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주주 파인트리와 의기투합 불구 소액주주 동의 못 구해 이사회 진출 실패
서울 중구 ㈜동양 본사. 일요신문DB
지난 30일 ㈜동양 주총에서 이사의 수를 현재 10명에서 15명으로 증원하자는 유진의 안건과 16명으로 증원하자는 파인트리의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두 안건이 부결됨으로써 유진과 파인트리가 함께 낸 ‘추천이사 6명 추가 선임안’은 자동 폐기됐다.
표 대결 결과 유진의 안건은 주총 참석 주식의 56.2% 찬성에 그쳤으며 파인트리 안건은 55.8%만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표가 과반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참석 주식 수의 3분의 2 이상’, 즉 66.7%가 찬성해야 하는 ‘특별결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동양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왔던 유진은 주총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29일 동양레저가 보유하고 있던 ㈜동양 지분 3.03%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매입하고 2대주주인 파인트리의 지분마저 흡수하면서 동양 인수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하지만 ㈜동양의 70%가 넘는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동의를 최대한 구하지 못한 것이 주총에서 결정적 패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1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선언하는 등 경영권을 지키려는 (주)동양의 현 경영진과 경쟁업체인 삼표의 연합도 유진으로서는 뼈아픈 부분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도원 삼표 회장 개인과 특수관계인 명의로 동양 지분을 3.19%까지 늘린 삼표는 현재 동양의 3대 주주에 올라 있다. 삼표는 이 지분을 지난 주총에서 ㈜동양에 위임했다. 유진의 ㈜동양 경영 참여, 나아가 ㈜동양 인수를 노골적으로 반대한 셈이다. 삼표 관계자는 “지금은 동양 지분을 계열사들에 넘긴 상태”라며 “우리 지분이 유진에 갔어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었으며 우리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표 대결 전 3대주주의 향방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다른 표심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삼표의 ㈜동양 지분은 이번 주총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동양의 경우처럼 표 대결 양상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을 때는 주총 전에 이미 온갖 소문이 난무하게 마련”이라며 “가뜩이나 소액주주들의 구성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소액주주들이 힘이 센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표 지분과 상관없이 주가 상승을 노리는 소액주주들이 유진의 경영 참여를 반대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회사 가치와 발전보다 주가 상승에 따른 매각 차익에 관심이 더 많은 소액주주들의 성향상 유진의 경영 참여는 좋은 일이 아니다”라며 “경영권 분쟁이 계속 돼야 주가가 오를 텐데 유진의 참여로 일이 마무리되면 오히려 하락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30일 서울 종로 YMCA에서 열린 ㈜동양 정기 주주총회 모습. 이번 주총에서 경영권을 지키려는 현 경영진이 승리했다.
주총이 열리기 직전까지 경영권을 지키려는 ㈜동양과 경영권을 얻으려는 유진의 장외 싸움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양 직원들을 가가호호 방문해 호소하는가 하면, 소액주주들의 표와 위임장을 얻기 위해 상품권까지 뿌렸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유진 관계자는 “상품권 살포는 사실무근”이라며 “출처가 불분명한 흑색선전이 도를 넘었다”고 말했다.
유진이든 동양이든 서로 간 취약한 점은 있다. 유진은 동양 인수의 목적에 대해 의심을 사고 있고 동양은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 의도가 지적받고 있다. 둘 다 진정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유진의 경우 2008년 하이마트 인수 후 2012년 매각 과정에서 ‘먹튀’ 행태를 보였다는 점이 부각됐다. 실제로 유진은 하이마트 인수 후 4년 만에 매각하면서 수천억 원의 차익을 챙겼으며 이 과정에서 하이마트 직원들이 적잖은 고통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양 인수도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유진은 인수 후 시너지 효과나 회사 발전보다 ㈜동양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현금을 이용하려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하이마트처럼 매각할 것이고, ㈜동양 직원들에게 피해와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게 유진을 반대하는 쪽 주장이다.
반면 법정관리 기간에 법원이 임명한 법정대리인인 대표이사와 임원이 회사 발전보다 임기 동안 마음 편히 경영을 하려는 속셈이라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회사를 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법정관리에서 조기 졸업할 만큼 유동성이 풍부한 회사를 맡고 있기 때문에 현 경영진은 임기 동안 별다른 제약과 부족함 없이 경영활동을 비교적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경영진은 ㈜동양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세력이 ㈜동양을 인수하면 경영진 교체는 불을 보듯 빤한 일. 현 경영진이 경영권을 사수하려는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 경영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쪽 설명이다.
둘의 싸움에 삼표까지 가세했다. 삼표는 동양과 관련해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보유 지분 3.16%를 동양에 위임함으로써 유진과 동양 싸움에 발을 담근 셈이다. 더욱이 삼표는 지난해 동양시멘트 인수전에서 유진을 누른 바 있다. 유진은 또 국내 최대 시멘트 구매자인 데다 동양시멘트에서도 상당한 양을 구매하고 있다. 즉 유진과 삼표는 경쟁관계이자 협력관계다.
이 대목에서 의문스러운 것은 동양시멘트 인수에 성공한 삼표가 왜 ‘대형 시멘트 거래처’인 유진 편에 서지 않고 ㈜동양의 손을 들어줬느냐는 점이다. 삼표가 동양에 힘을 실어준 것이 알려지면 유진이 동양시멘트와 거래량을 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삼표가 동양으로부터 큰 제의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 전에 이미 삼표와 대형 거래처인 유진 사이에 딜이 오갔을 테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동양 쪽으로 가세하지 않았겠느냐”고 관측했다. 이에 대해 삼표 관계자는 “할 말 없고 입장도 없다”고 못 박았다.
㈜동양과 유진, 삼표가 삼각관계로 얽히면서 동양의 앞길은 더욱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비록 주총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유진은 여전히 ㈜동양 인수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유진 관계자는 “지분 매입을 계속 할 것이며 필요한 경우 임시 주주총회 소집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주총에서 ㈜동양 편을 들었던 삼표도 상황에 따라 유진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소액주주들이 언제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동양의 길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