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부를 땐 국가고시장으로 참 쉽죠잉~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병역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병역연기제도가 병역 기피에 악용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심지어 8년 동안 22번이나 군입대를 연기한 경우도 있었다. 병역법의 허점과 각종 편법을 동원하고 브로커까지 가세해 가능해진 일이다. 그렇다면 연예인의 경우 어떤 방법으로 군 입대를 연기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연예인이 ‘일신상의 이유’로 입영을 연기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과연 그 일신상의 이유란 무엇일까.
최근 들어 연예인들의 군 입대가 줄을 잇고 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 복무를 해야 하는 만큼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 연예인이 군에 입대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면 연예인 군 입대에서 일종의 트렌드가 있다. 최근 트렌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는 대부분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다는 것. 80년생 전진(본명 박충재), 81년생 이기우, 82년생 붐(본명 이민호) 등이 최근 입대한 연예인 리스트다. 심지어 서른 살을 맞은 동갑내기 연예인들이 같은 해 연이어 군에 입대하는 풍경도 자주 눈에 띌 정도다. 최근 군 복무를 마치고 연예계로 돌아온 김종국과 조성모는 같은 날 군에 입대해 눈길을 모았는데 이들 역시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 되던 해 함께 군에 입대했다. 20대 초반에 군 복무를 하는 일반 남성들과는 상당히 다른 추세다. 두 번째는 갑작스런 군 입대가 급증했다. 전진과 붐의 경우 출연 중이던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이 차기 출연자를 결정할 틈도 주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입대했다. 과연 그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10월 22일 입대한 전진은 모두 세 차례 입영을 연기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10월 현역 입대 영장을 받았지만 ‘일신상의 이유’로 연기했고 다시 올해 초 건강상의 문제로 군 입대를 연기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입영 연기를 신청했지만 병무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급박하게 군 입대가 결정됐다. 역시 10월 입대가 예정돼 있던 젝스키스 출신 장수원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3개월 군 입대를 연기해 내년 초에 입대할 예정이다.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연예인의 군 입대 연기 사유는 대부분 ‘일신상의 이유’다. 물론 병역법에는 단순히 ‘일신상의 이유로 입영을 연기해준다’는 조항은 없다. 그렇다면 병역비리 브로커까지 동원해 군 입대를 미룰 까닭도 없다. 결국 연예인들이 말하는 일신상의 이유는 매스컴에 밝히는 이유일 뿐 실제 병무청에 밝히는 이유는 따로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연예계에는 ‘병역법 전문가(?)’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과거에는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병역법을 연구(?)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병역 기피 역풍이 워낙 거세 병역 기피보다는 입영 연기를 위한 연구(?)가 더 많다. 병역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군 입대를 미뤄보자는 취지다. 연예인 스스로 군 입대를 연기하기 위해 병역법을 공부하는 이들도 있고 매니저들이 병역 문제까지 알아서 해결해주기 위해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군 입대를 앞둔 남자 연예인이나 그들의 매니저 가운데에는 병역법에 능통한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군 입대를 연기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해야 될 과정은 대학 입학이다. 대학에 입학할 경우 휴학 등을 통해 최대 25세까지는 군 입대를 자동 연기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입영 문제는 26세부터 발생한다. 여기에 대학원까지 입학할 경우 27세까지 입영이 연기돼 28세 이후 고민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 요즘 연예계에 대학원 입학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데 이런 학구열이 군 입대 연기라는 또 다른 선물까지 연예인에게 건네주고 있는 셈이다. 다만 대학과 달리 대학원은 연예계 활동으로 수업에 빠지는 게 용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군 입대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입영을 미루기 위한 용도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병무청 홈페이지에는 매우 다양한 군 입대 연기 사유가 기재돼 있다.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입영 시기를 연기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다. 그런데 연예인이라고 여기에 해당되는 사유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족 위독, 사망 등 가사정리가 필요한 때’ 연기가 가능하다고 해서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길 바랄 수는 없는 일이고, ‘천재·지변 기타 재난’으로 연기를 받고자 재난을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실제로 이런 사안에 의해 입영을 연기하는 연예인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당연히 연기해야 하는 사안이다.
▲ 최근 입대한 붐, 이기우, 전진(왼쪽부터). 이들은 일반인에 비해 다소 ‘꽉 찬 나이’에 군대에 가게 됐다. | ||
실제로 함께 일하던 남성 연예인의 입영 연기를 이런 방법으로 해결해준 적이 있다는 한 매니저는 “1년에 200만~300만 원가량 학원비를 내야 하는데 연예인 입장에선 그리 무리되는 금액이 아니다”면서 “학원비만 내고 실제론 학원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데 종종 학원에서 병무청 감사가 있을 예정이라는 연락이 오면 그때만 가면 된다”고 설명한다. 다만 재원증명서를 통한 입영 연기는 1회만 인정돼 그 다음부터는 1~3개월가량 짧게 연기되는 단기 연기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단기 연기 방법으로는 대략 세 가지 방법이 주로 쓰인다. 우선 국가 자격증 시험 및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방법이 있다. 가장 흔히 쓰이는 방법인데 어려움도 크다. 입영 영장을 받고 입영을 앞둔 상황에서 적절한 국가 자격증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 일정을 찾지 못하면 이 방법을 써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시험에 응시하는 연예인들이 많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개그맨은 “몇 해 전 입대 시점에 다다른 한 가수가 공연 관련 자격증 시험에 응시했다가 그 사실이 알려지자 공연 연출에 관심이 많다고 밝혀 화제가 됐는데 실제론 입영을 연기하기 위해 해당 시험에 응시한 것일 뿐”이라며 “이런 까닭에 다양한 시험에 응시하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심지어 나는 농촌지도사 시험까지 봤다”고 얘기한다. 이런 시험에 응시만 하고 실제론 시험을 치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병무청 감사에 대비해 시험을 직접 치른다. 이 부분에서 브로커가 활개를 친다. 입영 영장을 받고 급박해진 연예인에게 적절한 국가시험을 찾아내 응시 원서를 대신 써주는 식으로 입영을 연기해준 뒤 100만~200만 원가량을 받고 있는 것.
이외에도 해외여행, 질병 치료 등의 이유로 단기 입영 연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만 질병 치료의 경우 최근 병무청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각종 병원 진단서를 첨부해 질병 치료로 입영을 연기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서른 살에 근접한 고령 입영자의 경우 입영을 연기해주기보다는 군에 입대한 뒤 훈련소에서 질병 치료 사유로 귀가조치를 받으라는 방향으로 판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군에 입대한 전진의 경우 올해 초에 이어 두 번째 질병 치료를 위한 입영 연기를 신청했지만 병무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새 병무청의 입영 연기 심사가 상당히 엄격해졌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입영이 연기될 줄 알았다가 연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급박하게 군에 입대하는 연예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경찰의 병역비리 수사를 통해 입영 연기 신청이 악용되고 있음이 드러난 만큼 병무청의 심사 및 감사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병역법에 의한 입영 연기는 분명 합법이다. 개인의 사정에 의해 군 입대를 늦추는 것은 의무를 부여한 국가가 당연히 해줘야 하는 배려이기 때문이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의 직업적 특성도 고려해줘야 한다. 다만 다니지도 않는 학원의 재원증명서를 통해, 혹은 엉뚱한 국가시험을 치른다는 빌미로 입영은 연기하는 것은 분명 불법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