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꺼내 ‘레임덕 막기’ 노림수
홍문종 의원이 개헌론을 꺼내자 윤상현 의원이 수습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이를 두고 친박계의 개헌론 이슈화 전략이 아니냐는 관측이 돌고 있다. 말풍선 안은 여권에서 대통령-친박 총리 조합으로 거론되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 최경환 부총리. 연합뉴스
내치 후보로 거론된 최경환 부총리에 대해 대선 캠프에도 관여했던 여권 관계자는 “최 부총리는 연세대, 위스콘신 라인을 통해 사실상 기재부와 산업부 핵심 관피아에 지배력이 큰 인물이다”며 “BH(청와대) 내에도 최경환 라인이 다수 포진하고 있고, 친박 맹주 자리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앞서의 인터뷰에서 “5년 단임제 대통령제도는 이미 죽은 제도”라며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를 두는 것이 5년 단임제 대통령제보다 정책의 일관성도 있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홍 의원은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반기문 대통령과 친박 총리의 조합’도 “옳다 그르다를 떠나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즉각 또 다른 친박 핵심으로 통하는 윤상현 의원이 홍 의원의 발언 확산을 막기 위해 나섰다. 윤 의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홍 의원의) 개인의견일 뿐”이라며 “다수가 공유하거나 공감하는 의견도 아니거니와 그러한 논의 자체도 전혀 없다. 이를 친박계의 개헌론으로 부풀리는 것은 사실과 다른 공상”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윤 의원은 “지금은 권력구조 변경에 한눈 팔 때가 아니다.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법, 한-중 FTA의 국회 의결에 집중해야할 때”라며 “개헌 논의는 내년 총선으로 구성되는 20대 국회에서 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다. 경제와 개혁에 몰두해야 할 시기에 엉뚱한 분란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친박 핵심인 두 의원이 시각차가 드러난 순간이다. 사실 윤 의원은 줄곧 친박 대권주자 만들기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 9월 윤 의원은 “친박계에도 차기 대선에 도전할 사람이 있다”면서 “지금의 대선주자는 의미 없다”고 말해 비박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또한 친박계 대권주자 만들기 노력의 일환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에게 총선 출마를 권유했다고 알려져 있다. 즉 지금까지의 행보에 비춰볼 때 홍 의원은 개헌을 통해 반 사무총장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내치를 친박이 맡는 방식을 노리는 반면 윤 의원은 친박 대권주자를 만들어 대권 승리를 노려왔던 듯하다.
하지만 국회 주변에서는 홍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을 실언으로 보거나 윤 의원과 미래 계획에 대한 방향이 다르다고 보는 시선은 의외로 많지 않다. 또한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과 홍 의원이 개헌 발언 전 만남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오히려 홍 의원이 슬쩍 청와대 의중 ‘간보기’에 나섰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윤 의원이 즉각 반박에 나선 것을 두고서도 말들이 나왔다. 개헌론을 일단 던져놓고 반응을 본 뒤, 좋으면 더 치고 나가고 반응이 안 좋을 때는 친박끼리 알아서 정리해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전략 아니었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여당 사무총장을 지냈고 3선 의원인 데다 정무감각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홍 의원이 허튼소리를 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사전 조율하고 개헌론 띄우기에 나선 것으로 봐야한다”며 “두 의원은 특히 친박 핵심 중 핵심으로 분류되는 데다 홍 의원이 던지고 윤 의원이 받아치는 장면이 너무 체계적이서 오히려 짜고 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 의원이 바람잡이 역할을 하면서 꺼내 놓은 개헌론에 가장 머쓱해진 사람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지난해 10월 김무성 대표는 중국 상하이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라면서 “오스트리아 식 개헌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당시 친박계는 이를 두고 “개헌 논의는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라고 못 박았다. 논란이 계속되자 김 대표는 결국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체면을 구긴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친박계가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번 개헌 논의는 결국 친박계가 김 대표를 배제하고 반기문-친박의 조합만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일종의 무시와 다름없다. 최근 김 대표는 집권여당 대표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는 비판 속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설 때마다 공항에 나가 배웅하고 있다. 이번의 개헌 논의는 최근의 김 대표의 저자세에도 불구하고 친박계는 김 대표를 차기 대권주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시그널과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김 대표도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시기상, 내용상 개헌론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김 대표는 “얘기 안 하겠다. 그건 그 사람들한테 가서 물어봐야지 왜 나한테 물어보느냐”라고 말했다.
친박계의 ‘자가발전’에도 불구하고 개헌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개헌을 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다. 야당이 분열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감안할 때 새누리당이 3분의 2에 해당하는 200석을 가져가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인다. 총선 자신감이 넘치는 새누리당에서 개헌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 비박계의 동의를 구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이원집정부제라는 제도에 대한 거부감과 국민투표를 넘어서야 한다.
전직 야당 의원은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일치단결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총리와 대통령으로 쪼개져 있어 둘이 다툴 여지가 있는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본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내각제가 안 된 것처럼 이원집정부제도 마찬가지다”고 밝혔다.
반면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권력구조 문제는 의외로 합의가 쉬울 수도 있다. 누군가의 정치적 의도와 별개로 여의도에선 대통령 힘을 나눠놓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크다”며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개헌론이 꽃놀이패다. 개헌론을 통해 총선 이후 여야 차기 주자로 쏠릴 관심을 차단하고 박 대통령과 정부가 관리자 노릇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윤 실장은 “지금 청와대 발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은 ‘레임덕 최소화’와 ‘여권차기주자군에 대한 영향력 극대화’ 방정식에 넣어보면 답이 잘 나온다. 재집권은 오히려 그 다음 과제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즉 이번 개헌 카드를 던진 이유가 재집권보다는 레임덕 최소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