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곧 열린다’자기 성 쌓기 경쟁중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왼쪽), 허윤홍 GS건설 전무
이런 흐름은 삼성에 국한하지 않는다. 재계 관계자는 “2016년은 재벌가의 젊은 오너들의 스펙 쌓기와 후계 구도의 틀이 마련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말마따나 4대그룹 황태자들의 승진은 없었지만 재계 순위 10위권 안팎 그룹의 황태자들은 승진과 자리 이동을 통해 그룹 내 입지 강화를 선포했다. 이들이 그룹 핵심 사업부에 소속돼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연말 임원인사에서 가장 먼저 부각된 인물은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다. 지난 2013년 부장으로 재입사해 1년 만인 2014년 말 상무로 승진한 정 전무는 또 다시 1년 만에 전무로 고속 승진을 거듭 했다. 그룹 내 역할도 확 커졌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사우디 아람코 및 인도와 협력 사업을 책임지고 수행할 뿐 아니라 조선과 해양 영업을 통합하는 영업본부 총괄부문장을 겸직할 것”이라며 “영업 최일선에서 발로 뛰면서 해외 선주들을 직접 만나는 등 수주활동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대일외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정기선 전무가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때는 2009년. 1982년생으로 당시 27세에 그는 아버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대리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불과 7개월 만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수료하고 2011년 귀국한 정 전무가 선택한 곳은 현대중공업이 아니라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지사다. 정 전무는 1년 9개월 동안 그곳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정 전무가 현대중공업에 복귀한 것은 2013년 6월, 31세에 경영기획팀 부장 자리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자랑하던 현대중공업이 31세 오너 아들을 부장으로 복귀시켰다는 점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경력만으로도 부장급 대우에 손색이 없고 경영기획팀이 핵심부서도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모두 오너 경영을 위한 발 빠른 움직임이었다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데다 정 전무가 핵심 사업을 이끌게 된 만큼 새해 역할과 성과에 따라 경영인으로서 정 전무에 대한 평가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장남 허윤홍 GS건설 사업지원실장은 전무로 승진했다. 1976년생인 허 전무는 한영외고와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또 워싱턴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LG와 GS가 계열분리하기 전인 2002년 LG칼텍스정유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2005년 GS건설로 자리를 옮긴 후 지금까지 GS건설의 성쇠를 같이 하고 있다.
GS건설은 GS칼텍스와 함께 GS그룹의 핵심 축이다. 2013년 초까지 큰 위기를 겪었던 GS건설은 국내 주택경기가 살아나면서 2015년 3분기 10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6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2014~2015년 성과를 바탕으로 승진한 허 전무가 2016년 그룹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건설부문에서 경력을 쌓는다면 그룹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더욱이 GS건설 최대주주는 지분 11.02%를 보유하고 있는 허창수 회장이다.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박서원 (주)두산 전무,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1983년생으로 미국 세인트폴고등학교와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전무는 한화그룹이 명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태양광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11년부터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줄곧 한화솔라원·한화큐셀에 몸담으며 태양광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김 실장의 요청과 고집으로 한화가 태양광사업을 크게 벌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태양광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계속 할 것”이라고 알렸다.
김 전무의 고속 승진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하나는 2015년 한화그룹의 태양광사업의 성과와 실적에 대한 보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한화그룹 3세 경영의 본격화다. 김 전무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을 맡던 2011년부터 한화의 태양광사업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다 2015년 2분기가 돼서야 12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3분기 영업이익은 466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삼성을 비롯해 LG,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이 태양광사업을 포기하는 와중에 한화는 4년여 동안 극심한 적자를 보면서도 오히려 사업 규모를 키웠다.
태양광 업황은 바닥 탈출 신호와 함께 2015년 그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태양광업계 관계자는 “공급 과잉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고 파리기후협약 등의 영향에 따라 태양광시장에 볕이 들고 있다”며 “2016년 태양광시장이 기지개를 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전무의 고속 승진은 새해 기대치가 높은 태양광사업에서 그룹 후계자에 힘을 실어 주는 조치로 해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는 또 한화그룹 3세 경영과 연결된다. 현재 김승연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 중인 탓에 경영활동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장남인 김 실장이 전무이자 그룹 핵심사업 담당자로서 집행유예 중인 아버지를 도우며 그룹 경영에 한 발짝 더 다가설 것으로 예상된다. 김승연 회장의 차남 김동원 부장이 한화생명 전사혁신실 부실장으로 전보발령 난 것도 한화그룹 3세 경영의 본격화와 관련짓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은 연말인사를 통해 새해부터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두산 전무를 겸직한다. 두산이 지난 11월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 진출에 성공하면서 박 부사장에게 또 하나의 중책을 맡겼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면세점 운영유통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무의 겸직 인사는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동안 ‘광고인’으로서 그룹 경영에 관심이 없고, 박용만 회장 역시 ‘전공’에 전념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한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던 터다. 그런 박 전무가 두산이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여기고 진출하는 면세점 사업의 핵심으로 그룹 경영 테두리 내에 들어온 것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사이즈에 따라 직책이 결정되기에 부사장과 전무를 겸직할 수 있다”며 “면세점 경영이나 그룹 경영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전략적인 면을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무는 비록 공정거래법상 두산그룹 계열사로 분류돼 있지만 독립회사나 마찬가지인 광고기획·제작사 빅앤트의 대표로 있으며 두산그룹 광고계열사 오리콤의 부사장직도 맡고 있다. 연말인사에서 ㈜두산 전무까지 겸직, 그룹 내에서 영향력과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1979년생인 박 전무는 상문고를 졸업하고 단국대에 진학, 중퇴했다. 2005년 미국 유학을 떠나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지난 연말인사에서 30대 젊은 오너들의 전진 배치가 두드러진 가운데 40대 여성 오너 3세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의 승진은 더욱 눈에 띈다. 특히 정 사장 승진은 2009년 12월 부사장 승진 후 무려 6년 만이다.
1972년생인 정 사장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1991년 이화여대 비주얼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이듬해인 1992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그래픽디자인 전공)에 입학, 1995년 졸업했다. 학력에서도 알 수 있듯 정 사장은 줄곧 미술과 디자인 공부를 해왔다. 디자인학교 졸업 후 정 사장은 1996년 조선호텔 상무로 입사했다.
그동안 신세계의 패션·뷰티사업을 담당해온 만큼 정 사장은 새해 신세계가 새로 진출하는 화장품 제조업을 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 12월 23일 이탈리아 화장품 제조사 인터코스와 합작,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를 설립해 화장품 제조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아직 인사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항공정보기술 솔루션 회사인 아시아나세이버 대표도 맡고 있는 그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 이후 본격적으로 후계 승계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1975년생인 박 부사장은 휘문고와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 AT커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 부사장이 금호아시아나에 들어온 것은 2002년 아시아나항공 자금팀 차장으로다. 금호아시아나는 금호산업 인수가 마무리된 후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3~4세 지분보유 따져보니… 후계 승계 결정적 난제 여기 있었네 재벌가 오너 3, 4세들의 2016년 활약이 기대되는 한편 이들이 후계 승계를 위한 지분이 취약하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아무리 그룹 핵심 사업부에서 ‘스펙’을 쌓고 경영자로서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후계 승계에 걸맞은 지분이 없는 한 그저 오너 일가에 불과할 뿐이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는 2015년 3월 25일 상여금 명목으로 현대중공업 주식 53주를 받으면서 비로소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지난 12월 24일 현재 정 전무의 보유주식은 280주. 상여금으로 주식을 받은 이후 틈틈이 주식 수를 늘렸지만 대주주 장남이자 기업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후계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개미’ 수준이다. 정몽준 대주주의 지분은 10.15%다. 재계 일부에서는 정 전무가 회사로 복귀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데다 올해 처음으로 주주가 된 것에 의미를 두기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 지분을 정식으로 물려받으려면 세금을 비롯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재계 한 인사는 “회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현대중공업의 소유와 경영 분리가 깨진 상황에서 이미 준비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허윤홍 GS건설 전무의 그룹 지주회사 ㈜GS 지분은 고작 0.49%다. 아버지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GS 지분도 4.75%로 그리 많지 않지만 지주회사의 대주주로 올라 있다. GS그룹은 LG그룹과 함께 장자 승계 원칙을 따르고 있다. 허 전무가 허창수 회장의 뒤를 이을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앞으로 지분을 어떻게 늘려나갈지, ㈜GS 지분을 조금씩 분산해 보유하고 있는 허씨 일가와 친인척들이 훗날 어떻게 허 전무를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로 등극시킬지 관심을 끈다. 지난 12월 16일 현재 허창수 회장을 비롯해 허씨 일가 친인척 49명과 사회복지법인 동행복지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GS 지분은 46.38%다.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는 이미 후계승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무가 50%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 있는 한화S&C의 몸집 불리기 작업이 한창이라는 것. 한화S&C의 100% 자회사 한화에너지가 외형 확장에 나서면서 한화S&C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향후 ㈜한화와 한화S&C의 합병을 통해 김 전무의 지분을 늘리거나 한화S&C의 상장으로 후계 승계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유경 사장의 신세계 계열사 지분은 오빠인 정용진 부회장에 한참 못 미친다.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정 사장은 현재 신세계 2.5%, 이마트 2.5%, 신세계인터내셔날 0.4%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정용진 부회장의 지분은 신세계 7.3%, 이마트 7.3%다. 정 부회장은 또 광주신세계 52.1%, 신세계건설 0.8%, 신세계아이앤씨 4.3%, 신세계인터내셔날 0.1% 등도 보유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그룹의 양대 축인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각각 18.22% 보유하고 있는 이명희 회장이 이 둘을 정점으로 각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훗날 이 회장의 지분이 누구 손에 더 많이 쥐어지느냐에 따라 그룹 경영권의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