한 부모의 재산형성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과세 당국이 면밀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금수저 3종 세트’의 완성은 예금인데 지난 4년간 미성년자가 증여받은 계좌 예금액은 7조 원이 넘는다. 박광온 새정치연합 의원이 지난 2011~2014년 기준 14개 시중은행의 미성년자 계좌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아 증여세를 내야하는 예금 잔액 1500만 원 이상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자세히 살펴보면 근로소득이 없는 만 19세 미만의 증여계좌는 37만 9318개, 총 예금액은 7조 4268억 5600만 원으로 집계됐다. 계좌 하나당 평균 보유액은 1958만 원이다. 주식처럼 금액대가 급증하지는 않고 있으나 꾸준히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2011년 미성년자 증여계좌는 8만 2918개, 예금액은 1조 7890억 8300만 원이었지만 2014년에는 계좌 10만 6070개, 예금액 1조 8698억 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미성년자들이 급증하면서 상대적 박탈감, 상대적 빈곤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수저와 반대 개념으로 ‘흙수저’라는 단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한 상속전문 변호사는 “어린 자녀들에게 주식, 예금, 부동산 등을 증여하면 당시엔 증여세 등 세금을 납부한다. 이후 시세차익을 보더라도 그에 대한 세금 부과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보면 된다”며 “이 때문에 대기업뿐 아니라 상류층 가정에서도 부동산 경기침체, 주가 하락 등의 시기가 올 때마다 자녀가 미성년자라도 증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로서는 법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