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힘 빠질 때 ‘마이웨이’ 외쳐볼까
NH농협은행 차기 은행장 자리에 누가 앉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10월 6일 농협중앙회 본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차기 농협은행장 선출 문제가 핵심 이슈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이이재 새누리당 의원이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에게 “농협은행장을 차기 농협중앙회장과 상의해 선임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은 것이 발단이 됐다.
김용환 회장은 “농협중앙회장 선거와 관계없이 농협은행장을 선임하겠다”고 답했다. 배석했던 최원병 농협중앙회장 역시 “농협은행장은 금융지주에서 선임한다”고 힘을 보탰다. 농협은행장 선임권은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고유 권한이어서 이들의 답변은 당연한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날 발언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농협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예고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숨은 깊은 뜻을 알아채려면 우선 김 회장의 답변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농협은행장 선출 문제를 언급하면서 “농협은행장은 법적으로 중앙회장과 관계없이 선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인 농협은행 CEO(최고경영자) 선임권을 지주사 회장이 갖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법률까지 끌어다 붙인 것이다.
농협금융지주는 2011년 농협이 신용사업(금융부문)과 경제사업(농·축산, 유통사업)으로 양분되면서 탄생한 조직이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조직 같지만 실제로는 농협중앙회의 계열사 수준에 불과하다. 농협금융지주의 지분 100%를 농협중앙회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농협금융에 농협중앙회는 시어머니나 다름없다. 수익의 상당 부분을 배당 형태로 농협중앙회에 넘겨줘야 하는 것은 물론 내부 인사에도 중앙회 입김이 작용한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농협중앙회의 막강한 힘은 2013년 3월 신동규 당시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중도사퇴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신 전 회장은 당시 취임한 지 1년도 안된 상태에서 사표를 던졌다. 금융권에서는 그가 농협중앙회장과 사사건건 충돌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중앙회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경영을 추구하다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물러나면서 “정부가 아니라 중앙회와의 문제”라면서 “농협금융 회장은 제갈량이 와도 안 되는 자리”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사연들 때문에 농협은행장 선출 역시 농협중앙회의 의중이 반영된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최원병 중앙회장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협은행장 경쟁구도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이다. 김용환 회장 역시 “농협은행장 임기가 끝나는 올해 말이 되면 임기를 연장할지 새로운 사람을 뽑을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말끝을 흐릴 정도다.
금융권에서는 일단 김주하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섣불리 새 행장을 앉혀 화근(?)을 만들기보다 우선 연임하게 한 뒤 새 농협중앙회장이 선출되면 그때 가서 교체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취임 1~2개월 만에 은행장이 또 바뀌는 것보다 일단 연임한 뒤 자진사퇴 등으로 자리를 만들고 이를 채우는 방식이 조금 더 자연스럽지 않겠느냐”면서 “어차피 약간의 무리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내부 권력서열을 따르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 기회에 김용환 회장이 ‘마이웨이’를 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설득력 있게 퍼지고 있다. 김 회장 입장에서는 전임자인 임종룡 금융위원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김주하 행장 대신 자기 사람을 앉히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지금은 농협중앙회에 일종의 권력 공백기가 생기는 만큼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농협은행장은 연임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김 회장이 은행장을 교체할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용환 금융지주회장. 연합뉴스
이에 따라 오는 11월 초 구성될 농협금융의 자회사임원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에 농협 주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자추위는 최원병 회장이 추천한 인사 1명, 김용환 회장이 추천한 집행간부 1~2명, 이사회가 추천한 사외이사 1~2명 등 3~5명으로 구성된다.
특히 이번 자추위는 오는 2017년 말까지 상시적으로 운영되면서 농협은행이외의 농협금융 계열사 CEO들도 선출한다. 농협금융에서는 내년 초 김학현 농협손해보험 대표의 임기가 끝나고, 김용복 농협생명 대표, 김원규 NH투자증권·NH-CA자산운용 대표, 김승희 NH저축은행 대표, 이신형 농협캐피탈 대표 등이 2017년까지 줄줄이 임기가 만료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