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부터 변호까지 “이게 진짜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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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YP건물 담벼락. 팬들이 염원을 담아 붙인 쪽지가 가득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10대 청소년들로 구성된 과거 팬클럽과 달리 20~30대 누나팬, 혹은 30대 이상의 삼촌팬까지 더해진 요즘의 팬클럽은 단순히 스타를 사랑해 모인 클럽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스타의 경호원, 수호자가 된 팬클럽의 구조와 규모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아이돌 그룹의 막강한 지지자인 팬클럽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과거 H.O.T, 젝스키스 등 아이돌이 처음 등장했던 시절의 팬클럽은 팬클럽 단체복, 각 그룹의 팬임을 표시하는 색색의 풍선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개인주의, 이기주의에 물든 10대가 한 목소리를 내고, 한 그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고, 10대의 문화가 적극적으로 변모한 때였다.
그런데 요즘의 팬클럽은 90년대 후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아이돌 그룹의 불화, 해체 등에 맞서 단순히 소속사에 편지나 전화로 팬들의 입장을 전하던 것과 달리 보다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일례로 얼마 전 동방신기의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세 멤버가 전속계약 문제를 놓고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SM)와 갈등을 빚게 되자 일간지 1면에 동방신기 전속계약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광고를 냈는가 하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20만 명에 달하는 팬들의 서명을 모아 한국소비자원, 서울중앙지방법원,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제출하기도 했다.
2PM 팬클럽의 경우는 더하다. 리더 재범이 한국 비하 발언으로 인해 논란에 휩싸인 지 4일 만에 탈퇴를 결정하고 미국으로 떠난 이후 2PM의 팬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 포털사이트 청원 게시판에 16만 명 규모의 탈퇴 반대 서명 운동을 진행하는가 하면 20대 이상 팬 연합이 모금을 통해 신문에 광고를 실었고, 연예기획사처럼 직접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에 배포하기도 했다. 슈퍼주니어의 경우도 추가 멤버 영입설이 돌자 ‘1팬 1주’의 슬로건을 내세워 돈을 모금해 SM 주식을 사들이고, SM 측에 협상문을 보내기도 했다.
쉽게 말해 단순히 ‘스타를 사랑하는 모임’이 아닌 ‘직접 스타를 지키려 나선 모임’으로 변모한 셈이다. 그저 ‘오빠부대’로 치부됐던 팬덤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며 이 같은 힘을 얻게 된 이유는 뭘까.
첫째는 체계적인 조직구성이다. 우선 팬클럽의 주축이 되고, 스타의 행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회장단은 각 그룹 소속사에 의해 정해진다. 첫 팬클럽 멤버인 1기 팬들 중 책임감 있고, 온라인 팬클럽 사이트를 관리해줄 수 있는 이가 팬클럽 회장에 선출되는 것. 일단 소속사에 의해 회장단이 꾸려지고 나면 이들이 각 인터넷 사이트, 전국 각지의 지역 팬 모임 등 운영자들과 연락을 취해 연합을 만들고, 각 운영자들 역시 회원들의 연락처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팬클럽 가입 조건은 신상정보공개가 원칙인 덕분에 가능한 일로 보이콧 운동, 광고 기금 모금 등 일련의 활동들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
어느 그룹의 팬클럽 전국 회장으로 활동한 적 있는 김 아무개 씨는 “과거 휴대폰이나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지금과 같은 조직적인 움직임이 힘들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바로바로 문자로 활동사항, 지시사항 등이 전송되기 때문에 그만큼 행동이 빠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둘째는 여러 의견이 분분한 팬클럽이 와해되지 않도록 하는 회장단의 권력이다. 대기업에 속하는 SM, JYP, YG의 경우는 아예 데뷔 전인 연습생 시절에 각 그룹의 팬클럽을 모집한다. 데뷔 전에 모집하는 까닭에 소수 정원으로 모집된 팬클럽 1기 멤버들이 회장단 및 각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는 임원진으로 활동하는데, 이들은 나중에 팬클럽에 가입한 일반 팬들과 달리 소속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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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신기 팬클럽이 낸 신문광고 | ||
‘1집 때만 활동한다’거나 6개월~1년 단위로 임기가 정해져 있는데다 모든 팬들에게 문자나 인터넷 참여를 통한 선거로 회장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노하우와 경력 덕분에 1기 멤버들이 그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한 팬클럽 회원의 전언이다.
특히 소속사 측과의 회의 참석권한이 팬클럽 사이에서는 상당한 힘으로 발휘된다. 새 음반 모니터링부터 시작해 아이돌 그룹의 앨범 및 의상 콘셉트, 스타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갈지 변화시키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얘기들까지 오가기 때문.
한 팬클럽 임원은 “물론 각 인터넷 사이트에서 팬들의 반응을 추리고 모아 전달하는 대표자 자격으로 소속사와의 회의에 참석한다”며 “이 때문에 소속사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팬은 같은 팬클럽 소속이라도 한 등급 높을 수밖에 없고, 여러 팬들은 이들을 통해 소속사에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르게 된다”고 밝혔다.
이렇듯 체계적인 구성으로 조직된 팬클럽은 과거 팬클럽들의 활동에서 얻은 노하우로 또 다른 힘을 발휘한다. 지난 1996년 H.O.T 데뷔와 함께 시작된 거대 아이돌 팬클럽의 역사는 올해로 14년째. 그동안 해체, 불화 등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쳐 오면서 아이돌 팬클럽의 상황대처법은 일종의 매뉴얼처럼 팬들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일례로 2PM 팬클럽 임원인 김 아무개 씨는 “재범 탈퇴 후 일간지 광고를 낸 것은 일전에 동방신기 팬클럽이 광고를 낸 바 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며 “우리가 진행 중인 음반 반납, JYP 보이콧 등도 이후 다른 팬클럽의 대처법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팬클럽의 자금력 또한 만만치 않다. 한 스타의 생일 때가 되면 개개인이 보내는 선물의 양이 엄청난 까닭에 보통 지역 팬 모임 임원이 한데 모아 전달하거나 아예 돈을 모아 큰 선물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생일 선물 모금으로 모이는 돈은 대략 3000만~4000만 원 정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거액이지만 팬 1인당 1만 원씩만 걷어도 그 정도 액수는 충분히 상회한다는 것이 팬클럽 회원들의 이구동성이다.
2PM 팬클럽 회원인 강 아무개 씨는 3000만~6000만 원선인 일간지 1면 광고를 낸 데 대해서 “이번에는 3000원에서 20만 원 이상까지 모두 성의껏 냈다”며 “각 운영자 통장에 돈을 입금하면 그 돈이 활동비로 쓰이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십시일반으로 모인 자금력이지만 최근 경제력을 갖춘 누나팬, 삼촌팬이 합세하면서 팬클럽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팬클럽 회장 경험과 더불어 소녀시대 팬클럽 회원이기도 한 김 아무개 씨는 “가입 때 보니 직장인의 경우 직업 종류와 보수까지 적어야 하는 항목이 있었다”며 “행사나 스타 생일 모금 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20대 후반~30대 팬들에게 연락해 ‘좀 도와달라’며 후원금을 받더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런 팬클럽의 거대화에 팬들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강 씨는 “팬클럽은 소속사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가도 돌변하는 야누스적인 면을 지녔다”며 “순수한 스타사랑을 넘어선 집착, 이기적인 행동들을 벌일 때가 많아서 과연 그렇게 행동하는 게 다른 이들의 눈에도 정당성 있게 비칠 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임 아무개 씨 역시 “나도 팬이지만 너무 ‘그들만의 행동’을 하는 때가 많다”며 “무조건적으로 발끈해서 행동에 옮기기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자기가 사랑하는 스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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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주니어 팬클럽이 온라인에서 벌였던 주식매매 운동 | ||
[회비 투명성 논란]
울 오빠 팔아 슬쩍한 거야?
팬클럽이 거대해졌다. 규모도 그렇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자금력도 만만치 않다. 수천만 원의 돈을 모아 광고를 내고, 스타에게 생일선물로 고가의 악기를 사주기도 한다. 물론 이 돈은 모두 팬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보통 팬클럽이 자금을 모으는 방법은 인터넷 사이트 공지를 통해서다. 각 임원들 통장으로 입금되면 그것을 모아 선물을 마련하거나 광고를 내는 것. 그런데 이 과정이 불투명하기 그지없다.
팬클럽 임원진 중 한 명인 임 아무개 씨는 “보통 통장내역을 공개하거나, 돈을 쓴 내역을 사이트에 게재해 팬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액수가 모였고, 어떻게 쓰였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임 씨는 “임원진들이 수치화해 보여주는 공개일 뿐 100% 투명성 여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특히 간이 영수증 등 임의 발급이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타를 사랑하니까 횡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횡령 사건도 있었다. 몇 년 전 공식 아이돌 팬클럽은 아니었지만 한 팬카페 운영자가 스타의 생일선물을 사겠다며 회원들로부터 돈을 모금했는데 그 후 감감무소식이었다는 것. 결국 회원들의 신고로 경찰이 밝혀낸 운영자는 고등학생으로 “큰돈이 생기니 평소 원했던 기타를 사고 싶은 마음에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문]
[2PM 사태 그 후]
팬들만 아프냐, 회사도 아프다
그룹 2PM 리더인 재범이 한국 비하발언 논란으로 인해 4일 만에 탈퇴, 부모님이 계신 미국으로 출국한 후 재범의 소속사인 JYP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특히 청담동에 위치한 JYP 건물 앞은 팬들이 염원을 담아 붙인 쪽지로 가득하다. 연일 소속사 앞에 와 침묵시위를 하는 팬들도 수십 명이다. 그런데 정작 행동하고 있는 팬들은 일반 팬들뿐이다. JYP에서 공식으로 공지를 내고 모집한 ‘정규팬’인 2PM의 1기 팬클럽 회원들의 활동이 전무하기 때문.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팬은 조심스럽게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1기 팬들이 나서서 활동해줘야 한다”며 “특히 2PM은 1기 팬만 모집한 상태이기 때문에 소속사와 접촉이 가능한 건 1기뿐인데 전혀 활동이 없고,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즉 소속사와 2PM의 앨범 모니터링 및 활동 전반적 사항을 함께 논의해오던 1기 팬들이 정작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나 활동이 전무하다는 것. 이런 까닭에 팬들 사이에서는 “소속사와 긴밀한 관계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는 상태다.
팬클럽만 문제는 아니다. JYP 측도 속앓이가 끊이지 않는다. 소속사의 한 관계자는 “재범이 떠난 며칠 후 난데없이 자살설이 돌았다”며 “곧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PM 사태를 바라보는 타 소속사는 어떤 심정일까. 대부분 “우리가 그런 경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다”, “요즘 멤버들의 데뷔 전 사진 및 글까지 낱낱이 보고 있다”는 반응이다. 그 중 한 대형 소속사 팬클럽 관리 담당자는 “소속사와 팬클럽 사이의 소통 부재가 문제”라며 “사실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등의 경우도 소속사에서 정확한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라고 말한다.
이 담당자는 “소속사와 팬클럽 간의 간담회가 종종 열리긴 하지만 보통 아이돌 그룹은 팬들의 우상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문제는 철저히 비밀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 소속 스타를 좋아하는 팬들이기 때문에 비밀화, 신격화시키기보다는 어느 정도 소통의 장만 마련해놓아도 소속사에 대해 이렇듯 극단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는데 소속사의 방침에 문제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