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점은 복점…빼면 날 못 알아볼걸요”
▲ 지난해 9월 출산하고도 코트를 누비는 전주원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인터뷰를 끝내고 해답을 찾았다. 그것은 그의 밝고 긍정적인 천성 때문이 아닐까.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은퇴했다가 다시 코트로 돌아온 전주원은 세월을 잊게 만들었다. 그를 만난 기자들의 한결같은 평가가 ‘여전하다’는 것이었기 때문.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9월에 딸을 낳은 후 여러 차례의 번복 끝에 결국 코트에 다시 서게 된 그는 모든 게 이전 그대로였다. 외모나 체력 어느 부분에서도 나이를 먹었다거나 출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신한은행배 2005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1라운드 최우수선수(MVP)에 뽑히는 등 전성기를 능가하는 기량을 뽐냈다. 도대체 그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결혼 전과 후는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차이는 아주 커요. 제가 다시 농구공을 잡게 되면서 제 가족들의 희생과 고생이 만만치 않거든요. 엄마 사랑을 듬뿍 받고 커야 할 제 딸 수빈이와 절 대신해서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어머님을 생각하면 대충 할 수가 없어요. 이전보다 더 잘 뛰어야죠. 애 떼어놓고 운동하는 엄마가 성적이 안 좋으면 뭘로 보상 받을 수 있겠어요.”
아줌마의 힘보다는 모성의 힘이었다. 전주원은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면서 아이와 생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운동을 하는 마당에 대충 대충의 플레이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더 악착 같고, 더 끈질기고, 더 인내하고, 더 노력하면서, 어렵게 다시 선택한 선수로의 복귀는 ‘여전사’의 이미지가 물씬한 또 다른 전주원을 만들어 냈다.
전주원은 은퇴 후 신한은행에서 코치로 활동하다 주위의 강권에 의해 다시 유니폼을 입기까지 참으로 어려운 결정의 순간이었다고 되뇌인다.
“전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 아내, 며느리 노릇하면서 가족들과 더불어 살고 싶었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20년간 쌓아온 제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런데 잘 나지도 않은 제 이름 석자가 참으로 부담스럽더라구요. 신생팀인 데다 성적도 최하위를 맴돌고 있고 ‘해결사’만 있다면 얼마든지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조금씩 용기가 생겼어요.”
몸이 마음을 못 따라간다면 고민 끝에 한 결정도 소용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짧은 기간 동안 훈련을 통해 몸을 만들면서 체력이 회복되는 걸 느꼈고 ‘주연’은 아니더라도 ‘조연’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자신감도 더해졌다.
▲ 농구코트에 주저앉아 기자와 인터뷰하는 전주원. ‘미시족’답게 솔직 담백한 입담이 술술. | ||
항간에선 전주원의 선수 복귀를 놓고 ‘후배들의 길을 빼앗는 근시안적인 처사’라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자의보단 타의에 의해 코트로 다시 돌아온 전주원 입장에선 넉넉히 이런 비난들을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없었을 것 같다. 전주원은 유독 이 질문에 대해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세대교체라는 건 제가 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후배가 실력을 쌓아서 선배를 딛고 올라서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또 어린 선수들이 많다고 해서, 그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실력과 능력이 되면 그냥 계속하는 거예요. 전 절대로 후배들 자리를 빼앗지 않았어요.”
자신을 둘러싼 곱지 않은 시선들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도 물론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 시선들을 이겨나갔다. 그러나 막상 팀 선수로 돌아와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주위의 삐딱한 관심들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단다.
“어느 팀이나 ‘기둥’이 있어야 해요. 전 지금 그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후배들도 제 존재에 대해 많이 든든해하고 있다고 믿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많이 쓰지만 어릴 때는 컨디션이 나빠도 이해와 용서가 된 부분들이 지금은 코트에서 조금이라도 헤매는 것 같으면 절대 용서를 안 하시거든요. 나이 먹어 다리에 힘이 풀렸다고 애써 폄하하시려는 분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가끔은 그런 점들이 서운할 때가 있어요.”
전주원은 서른네 살의 유부녀란 타이틀보다는 농구선수 전주원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 전주원이 2000년(오른쪽), 2003년(왼쪽) 코트를 누비던 모습. ‘스마일퀸’이라는 별명답게 뛰면서도 밝은 얼굴이 인상적이다. | ||
이에 대해 전주원은 “영옥이와는 밖에서 둘도 없는 언니 동생 사이지만 코트에선 조금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적’”이라고 설명했다.
“동생이라고 생각하면 농구가 되겠어요? 남편을 상대팀 선수로 만나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승부의 세계니까요. 하지만 코트에서 벌어진 일들은 코트 밖으로 나오면서 다 잊어버려요. 그렇게 안하면 감정 쌓여서 못 살아요. 영옥이랑 미묘한 신경전을 벌일 때도 있지만 그때뿐이죠. 너무 매스컴에서 자꾸 문제화시키려는 것 같아 좀 안타까워요.”
전주원은 체질적으로 키가 작은 선수의 수비를 싫어한다. 장신의 선수보다 악착같이 마크를 하기 때문이다. 김영옥의 철벽 수비가 다소 ‘귀찮다’라고 표현할 만큼 두 사람은 천적임이 분명하지만 직업이라고 못 박는다면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다고 여유를 보인다.
전주원은 어렸을 때부터 스타였다. 어린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촌 생활을 했을 때는 남자 선수들 사이에서 ‘스마일 퀸’으로 뽑힐 만큼 인기 절정을 이뤘고, 농구팀이 묵고 있는 숙소에는 대부분 전주원과의 통화를 원하는 남자 선수들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는 후문이다.
이런 과거에 대해 그는 다소 쑥스러워하면서 당시 유영주가 전주원한테 오는 전화를 모두 차단시킨 역할을 맡았다며 에피소드를 곁들인다.
“당시엔 연애하면 운동 못하는 줄 알았어요. (유)영주 언니가 철통 보호를 해주는 바람에 스캔들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쬐금’ 아쉬운 부분도 있죠? 후후. 아줌마가 이런 얘기하면 안 되는 건데… 그렇죠?”
전주원이 신한은행의 유일한 ‘애엄마’ 선수라면 용병 트라베사 겐트(34) 역시 ‘아줌마’ 선수다. 전주원은 트라베사를 ‘섹시 아줌마’로 부르며 말은 잘 안 통해도 아줌마들끼리만 갖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면서 두 ‘미시족’의 투혼을 지켜봐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수백 번도 더 들었을 입가의 점에 대해 또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점 뺄 생각이 없냐는 유치한 질문이었다.
“복점이라고 하던데요? 그러면서 후배들이 빼지말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죠. ‘너희들이 내가 이뻐지는 걸 싫어하는구나’하고. 그런데 이 점을 빼면 사람들이 절 못 알아 볼 걸요? 아직까진 봐 줄만 하지 않아요?” 인터뷰 말미에 은행 거래를 신한은행만 하냐는 다소 생뚱맞은 얘기를 꺼냈다. 솔직한 전주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아뇨. 오래 전부터 K은행을 이용했거든요. 조금씩 신한은행 쪽으로 이동중이에요. 에구 이거 사무실에서 알면 큰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