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도 승진도 ‘돈’으로 산다
김정은 시대 북한 주민의 성공과 영전의 첫 조건은 과거와는 달리 출신 성분이 아닌 돈이다. 사진은 평양 거리. 사진제공=김대중평화센터
현재 북한 경제 시스템은 사회주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상 북한 체제와 김정은 정권은 이미 뿌리 깊게 자리잡기 시작한 시장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 북한사회에서 성공하고 영전하기 위한, 또한 윤택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제일 첫 조건은 출신 성분이었다. 두 번째가 당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었다면 세 번째는 객관적인 기술과 능력쯤 되겠다.
하지만 현재 김정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성공과 영전의 첫 조건은 돈이다. 둘째는 무엇일까. 역시 돈이다. 셋째 역시 돈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젠 그 다음이 출신 성분과 능력이라 하겠다. 그만큼 현재 북한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수경제는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먼저 목격되고 있는 분야는 응당 교육이다.
북한에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중등교육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평양중앙제1중학교(과거 남산고급중학교로 불리던 과학영재 특수학교), 금성제1중학교(예술영재들뿐만 아니라 사실상 훗날 고급 당원 양성의 목적이 강한 특수학교), 금성제2중학교(컴퓨터영재 양성 특수학교) 등이다. 북한 내 평양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이러한 엘리트 중등교육기관 출신자들 대부분은 북한의 이른바 중앙 중점대학(평양 내 명문대학교를 지칭)에 입학하게 된다.
이러한 엘리트 중등교육기관의 경우 과거엔 출신성분과 실력을 위주로 학생들을 선발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특수학교에 다니기 위해선 한 달에 200~500달러의 상납금을 교원에 바쳐야 한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요즘은 비공식적인 과외강사가 암암리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터라 사교육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무리 출신 성분이 좋고, 실력이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특수학교에서 매월 평균적으로 걷어가는 이 살인적인 상납금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아예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공식적·비공식적 성격이 뒤섞인 돈이다. 특수학교 교원들은 매달 학생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돈을 걷는다. 이를테면 이러한 것이다. 청년동맹 혹은 소년단 조직 상납금, 교육시설 증편을 위한 자금 마련 등이다. 물론 이러한 상납금의 상당수는 교원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이것은 북한 교육 현장의 한 관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씀씀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그 학생은 학교생활이 꽤 어려워진다. 금성제1중을 다닌 김정은의 현 부인 리설주는 명문학교 출신자 중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케이스였다. 그런 그도 대학을 다닐 때 주변 동기 학생들의 ‘씀씀이’를 따라가지 못해 ‘왕따’취급을 받았다는 정보도 보고된다.
대학의 상황도 비슷하다. 북한 최고의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김일성종합대학(김일성대)의 경우를 놓고 보자.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일성대에 입학하기 위해선 2000~3000달러의 상납금이 필수라고 한다. 법학, 외국어학, 정치경제학 등 인기학과와 핵물리학 등 비인기학과의 시세는 약간 차이가 난다고 한다. 과거 실력 위주 선발, 무료 고등교육의 신념이 사실상 무너진 것이다.
북한 역시 대학의 등급이 나뉘어 있는데 등급에 따라 입학 상납 액이 다르다. 최근에는 해외 체류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어학계통의 대학과 졸업 후 권력기관 진입 혹은 해외진출이 가능한 특수대학들이 비교적 높은 상납금 시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점은 최근 북한 내부에서 일종의 ‘기부금 입학제’가 시행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하물며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만큼은 논란의 대상으로 남아있지 않는가. 앞서의 입학 상납금은 분명 실력이 겸비된 일반 학생들의 시세다. 그런데 최근 각 대학의 상납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실력과 상관없이 거액의 상납금을 내면 입학을 허가하는 비공식적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 이는 김일성대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 시세가 무려 2만~3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김정은 시대 해외 체류를 위한 상납문화도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현재 북한 체제에선 돈만 있다고 하면 유학이건 외화벌이건 어렵지 않게 됐다. 일단 해외유학 문화를 살펴보자. 북한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대 국가와의 협약에 따른 국가 장학생들을 위주로 유학생들을 파견했다.
물론 이러한 국비 유학제도는 현재도 유효하지만 그 밖의 경로가 넓어지고 있다. 사실상 해외주둔 외교관이나 무역일꾼들의 자녀들에 대해선 주둔지역에서 자비로 유학을 시키는데 별다른 제재가 없어졌다. 오히려 장려한다고 한다. 단, 자녀 중 한 명은 반드시 북한 내부에 남겨둬야 한다는 조건이 철저하게 달리지만 말이다. 이는 역시 이들의 주둔지 이탈 혹은 망명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최근 소식통에 따르면, 이와 관련한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사실상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여권 장사에 나섰다는 점이다. 현재 보위부 내 한 기관에서 1400달러의 상납금만 낸다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북한 주민들이 자녀 유학, 외화벌이를 위한 해외 체류 등을 위한 여권 발급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북한 내부 여권 발급 관련 당사자들인 국가안전보위부 해당 부서와 각 기관 내 해외체류자 담당 안전보위원은 특별한 옵션을 달기도 한다. 상납할 1400달러를 제외하고 600달러를 더 얹어 2000달러면 해외에 친척을 만들어서까지 거주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정권의 곳간이 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돈과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가장 주목되고 있는 부분은 북한 당 조직과 권력기관 내부의 승진, 영전을 위한 상납 문화다. 한 예로 국방위원회 직속 인민보안부의 경우를 살펴보자. 북한의 인민보안부에서 승진하고 영전하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기관 내 고등교육기관이자 재교육기관의 정규적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김정일인민보안대학의 4년 과정이다.
이 대학과정을 들어가기 위해선 약 5000~8000달러가량의 상납금이 필요하다. 물론 과거의 보안대학 입학생들은 인민보안부 내 충성도가 높고 능력이 출중한 인재들을 선별해 훗날의 간부 양성을 위해 운영됐다. 허나 이제는 상납의 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유력 부서의 배치와 승진을 위해선 응당 시시때때마다 상급자에 적잖은 상납금을 반드시 바쳐야 함은 당연하다. 이는 북한 내 어느 권력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들을 위한 국가 위락시설의 이용도 최근 들어 정권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평양의 초대형 국가 목욕 및 물놀이시설인 창광원이다. 약 3만 제곱미터 크기로 건설된 창광원은 북한의 위락시설 중 가장 유명한 장소다. 원래 창광원의 입장료는 북한 돈 200원에 불과하다. 현재 미화 1달러가 북한 돈 8000원 정도라고 추산해 볼 때, 이는 불과 2.5센트의 저렴한 돈이다. 하지만 요즘 평양 시민 어느 누구도 이 저렴한 비용으로 창광원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창광원 입장권은 각 권력기관으로 분배되는데 일반 주민들은 값이 네다섯 배로 훌쩍 뛰어버린 암표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한다. 사실상 지분에 따라 입장권을 배당받은 각 기관들은 이 표를 갖고 평양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강원도 원산에 위치한 송도원 휴양소(정식명칭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도 비슷한 케이스다. 본래 이 휴양소는 북한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된 초호화 청소년 전용 휴양소로 지어졌다. 하지만 현재 청소년들이 이 휴양소를 이용하기 위해선 1주일 합숙비용 명목으로 상납금 500달러를 바쳐야 한다. 물론 이러한 상납금 일부는 관련 관리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