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타는 그들 외주사 쳐 방송국 압박
지난해 5월 한예조는 출연료 인상 협상이 난항을 겪자 MBC를 상대로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예조는 일부 톱스타를 제외한 대다수의 연예인이 생존권도 보장받고 있지 못해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역설했지만 프로그램 제작이 차질을 빚으면서 방송 파행 위기에 직면하자 시청자를 볼모로 한 투쟁이라는 비난에 휩싸여야 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던 연예인들의 길거리 집회 및 가두행진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요즘 한예조는 또 한번의 단체 행동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은 거듭되는 출연료 미지급이다. 공중파 방송 3사의 출연료 미지급 금은 모두 62억여 원. 한예조는 더 이상 참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방송국에선 프로그램 제작비를 모두 외주제작사에게 지불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그 뜻에 따라 방송국 대상 파업은 하지 않겠다”는 한예조 김영선 부위원장은 “모든 책임이 외주제작사에 있다는 얘기인 만큼 방송국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만 출연하고 외주 제작사 제작 프로그램에는 출연을 전면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록 방송국이 아닌 외주 제작사 상대 투쟁이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방송국의 몫이 된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대부분이 외주업체에서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실 제작사를 선택한 방송국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한예조 문제갑 정책위의장은 “출연료만큼은 출연자들이 직접 수령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방송사는 묵묵부답”이라고 얘기한다.
한예조는 현행 외주제작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현행 시스템은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을 외주제작사에 강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자를 본 외주제작사가 출연료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는 것. 게다가 출연료를 미지급한 채 문을 닫는 외주제작사가 속출하고 검증되지 않은 신생 외주제작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예조는 방송국에 검증되지 않은 신생 외주제작사나 업계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외주제작사의 편성 거부를 거듭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진 경우는 거의 없다.
김 부위원장은 “우리가 해당 외주제작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할 땐 괜찮다며 믿어 달라고 하더니 미지급 사태가 벌어지면 방송국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서 “한예조도 기본적인 외주제작사의 실태는 파악하고 있는데 방송국은 이를 몰라 아무 회사나 편성을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번만큼은 한예조가 아닌 소속 연예인들의 의지가 더욱 뜨겁다. 지난해 MBC 대상 파업 당시에는 일부 스타급 한예조 소속 연예인들이 파업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양 비쳐지기도 했다. 소속사 측에서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를 고려해 파업에 동참하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이로 인해 한예조가 소속 연예인의 입장을 수렴하지 않고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다르다.
지난 3월 인기 절정이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촬영 중단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일부 매체는 한예조가 파업을 독려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고 한다. 이미 여러 번 출연료 미지급으로 가슴앓이를 한 배우들이 종영하면 아예 못 받을 수 있다며 촬영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자 한예조가 소속 연예인들의 파업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뛴 것. 결국 한예조가 제작사와 협상해 미지급 출연료 문제를 해결했다. 이처럼 거듭되는 출연료 미지급에 더 격분해 있는 것은 한예조 집행부가 아닌 소속 연예인들이다.
“여기 저기 미지급 출연료를 받으러 다니다 보니 요즘엔 한예조가 마치 채권 추심업체 같다”는 김 부위원장은 “한예조 집행부보다 소속 연예인의 의지가 더 강해 이번 출연 중단 투쟁의 파장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조단역급 배우들의 경우 출연료 미지급이 생존권과 직접 연관돼 있다”는 얘길 덧붙이며 “출연료를 선지급 받은 일부 톱스타를 제외하면 주연급 배우들도 출연료 미지급 피해자라 동참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