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인프라 구축사업’ 우리은행이 자회사 통해 추진 중 KT측이 자회사로 변경 움직임
KT 서초사옥.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앞두고 KT와 우리은행이 전산시스템 구축과 관련해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일요신문DB
오프라인 점포 없이 인터넷으로만 영업하는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전산시스템은 핵심 자산을 넘어 경쟁력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K뱅크의 전산시스템과 관련한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구축 작업을 누가 맡을 것인지를 놓고 KT와 우리은행이 물밑 주도권 싸움을 시작해서다.
K뱅크 컨소시엄은 우리은행, GS리테일, 한화생명, 다날이 각각 1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KT가 8% 지분을 갖고 있다. 지분율로만 본다면 우리은행이 KT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컨소시엄 구성 단계부터 K뱅크를 주도해왔다. 은행 관련 노하우가 전혀 없는 KT는 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해 우리은행 측에 사업모델 구상을 의뢰했고, 이를 토대로 한 기획안으로 금융위원회의 예비인가를 통과했다. 은행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설립 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각종 규제도 강하기 때문에 컨소시엄 내부에서 유일하게 은행업 경험을 가진 우리은행의 의견은 사실상 최종 결정이나 다름없는 구조였다.
K뱅크 컨소시엄은 인터넷은행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도 우리은행 측이 맡아 구축하기로 합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KT가 인터넷에 강점을 갖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은행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기존 우리은행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 시중은행은 전산시스템을 구축할 때 금융 관련 노하우가 있는 업체와 은행 내부 전산부서와 협업을 통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IT 자회사인 우리FIS를 통해 K뱅크의 전산시스템을 만들기로 하고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은행은 우선 지난 1월 내부 공모를 통해 선발한 10개 분야의 은행 인력 20여 명을 K뱅크에 투입했다. 기존 은행 연봉에 평균 10%를 더 얹어주고, 원할 경우 3년 동안은 은행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덕분에 직원들 사이에서 경쟁이 꽤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우리FIS 쪽에서도 사전 정지작업이 착착 진행됐다. 우리은행은 우리FIS를 주축으로 컨소시엄 참가 회사들을 참여시킨 ‘K뱅크추진단’을 꾸렸다. 이어 2월에는 K뱅크의 초대 CIO(최고정보책임자)에 우리FIS의 부장급 인사가 선임했고, 3월 중순에는 우리FIS를 통해 K뱅크 전산시스템 구축을 위한 업체 선정 공고도 내보냈다.
하지만 설립 준비 막바지에 이르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수상한 얘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KT가 전산시스템 구축 주사업자를 우리FIS 대신 KT 자회사인 KTDS로 변경하는 사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KTDS는 우리FIS와 비슷한 전산시스템 구축업체지만 금융에 관한 업무 경험은 KT 자회사인 비씨카드 관련 사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KT가 우리FIS를 대신해 KTDS에 전산시스템 구축 작업을 맡기는 것을 검토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선 KTDS는 최근 LGCNS 인력을 다수 충원했다. LGCNS는 SK㈜와 함께 국내 금융 관련 전산시스템 구축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업체로, 은행을 비롯한 각종 금융사들의 전산 관련 작업을 도맡아 해오고 있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대형 시중은행의 차세대 시스템 사업을 수행한 것은 물론 수협·광주·전북은행, 신한카드, 교보증권, 새마을금고 등이 모두 LGCNS의 고객사들이다.
KT는 이런 LGCNS 인력들을 확보하는 데 성공함에 따라 최대 약점인 금융 관련 경험 부족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우리은행의 노하우에 일방적으로 기대야 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끝나면 은행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KT는 현재 컨소시엄 지분을 8%밖에 갖고 있지 않아 10%를 보유한 다른 주주들에 비해 지분 면에서 열세에 놓여 있다. 이는 현행 은행법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소유 한도를 4%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KT도 산업자본에 해당돼 이 조항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지분 8% 중 그나마 4%만 의결권이 있고 나머지 절반은 의결권 없다.
하지만 은행법 개정안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정보기술(IT) 기업 등 비금융회사들도 의결권 있는 주식을 5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이 대주주로서 경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자는 취지다. 실제로 KT는 은행법 개정안만 통과되면 ‘소액주주’ 신세를 벗어나 확실한 대주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은행 명동 본점. K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은행과 KT가 인터넷전문은행 운영 주도권 싸움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요신문DB
이를 지분율로 계산하면 약 14.4%에 해당하는데, 문제는 우리은행 역시 보통주 10% 외에 우선주에 125억 원을 출자했다는 점이다. 우선주까지 합한 우리은행 지분은 13%로 KT와 큰 차이가 없는 상태다.
금융권에서는 KT가 앞으로 K뱅크의 증자 과정에서 실권주 물량을 추가로 확보해 우리은행과 지분 격차를 벌릴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K뱅크의 확실한 주인이 되겠다는 밑그림인 셈이다.
문제는 이 경우 현재 K뱅크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은행과 관계가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 KT가 경영권을 행사하고 싶어도 핵심 인프라인 전산 시스템을 우리은행이 장악하고 있는 이상 함부로 주도권 장악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금융권은 K뱅크가 출범도 하기 전에 전산시스템 구축과 관련한 잡음이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의 핵심은 안정성과 신뢰성이다. 최근에는 그중에서도 전산시스템 안정이 최우선이다”며 “전산장애로 입출금거래가 중단됐거나 보안 문제로 고객 정보가 유출됐던 은행들은 천문학적인 유무형 손실을 입었다. 하물며 전산망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터넷은행의 경우 전산시스템을 장악하면 곧 회사 전체를 손에 넣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