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자란 물고기‘’큰물에서 놀아라‘’
“하이마트는 신지애 선수와의 그동안 관계를 고려해서 재계약을 신중하게 검토했다. 그러나 신지애 선수 1명을 후원할 재원이면 유망한 신인 30여 명을 발굴, 육성할 수 있는 규모다. (중략) 하이마트는 대형 선수를 통한 마케팅 효과보다는 ‘신인선수를 발굴, 육성해 한국여자 프로 골프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골프단 창단 취지에 충실해 제2, 제3의 신지애를 키우는 데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5일 하이마트가 발표한 보도자료의 내용이다. 글로 표현된 내용은 다소 담담하지만 실제로 하이마트는 신지애와의 재계약이 불발로 끝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하이마트의 최원석 팀장은 “말해서 무엇합니까. 신지애 하나만 데리고 있어도 1년 성적에 대한 걱정이 없었는데요. 정병수 단장은 물론이고 선종구 하이마트 대표도 무척이나 아쉬워합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이마트와 신지애의 3년 계약 만료는 지난 2008년 12월 31일이었다. 5일이나 넘긴 후에 공식 결별선언을 했을 정도로 하이마트는 가능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신지애를 붙들어 두려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신지애가 요구하는 연봉 10억 원(5년 계약 기준)은 맞춰주려고 했다. 문제는 연봉 외적인 부분에서 도저히 합의가 안 됐던 것이다.
즉 인센티브(성적에 따른 보너스)가 문제였는데 하이마트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한 신지애의 괴력이 너무도 부담이 됐다. 지난 3년간 하이마트는 1억 5000만 원(추정)의 연봉에 우승시 우승 상금 50%(5위까지 차등지급)를 인센티브로 제공했다. 이번 재계약에서 연간 10억 원이라는 큰 틀에서는 합의가 됐지만 미LPGA에서 많이 애용하고 있는 우승시 상금의 100%라는 인센티브 조건을 하이마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미LPGA에서 지난해 신지애가 우승한 ADT챔피언십의 경우 우승상금만 100만 달러다. 그리고 정규투어에서는 US오픈 56만 달러 등 30만 달러가 넘는 대회가 즐비하다. 연봉 문제가 자칫 인센티브로 이어져 하이마트 골프단 살림이 뿌리째 뽑혀나갈 수 있는 것이다.
▲ 버거운 당신 지난해 12월 하이마트 한국여자프로골프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차지한 신지애. | ||
신지애의 폭발적인 인기도 재계약 불발에 주요한 원인이 됐다. 하이마트와 메인스포서 계약을 한다고 해도, 골프용품, 의류업체 등 서브스폰서를 원하는 회사가 너무 많았다. 예컨대 재계약 협상 때 ‘모자 옆의 서브스폰서를 위한 공간으로 비워놓겠다’, ‘캐디백에 서브스폰서 로고를 새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등 신지애 측의 요구가 만만치 않았다. 하이마트에게는 이것도 부담이 됐다. 곧 굴지의 기업과 메인스폰서 계약을 할 예정인 신지애는 이때도 2~3개 서브스폰서를 위한 몫을 남겨놓을 생각이다.
보통 한국의 정서는 프로선수와 스폰서가 결별할 경우 그 관계가 다소 서먹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박세리는 프로 데뷔와 함께 계약해 미LPGA 제패 신화를 함께 이룬 삼성과 결별했고, 그 앙금이 아직까지도 썩 좋지 않다. 또 2007년 말 CJ와의 5년 계약이 끝났지만 CJ는 아예 골프단 해체 수순을 밟는 등 옛 정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박세리는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고 살 수는 없다며 아직 무소속선수로 남아있다.
그런데 하이마트와 신지애는 아주 ‘쿨’하다. TV출연 녹화, 음반취입 등 바쁜 일정을 마치고 지난 1월 8일 호주로 동계훈련을 떠난 신지애는 “연초 선종구 (하이마트) 사장님을 비롯해 관계자들께 찾아가 인사드렸다. 3년 동안 키워주신 데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하이마트와의 인연은 끝난 게 아니고 영원히 가는 거다”라고 말했다.
하이마트도 신지애에 대한 좋은 추억만을 강조할 뿐 조금도 자신들을 떠났다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품지 않고 있다. 정병수 단장은 “신지애 선수는 뛰어난 실력을 떠나 인간적으로도 참 훌륭한 선수다. 하이마트에서 시작한 신지애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까지 도움이 될 수 있어 참 보람됐다. 더 큰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최고의 선수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최원석 팀장도 “신지애 선수의 결정(재계약 불발)에 조금도 불만이 없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3년간 신지애 선수를 보면서 어떻게 스무 살도 안 된 선수가 저렇게 성실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지 내 스스로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브리티시오픈 때 현장에 따라가 도와주지도 못하는 등 부족한 게 많았는데 너무도 잘해줬다. 굳은살로 가득찬 신지애 선수의 손을 잡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앞으로 신지애 선수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최 팀장의 목소리는 다소 감정이 북받치고 있었다.
어쨌든 이 정도면 프로선수와 스폰서의 관계에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