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관 ‘혁명의 충성자금’이 밑천
김정은의 통치자금은 1인독재체제의 재정적 통제 장치다.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103회 생일인 4월 15일 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의 1인독재 체제 프로세스 이면에는 완벽한 정보 장악, 군과 안보기관에서 비롯되는 강제적 물리력은 물론 촘촘하게 얽혀있는 3중 4중의 통제와 감시 시스템이 실시간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최고지도자의 통치자금 수급체계이다. 즉 현재 북한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김정은의 진짜 금고이자 돈줄을 눈여겨봐야 한다.
앞서 연재에서 살펴봤던 북한의 독재 요소들이 채찍이라면, 김정은의 통치자금은 당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통치자금은 북한을 구성하는 핵심계층에 통용된다. 그 구성을 보자면, 북한 로열패밀리들과 혁명 1~3세대를 포함한 최고위층 2000여 명, 중앙 및 지방 당·군·행정 간부를 포함하는 약 2만 명의 고위층이 이 통치자금에 의해 길들여지고 통제된다.
여기에 더불어 북한에서도 선택받은 계층이라고 하는 평양시민 170만~180여만 명(이는 2014년 내부 자료에 따른 수치다. 평양시 인구는 2011년 220여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도시 인구 자체가 축소됐을 가능성이 있다)의 식량과 필수품 공급에 대한 재정투자 역시 이 통치자금을 밑천 삼아 이뤄진다.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도 주민들은 북한 체제를 일컬어 ‘간부공화국’ 또는 ‘평양공화국’이라고 부른다.
김정은 비밀금고의 핵심은 39호실과 38호실이다. 우선 39호실부터 살펴본다. 39호실은 1970년대 말 경제권 장악을 위해 김정일이 직접 재정경리부 1과를 주축으로 만들었다. 물밑에서의 실제 작업은 최희벽 당시 중앙당 재정경리부장이 직접 진행했다. 참고로 최 부장의 자제 중 한 명인 최세웅 현 모닝스타즈 사장은 1995년 탈북해 현재 한국에서 기거 중이다.
이 39호실의 창립목적은 애초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의 통치 비자금을 만드는 부서로 발족됐다. 39호실 내 모든 사업은 김정일의 지시나 사인이 들어간 지령에 의해 움직인다. 사실상 김정일이 직접 실장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중앙당 조직지도부 내에도 사실상 담당 조직지도부 부원이 없다. 단, 관련 중앙당 서기실(김정일 서기실)에 관련 보고를 하는 담당 간부가 있을 뿐이다. 그 밑에 당 제1부부장급 간부가 해당 부서의 책임 실무자로서 활동한다. 39호실은 북한의 국책기관 중 하나인 대성은행을 직접 관할한다. 대성은행은 대성지도총국, 대흥지도총국, 경흥지도국, 락원지도국, 금강지도국 등 북한 내 최고 외화벌이 부서들을 직접 관장한다.
39호실 이후 발족한 38호실은 좀 더 사적인 비밀금고라 할 수 있다. 39호실은 앞서 말했듯, 기존의 김일성과 김정일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소위 당 자금 용 금고라면 38호실은 김정일이 보다 내밀한 목적으로 별도로 마련해둔 개인용 비밀창구라 하겠다. 38호실은 국책은행 중 고려은행을 관할하며 국제호텔, 외화 상점 및 식당 운영 등 알짜 외화수출입 관련 사업들을 직접 관장한다. 38호실은 또한 북한의 농수산물, 광물자원, 특산물 등 외화원천 중 곧바로 현금화되는 사업들만을 직접 관장하는 특혜를 받고 있다.
또한 당 재정경리부가 있다. 당 재정경리부는 애초 김일성 시절만하더라도 당비와 당 내 후생경리사업과 관련되는 당내 재정만 관리하는 부서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거둬드린 당비를 유급 당 비서들에게 알맞게 나눠주거나 중앙당 간부들의 후생경리사업과 관련된 내각에서 배정된 극히 일부의 돈을 관리하는 사업이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초 김정일이 후계자로서 당을 장악하고 또한 그중에서도 조직지도부에 모든 힘을 실으면서, 재정권 역시 중앙 집중화 작업을 꾀했다.
조직의 규모 역시 어마어마하게 비대해졌다. 1980년 6차 당 대회를 기점으로 김정일이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재정경리부는 현재까지 사실상 북한 내 모든 공식경제, 움직이는 돈과 관련해서 당에서 전적으로 관리하는 부서가 됐다.
내각을 중심으로 한 재정계획 분야에선 당 계획재정부가 통제한다. 계획재정부는 내각의 계획위원회를 통해 일선 하부단위 마지막 단위까지의 재정 계획을 세운다. 한국으로 따지면 내각의 기획재정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산하에는 외부에도 익히 잘 알려진 조선중앙은행과 조선무역은행을 두고 있다.
이외에도 북한만의 독특한 경제 구조라 할 수 있는 제2경제, 즉 군수경제를 관할하는 기관은 당 군수공업부다. 당연한 논리지만, 북한의 제2경제는 김일성 시대에서부터 존재했지만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를 겪으면서 무수히 발전하고 성장했다. 그 밑에 창광은행(군이 관장하는 해외 외화관련 사업들을 전담)과 용학산 은행(군 내부 경제를 관할. 현재 장성택 숙청 여파로 인해 일시적으로 폐쇄된 것으로 파악된다)은 공식적으로 잘 알려진 조선무역은행의 보유 자산액과 비교해도 월등한 것으로 파악된다.
201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경남도 금야군 원평대흥수산사업소를 시찰하는 모습. 당시 비자금 관리책 전일춘 39호 실장(왼쪽 끝)이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연합뉴스
한국을 포함한 북한 외부의 경제학자들은 북한의 경제규모와 체계를 논할 때, 비교적 잘 알려진 외화 관련 중앙은행인 조선무역은행만을 중심에 놓고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당 39호실이 직접 관장하는 대성은행이나 군이 관장하는 창광은행, 용학산 은행 등을 제외한다면, 이는 북한 경제에 있어서 빙산의 일각만을 두드리는 꼴이다.
북한의 경제 구조는 대략 수령·당·군수·내각 경제 등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북한 최고지도자의 통치자금은 그저 38호실과 39호실에 의해서만 수급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에선 세수 확보를 통해 나라살림을 대체로 투명하게 운영한다지만, 북한과 같은 1인독재 체제는 원칙적으로 경제 체제의 중앙 통제와 관장을 통해 나라살림을 이끈다. 즉 비공식경제가 주요 원천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수령중심의 독재체제에 기반 한 공식경제 시스템은 이미 오래전에 근본적으로 무너졌다. 대신 ‘혁명의 충성자금’이라 불리는 일종의 상납금이 존재한다. 이 상납금이야말로 현재 김정은 통치자금의 두둑한 밑천이 된다. 그 규모는 대략 연간 1억~2억 달러에 이른다. 필자가 분석한 각 주요기관들의 연간 상납 액 대체적인 규모는 다음과 같다.
▲재정경리부 2000만 달러 ▲39호실 2000만 달러 ▲당 행정부 2000만 달러 ▲군 총정치국 1000만 달러 ▲인민무력부 1000만 달러 ▲보위사령부 1000만 달러 ▲정찰총국 1000만 달러 ▲국가안전보위부 1000만 달러 ▲73총국(과거 금수산경리부) 1000만 달러 ▲당 경공업부, 작전부, 평양시 등 핵심권력기관들 평균 200만 달러 수준 등이다. 소위 말하는 이 혁명의 충성자금은 사실상 북한 법적 구제력은 없지만 실제적으로 강제력을 띤다. 외화벌이에 많은 특혜와 권한이 주어지는 권력이 크면 클수록 보다 많은 충성자금을 위에 받쳐야 한다. 이러한 충성자금은 각 기관의 사업과 관련해 벌어들이는 돈 중 일부를 상납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경우에 따라 일선 주민들에게도 갖가지 명목을 내세워 이 충성자금을 강제적으로 거둬들인다.
예를 들어 김정은은 최고지도자에 오른 후 민심을 얻기 위해 몇 차례 깜짝 상여금을 일선 주민들에 지급한 바 있다. 어느 경우에는 일선에서 은퇴한 주민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상여금을 지급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는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여금을 지급하기 이전에 김정은은 일이 있을 때마다 갖가지 명목으로 일선 주민들에게 혁명자금을 걷어가고, 그중 아주 미미한 일부를 상여금의 형태로 되돌려주는 구조기 때문이다. 앞서 강조했지만, 김정은과 그 이전 최고지도자들의 통치자금 사용처 및 주요 타깃은 분명 일선 주민들보단 핵심계층일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북한의 경제구조와 상납체계를 컨트롤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분야는 고도의 경험과 연륜은 물론 전문성까지 필요한 분야다. 과거 오랜 기간 후계자 수업을 통해 최고지도자 자리에 연착륙한 김정일의 경우, 본인이 직접 이러한 경제 시스템을 관할했다. 허나 김정은은 그러한 경험을 쌓을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단연코 현재 이를 컨트롤하는 주체는 어린 지도자 김정은의 능력이나 경륜으로는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김정은은 안보와 군부를 통제하고, 각종 현지지도 행사를 소화하기에도 상당히 벅찰 지경이다.
현재 북한의 경제구조와 여기서 비롯된 상납체계 및 통치자금을 운영하고 컨트롤하는 주체는 누이 김설송임이 틀림이 없다. 현재 김설송은 중앙당 서기실을 간접적으로, 국방위원회 서기실을 직접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하여 이 모든 시스템을 본인이 직접 컨트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이전에 돈줄을 쥐고 있던 중앙당 조직비서 김경희의 퇴장 직후 김설송은 이를 접수하여 현재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언급되고 있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경우, 아주 극히 일부분에 한하여 수령경제 분야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내부 정보에 따르면, 현재 김여정은 호위사령부의 여러 관할 사업과 김정은의 소위 1호 행사 집행 계획 정도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