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설’은 정치인 입에서?
▶아무도 몰랐던 울산 감독 교체
지난달 26일 발표된 김호곤 감독의 울산 현대 사령탑 선임 소식은 문자 그대로 전격적이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근무했던 김 감독은 언론 발표가 나기 3시간 전인 오전 10시 45분에서야 ‘공식적인 통보’를 받았다.
“(내정 사실을) 정말 몰랐다”고 강조하는 김 감독. 또 다른 김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구단과 1년씩 계약을 연장했던 김정남 전 울산 감독은 시즌이 끝난 뒤 동유럽으로 나가 용병을 찾았다. 또 일본프로축구(J리그)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하려던 이상호에게 “1년만 더 같이 가자”고 설득해 주저앉혔다. 모두 재계약을 확신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의 신임을 받는 김 전 감독의 갑작스러운 퇴장을 보며 축구계는 한동안 그 배경을 놓고 술렁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
수원 삼성은 지난달 24일 오후 전격적으로 이천수의 임의탈퇴를 요청하는 공문을 프로축구연맹에 보냈고 몇 시간 뒤 연맹은 이천수를 임의탈퇴선수로 공시했다.
같은 달 20일 점심 식사를 겸한 기자간담회까지 열며 새 출발 의지를 보였던 이천수는 생각지도 못한 임의탈퇴에 당혹감을 보이며 에이전트에게 새 팀을 빨리 찾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그의 에이전트는 이천수보다 더 큰 한숨을 토해냈다. 일본 매니지먼트사와 접촉하면서 일본프로축구(J리그) 진출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고, 급기야 중동의 프로팀까지 알아봐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천수의 에이전트는 김호곤 감독이 울산 사령탑으로 발표된 날 울산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울산은 이천수의 친정팀이다.
▲ 구단 사장과 불화를 보인 끝에 물러난 김학범 전 감독.(위) 이천수(왼쪽아래) 이동국 | ||
리그가 끝나자마자 수많은 K리거들이 J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J리그가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원국 출신 선수에 한해 1명을 추가로 등록할 수 있는 ‘아시아쿼터제’를 도입하면서 입단 가능성이 높아진데다 ‘엔고’ 덕분에 한몫 챙길 기회도 생겼기 때문이다.
조재진·박동혁·이정수·이상호·조원희 등이 J리그와 협상을 했고 이중 일부가 꿈에 그리던 J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 복귀를 위해 유럽으로 돌아간다던 마토는 연봉 150만 달러(약 16억 원)를 안겨주겠다는 J리그 중하위권 팀 오미야 아르디자의 품에 안겼고, 이번 시즌 FA컵 우승팀 포항 스틸러스의 간판 수비수 조성환은 선수생활의 전성기임에도 J2리그(J리그 2부리그) 콘사도레 삿포로에 4000만 엔(약 5억 8000만 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입단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너도 나도 나가는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소속팀과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염기훈(울산 현대)은 구단 몰래 잉글랜드로 건너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웨스트브로미치 앨비언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염기훈은 귀국한 뒤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듯 “구단이 징계를 내린다면 달게 받겠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만일 웨스트브로미치에서 정식으로 입단제의를 하면 가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며 ‘잉글랜드 드림’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않았다.
러시아 진출에 대한 얘기도 불거졌다. 지난달 중순 FA로 풀린 조원희(수원)와 정경호(전북)가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FC 톰 톰스크에 입단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조원희는 13억~15억 원 수준의 연봉을, 정경호는 12억~13억 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는 보도였다.
FC 톰 톰스크가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재정형편이 안 좋기로 소문난 팀이라 조원희와 정경호의 동반입단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두 선수의 러시아 진출을 추진하던 관계자는 FC 톰 톰스크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는 발레리 니폼니시 전 부천 SK 감독과 한국 간의 인연을 언급하는 등 이미 계약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으면 되는 듯 보였지만 조원희와 정경호는 아직 FC 톰 톰스크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이에 대해 그의 이적을 도왔던 관계자는 “경제 한파로 러시아 구단들 모두 어려워하는지 확답을 계속 미루고 있다. 구단 관계자와 연락이 안 된다”라고 털어놓았다.
현재 조원희와 정경호의 FC 톰 톰스크 이적협상 현황은 이적실패 급물살▶입단 초읽기▶막판 변수▶난항▶협상 결렬이라는 전형적인 이적실패 시나리오 중 난항까지 진행됐다. 얼마 전 인터넷 축구언론인 <골닷컴>은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전문가의 말을 빌려 ‘뼈있는 보도’를 했다. 조원희에게 80만 유로, 정경호에게 65만 유로를 약속했다는 FC 톰 톰스크의 1년 예산은 965만 유로이며, 현재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유리 지르코프(CSKA 모스크바)로 1년에 100만 유로 정도를 받는다고 알렸다.
▶성남 감독과 구단 사장 불화
지난달 성남 일화 지휘봉을 내려놓았던 김학범 감독은 사임을 전후로 박규남 구단 사장과의 불화로 퇴진을 결심했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지난 7월 박 사장이 김 감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동국 영입을 관철시키면서 둘 사이에 앙금이 생겨 결국 파국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사임 이후 한동안 휴대전화기를 꺼놓았던 김 감독은 1주일간의 잠행을 끝낸 뒤 친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사장과의 불화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동국이를 영입하자는 박 사장의 말에 처음에는 반대 의사를 보였지만 재기시킬 자신이 있어 결국 영입에 동의했다”며 이동국을 선택한 건 박 사장이 아닌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성남 사령탑에 앉아있으면서 선수 영입 과정에서 박 사장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언제나 선택은 자신의 몫이었다고 알렸다. “그동안 구단에서는 안정환·고종수·이천수·이호 등의 영입을 희망했지만 모두 내가 반대해 무산됐다”며 “선수 영입에 내 의사가 배제됐다는 건 낭설”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동국의 성남 생활은 4개월 만에 끝났다. 성남은 지난달 31일 “계약기간이 1년 남아있는 이동국을 내보낸다”고 발표했다.
2008 K리그가 끝날 무렵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전 코치가 K리그 감독을 맡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처음에는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이후 성남과 울산도 거론됐다.
수원 관계자들을 펄쩍 뛰게 만들었던 소문의 근원지는 축구인이 아닌 정치인의 입이었다. 이 정치인은 정치부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수원 차기 감독은 홍명보가 맡아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후 그의 발언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그럴싸하게 퍼졌다.
홍 전 코치가 서울 감독을 맡는다는 소문은 서울과 귀네슈 감독이 계약 조건을 합의하던 중 이견을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서울은 지난해 귀네슈 감독과 ‘2+1’로 계약했다. 2년 동안 지휘봉을 잡고, 나머지 1년은 상황에 따라 재계약한다는 것이다. 2년 만에 서울을 정규리그 준우승에 올려놓은 귀네슈 감독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기존 연봉보다 좋은 조건을 서울에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은 고환율을 근거로 난색을 보였다.
귀네슈 감독이 서울의 태도에 서운함을 보이며 계약연장을 확정하지 않은 채 터키로 떠난 시점에서 소문이 퍼졌다. “어차피 홍 전 코치는 서울 아니면 수원이다. 귀네슈 감독이 서울을 떠날 것 같으니 이제 홍 전 코치와 서울이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다가 귀네슈 감독이 내년에도 서울 지휘봉을 잡는다는 게 확정되면서 사라졌다.
홍 전 코치가 울산 감독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은 정몽준 회장의 각별한 신임이 출발지였고, 성남 감독 영순위 후보 이야기는 성남이 수도권을 연고지로 한 명문팀이라는 데서 불거졌다. 성남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김학범 감독이 물러나기 전부터 구단 고위층의 선택은 신태용 감독이었다. 대중적 인기, 국제 감각, 지도력 등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고 판단해 신태용 감독을 처음부터 점찍었다. 홍 전 코치에 대한 이야기가 들렸을 때 도대체 그런 소문이 왜 나왔는지 의아했다”고 귀귀띔했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