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금잔디처럼 살았어요”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한쪽 손에는 공주 거울을 든 채 잔뜩 혀를 꼰 발음을 구사하는 이 캐릭터, 결코 범상치 않다. 단순히 ‘오버하다’라고 적혀 있는 대본 속 캐릭터에 맛깔나는 숨을 불어넣어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고 있는 주인공은 <꽃보다 남자>(<꽃남>)의 악녀 3인방 중 한 명인 민영원이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 본 민영원은 굉장히 수줍어하는 성격에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원래 말수도 별로 없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같이 출연하는 ‘써니’역의 장자연 언니가 ‘연기할 때 보면 너 아닌 줄 알았어’라며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그런데 제가 점점 ‘미란다’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역을 맡으면서 밝아져야겠다는 생각에 재밌는 영화며 드라마는 다 챙겨봤는데 그런 즐거운 감정에 동화되고 있거든요. 처음 맡은 악역이지만 욕먹는 악역이 아닌 악행은 어설프고 들키면 제대로 굴욕당하는 악녀라 연기하면서도 정말 재밌답니다.”
요즘은 어딜 가나 “미란다!”라며 친근하게 대해주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길었다. 호주 유학생활 중 한국에 들어왔다 길거리 캐스팅 돼 연예계에 발을 디딘 2002년부터 줄기차게 오디션을 봐왔지만 보는 족족 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신인이라 감독님들로서는 제 연기력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민영원은 <꽃보다 남자> 최종 오디션 때는 작정하고 나섰다고 한다. ‘공주’스러운 특이한 의상과 하이톤의 목소리로 무장한 것.
결국 ‘미란다’역을 따낸 민영원은 요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기저기서 출연제의가 들어오고 있는 까닭이다. 그 덕분에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비중 있는 역에도 캐스팅됐는데 이 역할은 한 주먹 하는 ‘일진’이란다.
그렇다면 민영원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어릴 땐 친구가 많고 밝은 성격이었는데 집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조금 달라졌다고.
“집안사정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꽃남>의 금잔디 못지않았죠. 정말 잘 데도 없었고, 먹을 것도 마땅치 않았어요. 지금은 부모님이 다시 재기하셨는데 그 때 ‘내가 행복하기 위해 돈이 정말 필요하겠다.
더 잘돼서 도움 받았던 분들에게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신인이라 아직 서툴러서 이런 얘기들이 언론에 나가게 됐는데 아버지가 상처를 많이 받으셨어요. 정말 죄송하고, 힘든 시기 잘 이겨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꼭 하고 싶어요.”
김혜수의 카리스마와 당당함을 닮고 싶다는 민영원의 꿈은 ‘평생배우’가 되는 것이다. 수줍게 웃다가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눈을 빛내는 이 배우의 행보가 기대된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