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원합의체 회부 안 돼 상고기각 가능성 커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재상고심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8월 14일 휠체어를 탄 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일요신문DB
[일요신문] “실형이 불가피하다. 피고 이재현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다.”
지난해 12월 15일 파기환송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2부)는 “더 가벼운 혐의를 적용하라”며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언론은 물론, 법조계 관계자들 대부분이 예상한 집행유예를 뒤엎는 결론이었다. 이 회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법원을 떠났다. 그리고 “예상외로 실형이 선고돼 막막하고 참담하다”며 재상고했다. 파기환송심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법원 판단을 받은 이 회장은 이제 다섯 번째 재판을 앞두고 있다. 사실상 마지막 판결은 과연 이 회장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 회장의 혐의는 가볍지 않다. 그는 1990년대 중·후반 조성한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운용하면서 546억 원의 조세포탈과 963억 원의 횡령, 569억 원의 배임 등 총 2000억여 원의 범죄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 기소됐다. 2심 재판부는 이재현 회장이 일본에서 개인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그룹 해외법인 CJ재팬 등을 보증인으로 세워 회사에 392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경
대법원은 적용된 법을 문제 삼았다. 특경법이 아닌 형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 특경법보다 형법상 배임이 처벌 형량이 더 가벼워 법조계에서는 집행유예를 예상했다. 앞선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 징역 3년을 선고한 탓에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형을 다소 줄인 뒤 “이 회장의 몸 상태를 고려했다”고 덧붙이면 얼마든지 집유 선고가 가능하다고 예측한 것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취지를 그대로 인용했다. 대법원 판단대로 이 회장에게 특경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고 배임액도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형량은 징역 3년에서 2년6개월로 줄였을 뿐 “이미 앞선 재판에서 건강상의 이유는 양형에 반영됐다”는 이유로 이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사하지는 않았다.
이제 관심은 대법원이 이 회장의 재상고 주장을 받아줄지 여부다. 집행유예를 희망하는 이 회장 측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대법원에서 다툴 수 없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10년 이하의 징역인 경우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없다. 때문에 지난해 12월 22일 재상고한 이재현 회장 측은 부동산 매입으로 벌어들인 이득액(범죄액)을 산정할 수 없고 재산상 손해가 없었다는 것을 재상고의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법원 내에는 이 회장의 재상고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건 자료를 본 적은 없지만, 대법원이 한 번 다뤘던 사안을 다시 부정할 수 있을까요?”
대법원 내부 동향에 밝은 한 법조인의 설명이다. 섣불리 재판 결과를 예상하기 힘들지만, 법조계 내에서는 ‘상고기각’이 사실상 확실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재판도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 역시 “이미 한 번 들여다 본 자료이지 않느냐. 연구관들 입장에서 봤을 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 만큼 큰 고민 없이 대법관에게 보고서를 올릴 것이고, 대법관들 입장에서도 괜히 시간을 질질 끌면서 재벌을 봐줬다는 비난을 받을 필요가 없다”며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취지 그대로 2심 재판부가 따랐기에 이제 와서 대법원이 다시 손을 대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전망했다.
이재현 회장 사건이 처음 대법원을 왔을 때는 나름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고 한다. 대법원에는 4명으로 구성된 소부(小部)가 3개 있는데 소부에서 전원일치가 되지 않는 경우 대법관 13명이 다수결로 판단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된다. 이 회장 사건은 소부에서 전원합의체로 한 차례 회부됐는데, 그때 소부에서는 파기환송의 근거가 된 특경법상 배임 혐의 적용에 대해 2 대 2로 의견이 나뉘었다고 한다.
소부에서 팽팽히 맞선 까닭에 결국 전합으로 사건을 올렸지만 막상 전합에서 의견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대법관들이 압도적으로 “배임 혐의 적용에 문제가 있다”는 방향으로 정리가 된 것. 오히려 “뭘 이런 것까지 전합에서 하느냐”는 얘기가 나왔고, 결국 소부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번 재상고심의 경우 전합에 가지 못하면 사실상 상고기각의 메시지라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대법원 다른 관계자는 “이미 전합을 한 차례 거쳤다. ‘소부→전합→소부’를 거친 사건이기에 판결이 바뀌려면 사건이 다시 전합으로 가야 한다”며 “그러나 소부에서 의견이 또 나뉘어서 전합으로 올라와야 한다는 얘기인데, 전합으로 사건이 올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재현 회장 사건은 2월 전합 회부 사건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3월에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재상고심에서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재현 회장 변호인 측이 어떤 주장을 새롭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앞선 네 번의 재판에서 나오지 않은, 그러면서도 법리적으로 충분히 납득 가능한 주장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는 피고인 측이 기존 주장을 뒤집을 새로운 논리를 만들지 못했다는 게 대법원 내 중론이다. 소부 대법관들이 어지간한 CJ 측 논리에는 끄덕도 하지 않을 거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재경 지법의 한 관계자는 “이미 CJ 측에서는 그동안 재판에서 매번 새로운 논리를 펼치며 법리 공방을 벌여왔는데,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만큼 더 만들어낼 논리도 없을 것”이라며 “설사 CJ가 새로운 논리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그 논리가 대법관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CJ 측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은 그동안 가장 기업인의 범죄에 관대한 모습을 보여줬던 대법원의 스탠스 정도다. 대법원은 1심, 2심에 비해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를 많이 고려하기 때문. 하지만 앞서의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이미 한 번 내린 결정을 뒤집는 게 쉬운 집단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남윤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