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 울린 지가 언젠데…아직도 깜깜 무소식
코리아세븐의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에 대해 공정위는 만 2년째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조사 과정은 깜깜이다. 임준선·최준필 기자
# 앉아서 매해 70억, 현저한 저가 ATM 수수료
참여연대와 법무법인 세광은 세븐일레븐 가맹점주들의 민원을 모아 지난 2013년 11월 코리아세븐의 불공정행위를 시정해달라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이들에 따르면 코리아세븐은 세븐일레븐 편의점주들에게 설명이나 동의 없이 워크인쿨러, 오픈쇼케이스, 에어컨, 냉동고 등 편의점 핵심 설비를 롯데기공을 통해 사들여 공급하고 있다.
코리아세븐과 편의점주 간 가맹계약서를 보면 가맹점에 공급된 설비를 관리하고 교체, 수리하는 업무는 원칙적으로 편의점 사업자가 하게 돼 있다. 설비의 유지나 보수를 위해 업체를 선정하는 것도 편의점주 고유권한이다. 그러나 코리아세븐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통해 편의점 시설유지보수를 롯데기공을 통해 하도록 하고 있다.
코리아세븐은 각 편의점당 매월 시설유지보수비 8만 원을 원천징수한다. 결국 롯데기공은 7600곳이 넘는 세븐일레븐 편의점들로부터 매해 70억 원이 넘는 돈을 자동으로 코리아세븐으로부터 지급받는다. 설비 고장 발생 시 수리비용을 별도로 편의점에게 청구하는 것은 물론이다.
코리아세븐 관계자는 “중고 제품은 가맹점주들과 협의를 통해 리뉴얼(중고)제품을 공급해왔다. 2013년 10월부터는 이에 대한 사전 고지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며 “시설유지보수업무는 경쟁사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 다만 경쟁사들에 비해 원천징수하는 금액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편의점 시설 전체를 적용해 그런 것 같다”라고 밝혔다.
또한 코리아세븐은 가맹계약상 근거와 점주 동의 없이 롯데피에스넷과 현금인출기(ATM) 설치계약을 체결했다. ATM 건당 수수료는 편의점 기기 설치를 허락하는 조건으로 편의점주에게 지급해야 한다. 문제는 수수료가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세븐일레븐은 최근까지 편의점주들에게 건당 수수료 55~60원 지급했다. 경쟁사인 GS25는 건당 100원씩이다.
또한 코리아세븐이 2010년부터 인수해 운영하는 또 다른 편의점 브랜드 바이더웨이와의 수수료 차별도 문제다. 코리아세븐은 바이더웨이와 한국전자금융 간 ATM 설치계약을 통해 건당 수수료로 240원씩을 편의점주들에게 지급한다. 세븐일레븐 편의점주들이 직접 ATM 설치계약을 체결하려해도 한국전자금융은 “(롯데피에스넷과 계약으로 인해) 세븐일레븐 간판을 달고 있으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오영중 법무법인 세광 변호사는 “코리아세븐이 ATM 설치와 관련, 롯데피에스넷과 계약하도록 한 행위는 끼워 팔기에 해당할 수 있다. 롯데기공에 시설관리 보수를 맡기는 것은 일감 몰아주기 전형”이라며 “가맹계약서상 근거 없거나 가맹점주들의 동의를 받고 행한 행위들도 원천 무효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코리아세븐 관계자는 “세븐일레븐은 ATM 설치 비중이 경쟁사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며 “ATM은 CD와 달리 출금 외에 입금은 물론 부가서비스도 가능하고 설치비용도 많이 든다. 또한 최근 가맹점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건당 90원 수준까지 높였다”라고 주장했다.
신동빈 회장
코리아세븐의 이러한 행위들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뜻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코리아세븐은 신동빈 회장이 개인주주로서 최대인 9.5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 신동주(4.10%), 신영자(2.47%), 신유미(1.40%), 총수 일가 4남매의 지분이 17%를 넘는다.
코리아세븐으로부터 불공정거래 혐의로 지원을 받는 롯데기공과 롯데피에스넷은 그룹 내 대표적인 부실 계열사였거나 경쟁력을 상실해 앞으로의 성장이 어려운 한계기업이다. 롯데기공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아 그해 영업 손실 629억 원, 당기순손실 881억 원, 부채비율이 무려 5366%에 달했던 곳이다.
결국 이 회사는 2009년 2월 환경·건설사업부문을 롯데건설에 매각하고 같은 해 4월 그 외 사업부문이 롯데알미늄에 흡수합병되면서 살 길을 찾았다. 롯데기공을 떠안은 롯데알미늄은 롯데그룹 총수일가 경영권 분쟁에서 향배를 가를 캐스팅 보트 회사들이 주요 주주로 포진한 곳이다. 롯데알미늄 최대주주는 신동빈 회장이 대표인 L투자회사(34.92%)다. 이어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장악한 광윤사(22.84%)가 2대 주주다.
공정위에 따르면 롯데알미늄으로 흡수된 후 롯데기공 재무상태는 호전돼 2009년 10억 원, 2010년 34억 원, 2011년 1억 원 등 당기 순이익을 거뒀다. 코리아세븐 등 그룹 유통부문의 지원에 힘입은 덕이다. 2012년 이후 재무 상태에 대해 롯데기공은 공개를 거부한다. 롯데기공 관계자는 “민감한 상황으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롯데피에스넷의 최대주주는 32.3%의 지분을 보유한 코리아세븐이다. 이밖에 롯데정보통신과 롯데닷컴이 31.3%씩을 갖고 있다. 세 회사는 올해까지 최근 3년간 367억 원 규모의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금수혈에 나섰다. 이러한 퍼주기 식 지원에도 롯데피에스넷은 2012년 23억 원, 2013년 32억 원, 지난해 48억 원 등 수년째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코리아세븐이 일감 몰아주기를 안했다면 손실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리아세븐의 롯데기공과 롯데피에스넷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에 대해 공정위는 만 2년째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조사 과정은 깜깜이다. 그간 신고인들이 공정위로부터 조사와 관련해 받은 사안은 담당부서가 서울사무소에서 기업정책국 가맹거래과로 변동됐다는 지난해 6월 공문뿐이다.
조사에 진척이 전혀 보이지 않자 신고인들은 공정위의 조사와 제재 의지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증거들이 구체적이어서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지 않음에도 조사가 장기화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결국 공정위의 시정조치 지연으로 그 피해는 편의점주들만 고스란히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절차에 따라 제재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익창 비즈한국 기자 sanbada@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