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치는 시장으로…‘울며 겨자 먹기’ GO!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약속했던 호텔롯데 상장이 곧 이뤄질 전망이지만 가족 간 경영권 분쟁 등 악재가 겹쳐 기업가치가 반토막 난 상태로 상장시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진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재계 관계자들은 호텔롯데 상장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의 총수가 있는 주요 대기업 중 지주사 혹은 지주사 역할을 하는 회사가 상장돼 있지 않은 기업은 롯데뿐이다.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기업집단 롯데 해외 계열사 소유 등 현황’을 보면 롯데그룹의 내부 지분율은 85.6%, 순환출자 고리는 67개다. 공정위 집계상 10대그룹에서 롯데를 제외한 9개 그룹의 평균 내부 지분율이 53%, 전체 순환출자 고리가 94개라는 점과 비교하면 롯데의 그것들이 어느 정도로 높고 많은지 증명된다.
한국 롯데의 86개 계열사 중 상장사는 8개로 9.3%에 불과하다. 재계 관계자는 “호텔롯데 상장은 롯데그룹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재료”라며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 분쟁으로 곤경에 처했을 당시 제일 먼저 상장을 들고 나온 이유”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가족 간 경영권 다툼으로 비난을 받던 지난해 8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을 위해 호텔롯데 상장을 약속했다.
호텔롯데가 상장한다면 베일에 가려져 있던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일정 부분 공개되고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호텔롯데 상장이 지배구조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기업이 공개됨으로써 공시 의무가 생기고 끊임없이 감시를 받기 때문에 의문스러운 부분들을 풀어내는 작업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상황은 이미 신동빈 회장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호텔롯데 상장을 가로막고 있던 ‘5% 이상 주주 보호예수’ 관련 규정이 완화돼 호텔롯데의 상장예비심사가 통과됐다. 기존 규정에 따르면 기업이 상장을 원할 때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의 ‘상장 후 6개월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했다.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를 통해 호텔롯데 지분 5.45%를 보유하고 있는 신동주 회장이 그동안 이를 반대함으로써 상장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신동주 회장은 지난해 10월 “신동빈 회장이 중국에서 대규모 손실을 내고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허위보고한 사실을 입증할 것”이라며 제기한 ‘롯데쇼핑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지난 2일 취하한 것도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반격의 계기가 됐다.
취하 직후 롯데그룹은 “회사와 주주 공동의 이익에 반하는 악의적 소송이었으며 중국 사업 손실 의혹이 근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불필요한 논란으로 인해 롯데는 기업 가치에 환산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으며 나아가 주주, 투자자, 소비자들 역시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 두 가지 사건에 이어 호텔롯데가 상장한다면 신동주 회장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신동빈 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된다는 의미다.
호텔롯데 상장은 신동빈 회장에게 순환출자 해소, 지주사 전환 등 그룹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쓰일 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데는 약 7000억 원, 향후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약 7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우선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어서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금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신동빈 회장 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문제는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 데 있다. 지난해 8월 신동빈 회장이 호텔롯데 상장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호텔롯데의 기업가치와 시가총액은 약 2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평가받았다. 공모 규모 역시 8조~10조 원이 예상됐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국내외 이미지가 추락한 데다 지난해 11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수성에 실패하면서 기업가치가 반 토막이 나버렸다. 비록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지켜냈으나 가까운 거리에 유통 라이벌 신세계가 새로이 면세점을 개점함으로써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1일 공정위의 발표도 호텔롯데 가치를 떨어뜨린 요인이 됐다. 코스피지수가 1900선까지 무너지는 등 주식시장 역시 침체 상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기업공개(IPO·상장)를 미뤄야 할 때다.
그럼에도 신동빈 회장은 오히려 상장을 서둘러야 할 입장이다. 공개적으로 약속한 일인 데다 ‘2월 상장 목표’마저 이미 틀어진 터다. 안 그래도 지난 연말연초 일부에서 ‘호텔롯데 상장이 연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속이 쓰릴 일이지만 지금은 돈보다 경영권이 우선”이라며 “하루 빨리 본인 체제를 확립해 분쟁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상장에 이어 롯데정보통신, 코리아세븐 등 주요 계열사 상장도 계획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일본롯데 상장도 추진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순환출자 고리 완전 해소와 지주회사 전환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 경영 투명성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