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낙하산’ 떨어지기만 기다리나
김종욱 전 SBI저축은행 부회장의 후보등록이 부결되는 등 저축은행중앙회 차기 회장 선임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사무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저축은행중앙회는 상호저축은행법 제25조에 설립 근거를 두고, 1973년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출범한 비영리단체다. 중앙회 회장 등 임원진은 동법 시행령 제23조의 2에 따라 회장과 부회장(전무이사) 각 1명과 회원이사, 전문이사로 구성된다. 회원이사는 현직 저축은행 대표로 6명 이내에서 선출할 수 있고, 전문이사는 대표가 아닌 사람으로서 금융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자를 선출한다. 부회장과 전문이사는 회장의 추천을 받아 총회에서 선출하도록 돼있다. 현재 중앙회 회원이사는 6명, 전문이사는 2명이다.
구체적인 회장 선출 방식은 중앙회의 ‘임원선출에 관한 규정’에 따른다. 먼저 회장후보가 되려는 자가 회장후보 추천의뢰를 한다. 이후 회추위에서 회장후보의 가부를 결정한다. 이때 회추위 위원 7명 중 5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비로소 회장후보가 된다. 이후 79개의 모든 회원사가 속한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회장후보가 단독이냐 복수냐에 따라 총회의 가결 정족수가 달라진다. 단독인 경우엔 회원사 과반수 출석, 출석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복수일 경우엔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오면 당선되고, 그렇지 않으면 득표수 상위 1, 2위 두 명을 후보로 재투표해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가결된다.
일단 회장후보가 되는 것도 만만찮다. 바로 회추위라는 산을 넘어야하기 때문이다. 회추위는 현직 저축은행 대표 4명, 중앙회 전문이사 2명, 전직 회장 1명으로 총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현재 회추위원 중 업계 대표는 박기권 진주저축은행 대표, 양현근 민국저축은행 대표, 홍승덕 아산저축은행 대표, 이건선 부림저축은행 대표 4명이다. 전문이사는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와 정영철 법무법인 시공 변호사가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직 회장 위원 1명은 현 최규연 회장 전임인 주용식 전 회장이다. 김종욱 전 부회장은 바로 이 회추위를 넘지 못 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김종욱 전 SBI저축은행 부회장
또한 김종욱 전 부회장은 언론에 “중앙회가 관료 출신 회장을 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김 전 부회장이 업계 경력이 짧아서 그렇다는 건 핑계다. 이번에도 역시 위에서 관선 인사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냐”며 김 전 부회장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현 최규연 회장은 조달청장을 역임했고, 주용식 전 회장도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장을 지낸 관료 출신들이다.
이에 대해 중앙회 관계자는 “낙하산 인사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다”며 관선 논란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께서 관피아 척결을 천명하지 않았느냐. 이런 분위기에서 관선 인사가 회장으로 오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서의 회추위원도 “은행연합회 등 다른 금융협회가 이번에 전부 민선 회장이 되지 않았나. 이번 회장은 민간 출신 중에 될 것이 확실하다”고 전망했다.
이 회추위원은 후보등록 부결에 대해서 “업계에서는 (김 전 부회장이) 누군지도 잘 모른다. 그분이 후보로 등록할 거라 예상도 못했다”며 “회추위가 준비를 잘 해서 좋은 분을 모시겠다”고 설명했다. ‘회추위에서 후보를 직접 추천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가능하다”고 했다. 이를 전해들은 업계 관계자는 “회추위에서 민이든 관이든 이미 점찍은 사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김 전 부회장의 후보등록 부결을 두고 중앙회가 자충수를 뒀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업계 경력이 짧다고 쳐냈는데, 그럼 앞으로 입후보할 사람들은 최소한 김 전 부회장보다는 경력이 길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종욱 전 부회장은 행시(23회) 출신이지만 현대증권 등을 거쳐 2013년 9월부터 2년여 동안 SBI저축은행 대표를 맡았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직을 맡으려면 현직 대표직에서는 물러나야 하는데 (회장으로) 오려고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그동안 회장으로 ‘정치권이든 관계부처든 인맥이 있는 사람이 대관 업무를 잘하지 않겠느냐’며 관피아 출신만 거쳐 갔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진짜로 업계 목소리를 금융당국에 제대로 내줬는지 의문이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의 말마따나 차기 회장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된 김하중 동부저축은행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 후보 등록기간에 입후보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종욱 전 부회장이 낙마한 상황이라 김 부회장이 회장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동부저축은행 관계자는 “대표께서 이미 고사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업계 관계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부분도 있다. 바로 “업계를 잘 알고 업계의 목소리를 금융당국에 강력하게 내 줄 수 있는 분이 회장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업계에 10년 이상 몸담았다는 한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79개 저축은행은 서로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졌다. 지배구조, 규모, 지역분포 등에 차이가 있기에 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때문에 지금처럼 차기 회장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에선 누구든 쉽게 나서지도 못 하고, 또 누가 (회장이) 되든지 불만의 목소리는 터져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지난 13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전국 6개 권역 지부장 및 부지부장과 중앙회 회원이사가 참석하는 연석회의가 열렸다. 이들은 모두 현직 저축은행 대표들이고 회추원들도 포함돼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앞서의 회추위원은 “(금융계 전체) 업계에서 시간을 두고 훌륭하신 분을 뽑겠다”며 “이번엔 (후보로) 많은 분들이 응모할 것으로 예상한다. 관에서 누가 내려오진 않을 것이며, 이를 다른 대표들도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회 관계자도 “회의에서 (회장 선임 문제에 관하여) 특별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25일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고, 그때 향후 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누가 후보로 나설 것인가’에 모아진다. 과연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받아들 ‘훌륭한’ 인물이 선뜻 나타날지 두고 볼 일이다. 현 최규연 회장의 임기는 12월 6일까지다.
정재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