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거기 있는데 가시밭이면 어떠랴…’
▲ 서른아홉의 무한도전 최향남은 세인트루이스와 월봉계약이 아닌 장기계약을 맺어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꿈의 날개를 펼치는 게 소원이라고 밝혔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자신의 이름 앞에 ‘파란만장’ ‘우여곡절’을 달고 사는 사람, 야구를 시작하고 단 한 순간도 ‘지름길’이나 ‘포장도로’를 달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 마흔 살을 1년 앞두고 돈방석에 앉는 거나 다름없는 FA 대신 메이저리그의 ‘월봉 계약’을 택한 사람…. 남들은 ‘무모한 도전’, 자신은 ‘무한도전’이라고 믿고 사는 남자 최향남을 남한산성의 한 개미집에서 만나 삼겹살 토크를 벌였다. 삼겹살을 먹으며 소주는 물론 맥주 한 잔도 입에 대지 않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향남이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최향남과 세 차례 식사를 한 적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화려한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정한 약속 장소는 대부분 김치찌개집, 저렴한 중국집, 그리고 이번의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개미집’ 정도다. 재밌는 것은 소박한 분위기와 장소들이 최향남과 곧잘 어울렸다. 강남의 비싼 일식집이나 와인바보다는 서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음식점에서의 최향남이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가 추천하는 집들마다 음식 맛이 기가 막혔다. 이번에 간 ‘개미집’도 마찬가지다.
미국 진출을 추진하면서 평생 인터뷰할 걸 다 한 것 같다는 그에게 딱히 물어볼 것도, 궁금한 것도 없었다. 이미 전화통화를 하면서 들을 만큼 들은 데다 이전의 인생 스토리는 야구팬들조차 줄줄 꿰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니홈피 일촌을 맺고 오랫동안 인연을 이루며 보낸 시간 탓인지 말수 적어 보이는 최향남의 입에서 여러 가지 뒷얘기들이 술술 튀어 나왔다. 먼저 지난 시즌 끝나자마자 도미니카로 튀었던 최향남이 그곳에서 겪은 황당한 사건들을 공개한다.
도미니카의 악몽
최향남이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목적지 도미니카의 수도 산토 도밍고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24시간이다. 경비 절약을 위해 일본 나리타공항을 거쳐 LA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한 후 마이애미에서 다시 도미니카로 향하는 비행기로 옮겨 탔고 도미니카 공항에서 산토 도밍고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환승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 그래도 좋았다고 한다. 도미니카리그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몰려든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들 눈에만 들 수 있다면 24시간의 이동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최향남이 자주 찾는다는 남한산성 밑의 한 음식점은 그와 꼭 닮은 모습이다. | ||
“3경기 중간계투로 나갔다가 1이닝 무실점 2번, 안타 두 개 맞은 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 다음부터 감독이 기용하질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식중독에 걸려 병원에 3일이나 입원해 있었어요. 콜라와 닭튀김만 먹고 버틴 게 안 좋았나 봐요. 의사랑 말은 안 통하지, 몸은 아프지, 정말 죽겠더라고요. 퇴원 후엔 무조건 한 끼에 4만 원씩이나 하는 스테이크만 먹었어요. 다른 걸 먹었다간 다시 입원할 것 같았거든요.”
최향남은 도미니카에서 새삼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나라가 있다는 현실에 너무나 감사했다고 한다. 생활 환경이 열악하다 못해 지저분하고 위생관념이 전무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하루하루가 지치고 힘들었던 것. 더욱이 도미니카에 최향남을 끌어들인 현지인의 비상식적인 행동들은 거의 경악 수준이었다고 한다.
“누구 소개로 도미니카 공항에서 그 분을 처음 만났는데 막 겁을 주더라고요. 도미니카는 외국인이 차를 타고 가면 고속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총으로 위협해서 돈을 뺏는 택시기사들이 많다고요. 그러면서 경호원 2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달리 방법이 없어서 경호원을 쓰겠다고 하니까 데리고 온 사람이 현지 통역인과 아는 택시 기사였어요. 원래 10만 원 정도 드는 택시비가 그 현지인 덕분에(?) 15만 원으로 껑충 뛰었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상습범이었어요. 큰 돈도 아니고 돈 2만~3만 원 떼어 먹으려고 별 짓을 다하더라고요.”
새로운 도전
최향남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미니카에서의 한 달 보름을 보내고 미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LA다저스로부터 테스트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애너하임, 세인트루이스 등 일곱 팀을 돌며 또다시 테스트를 받았다. 마지막까지 최향남에게 ‘러브 콜’을 보낸 팀이 세인트루이스였다.
“2003년 애틀랜타를 시작으로 2004년 대만 등 제 인생은 ‘테스트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나라로 치면 미국과 대만, 한국이지만 팀을 따지면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니까요.”
최향남 하면 으레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도전, 무모함, 괴짜…. 왜 이렇게 편안한 길을 놔두고 힘들고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가려고 하는지 물었다.
“나도 한국에 잔류하는 게 더 편하고 윤택한 생활을 보장받는다는 걸 왜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야구하기가 편하다고 해도 내 목표가 미국에 있다면 여기의 삶이 행복한 게 아니잖아요. 내 인생에 타협은 없어요. 타협하고 눌러앉았다면 성적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지난 시즌에 롯데의 후배들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롯데에서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미국으로 갈 거냐고. 한 후배 투수도 3일만 더 하면 FA니까 미국에 가지 말라며 진지하게 얘기를 건넸단다.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충분히 이해해요. 그러나 걔네들은 잠깐 생각하고 한 번씩 떠올리는 부분이지만 난 10년 전부터 생각하고 준비했던 문제거든요. 난 33세의 나이에 구단에서 방출을 당했어도 그런 목표와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친구들이랑 한 얘기가 있어요. 쉰 살이 됐을 때 아름다운 얼굴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것일 뿐입니다.”
야구인생의 위기
워낙 다양한 히스토리의 소유자라 인생 자체가 위기였겠지만 최향남의 머리 속에 각인된 인생의 위기가 언제였는지 궁금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한창 야구에 빠져서 신나게 운동하고 있는데 의사가 어깨 부상을 이유로 야구를 그만둬야 한다고 통보하더라고요.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야구말고는 할 게 없는데 야구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공부는 근처에도 안 갔는데, 갑자기 야구를 그만두라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1년 후에 자연스레 낫긴 했지만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 연합뉴스 | ||
“목표를 가질 수조차 없을 때였어요. 더 이상 야구를 못한다는데 내가 여기서 뭘 해야 하나 싶었죠. 다른 군인들은 제대 앞두고 중장비 공부를 하는 등 사회 나갈 준비를 하지만 난 아무 것도 할 게 없었거든요. 막판에 자격증이라도 따서 나가자고 마음 먹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손에 쥔 건 운전면허증밖에 없었습니다. 머리가 공부할 머리는 아니었던 거죠.”
최향남은 제대 후 세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위를, 환경을, 세상을 탓하기보단 모든 어려운 여건들을 극복해 나가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자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해태 입단 후 어깨가 너무 아파서 야구를 그만두려 마음먹었고, 그만 두기전에 하와이 구경이나 해보자며 하와이 윈터리그에 참가했던 게 메이저리그의 꿈을 심어준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너무나 못난 남편
워낙 떠돌이 인생을 살고 있는 탓에 최향남이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한 집안의 가장이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인터뷰 할 때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잘 털어놓지 않아 기자 또한 그의 가족 구성원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는 몇 명이나 돼요?’하고 물었는데 이런 대답이 들려온다.
“아직 아이는 없어요. 나 때문에 집사람의 고생이 만만치 않았어요. 솔직히 지금 그렇게 좋은 관계는 아니에요. 시간을 두고 좀 봐야 해요. 이런 얘기 더 하면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여기서 그만 할게요.”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자세한 얘기를 듣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최향남도, 또 그의 아내의 입장도. 최향남은 2006년 클리블랜드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입지가 불안정해서, 그리고 지금 가는 세인트루이스는 ‘시한부 인생’이라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원은 세인트루이스와 매달 계약을 새로 맺는 게 아니라 장기계약을 맺어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사는 생활이다.
“집사람이 이런 얘길 했어요. 내가 모난 돌 같다고. 하지만 나이 앞에 장사 없잖아요. 나도 세월이 가면 둥글어져서 아까 말한 것처럼 쉰 살 넘어 아름다운 얼굴을 가질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2월 말 정도 출국할 예정이라는 최향남은 세인트루이스와의 ‘월봉 계약’을 시즌 개막 후 두 달여 만에 ‘장기계약’으로 바꿔 놔야 한다며 걱정을 앞세우다가도, “하지만 이번엔 왠지 자신이 있어요. 잘 될 것 같아요. 고생으로 점철된 내 인생도 조금은 보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이 해피엔딩이 되려면 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 봐야 해요”라며 마음을 새롭게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