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은 내 고향…버릴 수가 없어요~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비열한 악역을 맡은 정웅인은 고유의 코믹한 악역 연기로 시청자들이 자신을 쉽게 미워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과 시트콤 <세남자>, 그리고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에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웅인을 만났다.
MBC 특별기획 드라마 <선덕여왕>이 시청률 30%를 넘기며 또 한 편의 국민 드라마로 급부상하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 이요원과 ‘미실’ 고현정을 중심으로 한 대립 구도가 이야기의 중심인데 아직 고난을 겪고 있는 ‘덕만’ 팀보다는 권력을 쥐고 있는 ‘미실’ 팀이 드라마를 주도하고 있다. 그 중심에 미실의 친동생인 ‘미생’, 정웅인이 있다.
100여 명의 자식에 30여 명의 부인을 거느린 호색한 미생은 본인의 주특기인 ‘색’을 앞세우고 ‘돈’을 뒷받침해 반대판 인사들을 미실 팀으로 끌어 들이는 권모술수의 대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비열한 악역’인데 코믹 연기의 대가 정웅인이 그려내는 미생은 이미 ‘비열한 악역’이라는 평면적인 캐릭터를 넘어서 있다.
정웅인이 연기를 시작한 것은 고교 1학년 때 연극반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연극에 전혀 관심이 없던 정웅인은 특별활동시간(CA)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선배들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연극반에 가입하게 됐다. 그렇지만 금세 연극의 매력에 빠진 뒤 서울예전 연극과에 진학하게 된다. 졸업과 동시에 연극판으로 들어간 정웅인은 4년여 동안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SBS 드라마 <천일야화>를 통해 연예계에 정식 데뷔한다. 계기가 되어준 이는 정웅인과 대학 동창인 영화감독 장항준이다. 장항준이 <천일야화> 메인 작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웅인을 합류시킨 것. 당시 연출은 시트콤의 대가 김병욱 PD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입담꾼과 시트콤 대가가 힘을 합친 <천일야화>를 통해 새로운 코믹 아이콘 정웅인이 연예계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정웅인의 코믹 연기는 예상 외로 그 뿌리가 깊다.
연극으로 다져진 코믹 연기
“연극배우 시절부터 코믹 연기를 가장 많이 했고 좋아했어요. 그러다 시트콤 <세친구>와 영화 <두사부일체>를 만나며 이미지가 굳어지고 말았죠. 대한민국에서 남자 배우로 살려면 한 캐릭터만 갖고는 힘들어요. 그래서 코믹 캐릭터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 생각이 많이 변했어요.”
생각이 변한 계기는 얼마 전 밤에 우연히 케이블 방송에서 재방송되는 시트콤 <세친구>를 본 것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세친구>가 정웅인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웅인은 왜 굳이 스스로 코믹 이미지를 버리려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그리곤 그날 밤 잠들기 전 문득 그는 <세친구>를 다시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바로 다음 날 <세친구>를 함께 했던 윤다훈과 박상면, 그리고 당시 연출을 맡았던 송창의 감독님(현 tvN 대표)이 연극을 보러 왔어요. 공연이 끝난 뒤 술자리에서 내가 다시 한 번 뭉쳐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tvN에서 방영되는 시트콤 <세남자>가 시작됐죠.”
대한민국에서 남자 배우로 살려면 한 캐릭터만 갖고는 힘들다고 말했던 정웅인의 생각이 백팔십도 달라진 것인데 그는 ‘한 캐릭터로 살기는 어렵지만 그 한 캐릭터를 여러 유형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감독을 만난다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내마스)>이다. 코믹 연기가 베이스지만 <내마스>에서 정웅인은 정극 연기에 가까운 모습을 선보여 각광받았다.
“<내마스>가 내겐 엄청난 의미의 작품이에요. 기존 작품에서 (정)준호 형이 보스고 난 그를 보필하는 ‘넘버 2’ 이미지가 강했는데 <내마스>에선 내가 형으로 나오고 준호 형이 철없는 동생이었어요. 과연 누가 이런 캐스팅을 할 수 있겠어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이태곤 감독이 그만큼 날 믿어준 거죠.”
정웅인과의 인터뷰가 상당히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둘째 딸 세윤 양과 함께 왔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케이티 홈즈의 딸 수리보다 뛰어난 미모를 갖췄다며 네티즌들이 ‘한국의 수리’라는 호칭을 붙여준 세윤 양은 실제로도 상당히 귀여운 꼬마 공주였다. 그런데 정웅인은 딸은 연예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며 배우들의 고뇌에 대해 얘기했다.
매니저 없어 운전도 직접
두 딸의 아빠인 정웅인은 배우에게 가정이 생기면 작품 선택권이 없어진다고 얘기한다. 다만 작품 선택권이 없어져 연기력까지 저하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분유를 먹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 힘들죠. 친한 연극배우가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해준 얘기가 늘 귓가를 맴돌아요. 연극해서 돈 조금 받으면 분유를 산대요. 자신은 얻어먹고 굶더라도 애는 먹여야 하니까. 분유 다섯 통 사놓고 일주일 지나면 한 통이 떨어진대요. 그때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엄청나답니다. 배우에게 가정이 생기면 작품 선택권이 없어져요. 두 작품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어떻게든 두 작품 다 해야지, 고를 여력이 없어요. 내가 이것 아니면 죽는다, 이것 아니면 분유가 떨어진다는 압박감으로 연기를 해야 돼요. 결혼한 뒤 작품 선택권은 사라졌지만 그만큼 더 헝그리 아이즈가 강해진 것 같아요.”
요즘 정웅인은 매니저 없이 홀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 스케줄을 챙기고 운전까지 직접 한다. 경주, 용인, 의정부 등 <선덕여왕> 촬영 현장을 오가고 일산 파주 등 <세남자> 촬영 현장까지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안산 소재의 집에는 2~3일씩 못 들어가 차에서 쪽잠 자는 날이 많다. 게다가 주말에는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 지방 공연을 다닌다.
“피로가 누적돼 힘들지만 재밌어요. 정말 사는 것 같아요. 신문기사를 보니까 연예인의 70%가 연봉 1000만 원 이하라는데 그런 면에서 난 아주 행복한 배우입니다. 요즘 내 얘기가 신문기사로 나오면 다른 배우들이 많이 부러워할 거예요. 나도 그랬으니까.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죠. 정말 최선을 다해 연기해야죠.”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