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에 청사 이전비 3000억 요구설…조계종 “악의적 소문” 일축
2014년 9월 한국전력은 현대자동차그룹에 10조 5500억 원을 주고 서울 강남 본사 부지(7만 9342㎡)를 매각했다. 한전부지 개발에 나선 현대차그룹은 지난 2월 17일 서울시와 공동으로 한전부지 최종 개발안을 확정 발표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지난 3월 29일 서울시청 광장 앞, 환수위가 세운 천막 입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전부지 개발 인허가를 중단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날 천막을 지키고 있던 한 스님은 “종단(조계종)의 뜻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6일 전인 23일 조계종 환수위는 서울시청 광장에 임시 법당(천막)을 설치하고 서울시를 상대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환수위는 2014년 9월 한전이 현대차그룹에 매각한 서울 삼성동 본사 부지(7만 9342㎡)의 원 소유주가 종단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4장 짜리 내부 문서(한전부지 환수를 위한 종무원 교양자료)를 보면 종단의 입장이 드러난다. 종단은 “1970년 당시 봉은사 소유였던 한전부지가 청와대에 의해 강제 수용됐다”며 “이후락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신도회장 자격으로 참석해 매각 동의서에 서명하는 등 압력이 있었고, 매매 계약도 소유권자(총무원)가 아닌 제3자에 의해 체결됐다”고 주장했다. 또 종단은 윤진우, 손종목 두 전직 서울시 도시개발국장의 회고록을 인용해 “박정희 정부는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강남 토지 투기를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환수위는 3월 14일 이 문서를 조계종 종무원들에게 배포했다. 환수위는 문서 별첨에서 종단의 ‘1차 목표’로 서울시를 지목했다. 환수위는 “한전부지 개발의 인허가권자인 서울시장은 현대차로부터 1조 4700억 원이라는 부담금을 받기로 했다”며 “서울시가 전례 없이 인허가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 서울시는 현대차가 내놓은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개발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협상에서 현대차는 서울시에 1조 4700억여 원의 ‘공공기여금’을 내겠다고 제안했다. 양측은 지난 2월 17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전부지 최종 개발안을 확정 발표했다. 김용학 서울시 동남권개발계획 반장은 지난 30일 “이르면 오는 6월쯤 도시계획 변경을 거쳐 관련 부지가 상업시설로 바뀌고, 올 하반기에 본격적인 인허가가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계종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서울시청 앞 일일집회로 포문을 연 조계종은 3월 8일 범종단 차원의 환수위를 구성키로 결의했다. 또 종단은 3월 23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법회를 열고, 신도들과 함께 시청 진입을 시도했다.
29일 <일요신문>과 만난 박종현 환수위 팀장은 “개발에 앞서 진상규명을 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것”이라며 “인허가 권한이 있는 서울시에 우리의 요구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환수위 대표인 법원 스님(봉은사 총무국장)도 31일 “소유권을 가리는 소송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허가는 보류돼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28일 법원 스님 등은 이제원 서울시 행정2부시장과 만났다. 이날 면담에서 이 부시장은 “인허가 보류는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김용학 단장은 “건축 중단의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인허가가 나는 것이 현행 규정”이라며 “환수위의 일방적 주장만으로는 개발을 멈추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전 부지의 소유주이자 개발 주체인 현대차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3월 29일 현대차 측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며 답변을 피했다. 또 다른 이해관계자인 한전 측도 3월 31일 “공식적인 입장은 전달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이들 두 기업을 대하는 환수위의 태도는 다르다. 현대차에 대해선 “선의의 피해자”라며 옹호했지만, 한전에 대해선 “지난해 주주배당만 2조 원에 이르는 등 ‘돈 잔치’를 벌였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박종현 팀장은 “지난 2007년부터 꾸준히 한전에 공문을 보내 부지 환매를 요구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조계종 환수위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 입구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2007~2015년 사이 우리가 수신한 공문은 두 차례(2007, 2009년)뿐”이라고 밝혔다. 또 종단은 한전이 10조 5500억 원을 받고 본사 부지를 매각했을 때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환수위는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면담 제안도 거절했다. 이 지점에서 불교계 내부의 다른 목소리가 갈라져 나온다.
3월 31일 조재현 참여불교재가연대 정책위원장은 “종단의 사태 해결 방법과 절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양자(혹은 다자) 간 합의기구를 만들고, 개발에 따른 공익 실현을 논의하기보다는 신도들을 앞세워 종단 지도부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구습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 위원장은 환수위가 조계사 입구에 내건 플래카드 등 홍보물을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을 문제 삼고, 더불어민주당에게까지 책임을 돌린 것에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의 빌미는 박정희 정부가 제공했는데 엉뚱하게도 야당을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위원장은 “누가 봐도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추진 중인 숙원사업 조계사 성역화와 총무원 청사 강남 이전 등과 맞물리는 해석도 있다.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조계종은 조계사 성역화에 필요한 부동산 매입 및 강남 청사 건립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조계종의 1년 예산은 500억여 원. 정부 또는 기업의 재정 지원 없이는 대형 공사가 불가능한 구조다.
결국 ‘돈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한전부지 환수 조언도 ‘전일저축은행 사태’ 주범인 은인표 씨(수감 중)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스님은 “과거 은인표 측이 우리(봉은사)에게 사업을 제안했던 건 맞지만 지금은 ‘계약’이 종료돼 손을 뗐다”며 “현재 은 씨는 환수위 활동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조계종 지도부가 강남 청사 이전 비용으로 현대차 측에 3000억 원을 요구했다는 말까지 돌았다. 법원 스님은 “그런 얘길 들었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한전 부지 매각비용 10조 원 가운데 3%(3000억 원)만 남아도 어디냐’라고 했던 농담이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종단은 조계사 성역화와 청사 이전을 검토하고 있던 시점(2월)에 환수위를 출범시켰다. 법원 스님은 “악의적 소문”이라며 “내가 이 사업(한전 부지 환수) 총책임자인데 나도 모르는 일이 있을 수 없다. 한전 부지가 상업시설로 바뀌면 인근 지가가 4배나 뛴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현대차로부터 (우리와 달리) 1조 7400억 원의 기여금을 받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박종현 팀장 역시 “한전 부지 건과 총무원 이전은 별개의 사안”이라며 “의도치 않게 사업 시기가 맞물렸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