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게 도둑질…그 수법 그대로 또!
밸류인베스트코리아 퇴사자 일부가 개설한 비공개 인터넷 카페 ‘백테크’. 오른쪽은 이들의 사무실 전경. 고성준 인턴기자
VIK 퇴사자 일부는 지난해 5월 ‘백만장자의 재테크(백테크)’라는 비공개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이들은 이 카페 외에 페이퍼컴퍼니 세 회사를 차려 각각 투자금을 모았다. 백테크가 지주회사 격이다. 법인등기부상 백테크의 대표는 권 아무개 씨로 돼있다. 다른 세 업체 대표는 각각 안, 김, 서 아무개 씨다. 그러나 막후에서 실질적인 ‘오더’를 내린 인물은 P 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들과 투자자들은 그를 ‘P 이사’라 칭하고 있다.
이들은 홍보자료를 만들어 인터넷 카페 방문자에게 배포했다. 백테크 직원들은 스스로를 ‘코치’라고 부른다. 홍보자료에 소개된 코치들의 ‘스펙’을 보면 꽤나 화려하다. VIK 영업직원 출신으로 백테크에서 대표코치로 불린 김 아무개 씨는 예전에 소프트뱅크 한국지사에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경제도서 3000권을 독파했고 연평균 60%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계열사 대표로 돼있는 안 씨 역시 연평균 40%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자”는 김 씨의 ‘대의’에 동의하여 백테크에 합류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백테크 직원들 중 일부는 케이블 방송에 출연해 자산운용 전문가 행세도 했다. 백테크는 자신들이 이 방송사를 인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보자료에 따르면 자신들은 특별한 사모펀드를 운용해 수익을 낸다고 한다. 일반적인 사모펀드는 고액의 투자금을 내야 참여할 수 있지만 자신들은 최소 100만 원부터 소액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모펀드를 개발했다는 것. 동시에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자신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접하고 있으므로 수익이 안 나려야 안 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백테크는 앞서의 페이퍼컴퍼니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각각 ‘GI XX호’, ‘IR XX호’, ‘MN XX호’라는 투자 종목을 만들었다. 종목 수는 40개가 훌쩍 넘는다. 또 종목 설명서에는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와 투자기간, 목표 수익률 등이 간략히 나와 있다. 이 허술한 설명서 한 장을 믿고 고객들은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돈을 맡겼다.
사건이 불거진 것은 한 투자자가 의문을 품으면서다. 그는 ‘IR 04호’라고 명명된 종목에 투자했다. 이 종목은 부산 신창동의 한 빌딩 매입 잔금 마련을 위한 것이다. 부산 여행 중 우연히 자신이 투자한 빌딩을 찾아가 보게 되었는데, 낡아서 거의 폐허가 된 건물이 눈앞에 펼쳐진 것. 그가 백테크 카페에 해당 사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글을 게시하며 논란이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이틀 뒤 한 영업직원이 카페에 내부 비리를 폭로하는 글을 올렸다. 이 직원은 투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또 어떻게 자금이 회수되는지 알 수 없다고 폭로했다. 그는 약 2주 전에 백테크가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이후 그는 검찰에 관련 사실을 고발했다.
투자자들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몇몇 투자자들은 합심하여 정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검찰에 사기 등의 혐의로 백테크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서울강남경찰서 지능범죄수사과 지능1팀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15일 백테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해 관련 증거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테크 직원들은 비공개 SNS를 통해 신입 영업직원들에게 ‘영업교육’ 동영상을 배포하기도 했다. 입수한 동영상에는 앞서의 대표코치 김 씨가 등장한다. 영업교육은 고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럴듯한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동영상에서 김 씨는 “그냥 막 뱉는 거예요. 진짜 같잖아요?”라며 능숙하게 강의한다. 김 씨는 19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백테크를 퇴사했다. 경찰 조사도 모르는 얘기”라고 해명했다.
한편 계열사 직원 신 아무개 씨는 한 피해자와의 통화에서 백테크가 투자한 회사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편법을 썼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장이 예상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주가조작 행위를 한 셈이다. 대상 기업은 코스닥 상장사인 M 사. 실제로 당시 M 사의 주가는 계속 상승해 지난해 11월에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피해자들은 P 씨가 이 회사 대표와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수십억 원의 투자를 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계좌이체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일요신문>과 만나 “홍보자료를 읽고 나서 속는 셈 치자 생각하고 투자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듯하더라. 그날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1000만 원을 송금했다”며 “이후에 다른 종목에 투자하라는 권유 문자가 수없이 날아왔다. 그때는 직접 코치를 만나보지도 않고 그냥 돈만 입금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당시에는 무언가에 홀렸던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다른 피해자는 “VIK에서 나를 담당했던 직원이 회사를 옮겼다기에 자연스레 그 직원에게 계속 투자를 맡겼다”며 “이후 VIK 사건이 터지고 거기서도 돈을 못 받고 있던 차에 이번 일이 발생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백테크 설립을 주도했던 P 씨는 투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백테크의 다른 직원들과 투자자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상태다. 또 대표코치 김 씨 역시 이미 백테크에서 발을 빼고 또 다른 카페를 만들어 같은 수법의 영업행위를 하고 있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던 대다수 피해자들도 단체행동에 나설 전망이다. 이들은 투자자 대표로 김 아무개 씨를 추대하고 위임장도 작성했다. 이들은 백테크가 아닌 P 씨와 그의 여자친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백테크 대표 권 씨와 앞서의 계열사 대표 안 씨는 여전히 백테크에 남아 회사 정상화를 위해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고 한다. <일요신문>은 P 씨의 해명을 듣기 위해 그의 휴대전화로 여러 번 통화를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이처럼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도,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파찰음이 커지고 있다. 이런 모습마저 VIK를 꼭 닮았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