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앙금’에 발길 묶였나
▲ 지난 2006년 광화문 열린광장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사수 촛불집회. | ||
노 전 대통령이 유서를 통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며 사회 통합의 메시지를 남겼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보수와 진보의 대립까지 극복하진 못하고 있다. 또한 재임 시절 불거진 진보 세력 내부의 분열과 대립 양상도 깨끗하게 극복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화계의 침묵으로 대변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연예인들의 조문 행렬도 이어지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과 친한 연예인으로 정치적 동지였던 문성근 명계남 권해효 등은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봉하마을을 찾아 상주 역할을 맡아 조문객을 맞았다. 이 외에도 YB(윤도현밴드) 전인권 유희열 조용필 강산에 송해 강신일 신현준 등이 연이어 조문을 다녀갔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영화계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너무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라는 부분이다. 추모 행렬 동참 연예인 가운데에도 영화배우의 수가 가장 적다.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서 영화 <박쥐>의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소식이 날아들었다. 잠시 연기 방안이 거론됐던 <박쥐>의 수상 축하 기자회견 역시 예정대로 진행됐다. 대신 진보신당 지지 영화인인 박찬욱 감독이 직접 기자회견 당일 아침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기자회견에서 애도의 뜻을 밝혔다.
그동안 영화계의 진보 성향 영화인과 단체들은 각종 선거에서 진보 진영 후보들을 공개 지지해왔으며 사회적 현안으로 시작된 각종 촛불 시위를 주도해왔다. 그럼에도 이번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진보 진영의 커다란 이슈 앞에서 영화계는 침묵하고 있다.
▲ 위쪽부터 문성근 명계남 이창동. | ||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의 진보 성향 영화단체들에 공식입장을 물었지만 대부분 “애도하는 마음은 갖고 있지만 우리가 입장을 표명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스크린쿼터사수 영화인 대책위에서 활동했던 한 영화감독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대다수의 영화인들 역시 애도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 “이제 세상을 떠난 분에게 원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친노 영화인 3인방에 대한 비토의 목소리는 여전하다”고 말한다.
참여정부 당시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서 영화계에선 친노 영화인 3인방에 대한 비난론이 집중됐다. 정권이 교체된 뒤 이창동 감독이 영화 <밀양>을 통해 영화계로 돌아왔고 문성근 역시 연기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비난론도 사그라진 분위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계 내부 강경파 인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고 한다.
여기서 이창동 감독의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 감독이 친노 영화인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영화계의 싸늘한 시선을 치유할 적임자로 거론되고 있는 것. 참여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낼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이 감독은 칸에서 귀국하자마자 봉하마을을 찾았지만 다른 친노 영화인들처럼 봉하마을을 지키진 않았다. 대신 서울에 머물렀는데 지난 2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국민장 분향소를 찾았을 당시 상주 역할을 맡았다. 또한 지난 27일엔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물 좀 주소> 기자시사회 및 간담회에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한 28일 오후에는 설경구와 송윤아 결혼식장에도 모습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아픔 속에서도 영화계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 것.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가 체결되자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한미 FTA 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영화인대책위 등 영화계 단체들 역시 여기에 동참했다. 그런데 당시 시위를 주도한 대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 추모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지만 영화계 단체만 빠져 있다. 이는 스크린쿼터와 같이 영화계와 직접 연관된 사안이 아닐 경우 정치색을 지양하려는 영화계 내부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펼친 정책들로 인해 생긴 진보 세력 내부의 분열 양상과 이로 인해 남은 앙금이 이번 영화계의 침묵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많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