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쓰려거든 축구장에 쓰세요^^
▲ 지난해 수원 삼성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서울 기성용이 골을 넣은 후 펼친 캥거루 세리머니. 수원 골키퍼 이운재의 표정과 대비된다. 연합뉴스 | ||
# 여성팬 뒤흔든 안정환
자기 표현에 익숙한 신세대 선수들이 등장하면서부터 다양한 골 뒤풀이가 축구팬의 눈을 사로잡았다. 골을 넣으면 체조선수도 울고 갈 정도의 고난도 백 텀블링을 선보인 고종수나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붙였다 뗐다 하는 이동국(전북)의 골 뒤풀이는 경기 다음날 어김없이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축구팬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은 폼나는 골 뒤풀이의 주인공은 안정환이다. 한일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있던 2002년 5월 5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 출전한 ‘판타지 스타’ 안정환은 2골을 넣으며 4-1 승리를 이끌었다. 골에 대한 기쁨을 격하게 표현하지 않고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결혼반지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듯한 그의 골 뒤풀이는 여성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스코틀랜드전 이후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안정환은 이탈리아와의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역전 결승골을 넣은 뒤에도 반지에 입을 맞췄는데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었을 때만 반지에 입을 맞추는 골 뒤풀이를 한다”고 설명했다.
상의를 벗고 문신을 보인 것도 화제를 모았다. 2003년 5월 31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넣은 안정환은 카메라 플래시가 자신을 향해 터지자 상의를 벗고 굵은 십자가와 ‘HYE WON LOVE FOREVER’라는 문장이 새겨진 문신을 선보였다. HYE WON은 안정환의 아내 이혜원을 뜻한다.
▲ 미국전에서 선보인 ‘오노 세리머니’. | ||
# 쇼맨십의 달인 이천수
이천수(전남)는 한국 축구 골 뒤풀이 역사를 화려하게 꽃피운 주인공이다. 골을 넣을 때마다 상의를 벗고 준비한 문구를 보여주는 뒤풀이로 축구팬의 관심을 끌었던 이천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K리그로 돌아온 2005년부터 더욱 다양한 골 뒤풀이로 언론과 축구팬의 주목을 받았다.
한일월드컵 미국전 때 안정환과 태극전사들이 합동으로 연출한 오노골 뒤풀이에서 오노로 ‘열연’했던 이천수는 독일월드컵 토고전 때 골을 넣은 뒤 여자친구와 부상 탓에 대표팀에서 빠진 이동국을 위한 맞춤형 골 뒤풀이를 했다. 당시 여자친구의 가명인 김지유의 ‘Y’자를 속옷에 테이프로 붙여 사랑의 골 뒤풀이를 연출했고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붙였다 뗐다 하는 이동국식 골 뒤풀이를 따라하며 선배를 위로했다.
이천수는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대회를 앞두고 골 뒤풀이를 여러 개 준비했는데 월드컵에서 여러 골 넣기가 쉽지 않아 한 골 넣은 김에 한꺼번에 다 했다”고 말했다.
이천수는 수원에서 뛰던 지난해에는 434일 만에 K리그 골맛을 보고는 손가락을 하늘로 올려 기쁨을 표시하는 골 뒤풀이를 했다. 이천수는 “베이징올림픽 육상 남자 100m에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가 신기록으로 우승한 뒤 했던 손을 내밀어 하늘로 찌르는 걸 따라했다. 우사인 볼트처럼 맘껏 그라운드를 휘젓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 인생을 담은 최성국
최성국(광주)은 골 뒤풀이에 자신의 삶을 담은 선수다. 2003년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청소년(20세 이하)대회 일본과의 16강전에서 득점한 뒤 ‘SK LOVE SH’ 속옷 골 뒤풀이로 애인의 존재를 공개한 최성국. 결혼을 앞두고 치른 K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에는 ‘예쁜 예비 신부 선혜야! 생일 축하해! 사랑해’라고 적힌 속옷을 내보이며 공개 프러포즈를 했다. 경기 중 상의를 벗을 경우 경고가 주어지는 규정에 따라 3분 뒤 옐로카드를 받았지만 최성국은 “여자친구에게 큰 선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개의치 않았다.
최성국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 한국-북한전 때는 득점자 염기훈과 동료들이 자신의 득남을 축하하기 위한 아기 어르기 골 뒤풀이를 선보이자 ‘옐로카드’를 각오하고 벤치를 박차고 나가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최성국은 지난 8일 광주 유니폼을 입고 치른 대전과의 2009 K리그 개막전에서 골을 넣은 뒤에는 경기장을 찾은 부대장을 의식해 군기가 바짝 든 경례 골 뒤풀이를 선보였다.
▲ 최성국 | ||
대부분의 선수가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바치는 골 뒤풀이를 하는 데 반해 김대의(수원)는 아들을 위한 골 뒤풀이를 해 화제를 모았다.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뭔가 해줄 게 없을까 고민하던 김대의는 스파이더맨 마스크와 장갑을 준비해 K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했다. 마침 영화를 개봉했던 배급사가 스파이더맨 캐릭터 상품을 가득 담은 대형 선물 상자를 구단으로 보내오기도 했다.
아내나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의 골 뒤풀이, 득남을 축하하는 아기 어르기 골 뒤풀이 등 진부한(?) 골 뒤풀이를 거부한 선수도 있다. 개그프로그램에서 유명했던 ‘리마리오 댄스’를 시작으로 ‘거성 체조’ ‘저질 댄스’ 등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보이며 신세대다운 감각을 선보인 김승용(서울)이 주인공이다.
인상적인 골 뒤풀이 때문에 ‘리마리용’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승용은 지난해 울산과의 K리그 플레이오프 경기에서는 골을 넣고 리마리오 골 뒤풀이를 선보인 뒤 “군에서 제대한 기념으로 예전 골 뒤풀이를 했다. 이제 리마리오 골 뒤풀이는 안할 것”이라며 새로운 퍼포먼스를 위해 기존 골 뒤풀이와의 작별(?)을 선언했다.
골 뒤풀이를 위해 부단히 연구하는 선수로는 김승용 외에 기성용(서울)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숙명의 맞수 수원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껑충껑충 뛰는 골 뒤풀이를 선보인 기성용은 “좋아하는 선수인 아데바요르(아스널)의 인상적인 골 뒤풀이를 따라했다”고 말했다.
# 금기 세리머니는
기발한 골 뒤풀이를 준비하는 선수라면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고민 끝에 골 뒤풀이를 선보였다가 옐로카드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국 프로리그는 FIFA 경기규칙을 토대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데, K리그는 △심판이 볼 때 누군가를 성나게 하거나 조롱하거나 혐오스러운 동작을 할 경우 △상대팀 벤치 앞에서 상대를 자극하거나 조롱하거나 격앙시키는 행동을 하는 경우 △득점을 축하하고자 경기장 주변의 담을 올라가는 경우 △유니폼을 완전히 벗거나 머리 뒤로 넘기거나 머리에 뒤집어쓰거나 얼굴을 가리는 경우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가면, 탈)를 착용하는 경우에 경고를 주도록 하고 있다.
기성용은 지난 7일 전남과의 개막전에서 탄탄한 복근을 공개하는 ‘15금 골 뒤풀이’를 선보인 대가로 옐로카드를 받은 뒤 “경고를 받을 줄 알고 있었지만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과감하게 골 뒤풀이를 했다”고 말했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