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 화물창출형 항만으로 거듭나야”
광양항은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에서 인천항에 2위 자리를 내줬다. 사진은 광양컨테이너 부두 전경. 사진제공=여수광양항만공사
[일요신문] 전남 광양항은 지난 2003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태풍 ‘매미’의 위력에도 하역을 멈추지 않았던 천혜의 항만이다. 하지만 정부의 ‘양항(투포트·Two-Port) 정책’으로 부산항과 양축을 이루던 광양항이 지난해 개항 이래 처음으로 인천항에 연간 물동량 2위 자리를 내주며 ‘넘버3’ 로 추락했다. 이대로 가면 부산항과 광양항에 집중된 정부의 ‘투포트 정책’은 자동 폐기되고 광양항의 입지는 점차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감이 감돌고 있다. 동북아 허브항을 꿈꾸는 광양항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광양항은 광양컨테이너부두가 첫 개장한 1998년만 해도 꿈에 부풀었다. 우리나라 제1의 부산항과 함께 투포트 체제를 구축, 국내 물류 전진기지 역할은 물론 북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허브항(Hub-Port·1200만TEU처리)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급증하는 북중국의 화물이 대거 부산항과 광양항으로 넘쳐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 같은 예상은 개항 18년이 된 지금 완전히 빗나갔다.
중국은 다롄(大連), 톈진(天津), 칭다오(靑島), 상하이(上海) 등 필요한 지역에 대규모 자국항만을 개발, 이용하면서 부산항이나 광양항을 이용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 때문에 한때 34개 선석까지 건설계획이 세워진 광양항은 현재 16선석까지만 건설, 이 중 2선석은 화물부족 등으로 일반부두로 전환되고 14선석(460만TEU 처리능력)이 가동되고 있다.
광양항은 명색이 ‘투포트’지만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부산항의 11%에 불과했다. 특히 ‘나 홀로’ 0.7% 감소하면서 인천항에 컨테이너 항만 2위 자리마저 내줬다. 부산항이 1900만여TEU로 부동의 1위를 차지했고, 인천항이 237만여TEU로 2위, 광양항은 233만여TEU로 3위를 각각 기록했다. 광양항이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실적에서 인천항에 뒤진 것은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20여년 만에 처음이다.
가동률도 겨우 50% 수준에 그쳤다. 이로 인해 시설은 넘쳐나고 물량은 미치지 못하는 ‘부두 공동화 현상’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광양항은 부두확장을 하고 싶어도 화물난으로 트리거 룰(Trigger Rule)에 걸려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광양항터미널을 운영하는 한진해운이 최근 터미널을 매각하고 인천항 이전을 결정한 것은 광양항의 현주소를 잘 대변해 준다. 한진해운이 지난해 광양항터미널에서 처리한 물량은 78만TEU(20피트 표준 컨테이너)로 광양항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232만TEU)의 33%가량에 달한다. 항만업계에서는 한진해운이 손을 떼면 광양항의 허울뿐인 ‘투포트’ 시대는 완전히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광양항의 정체 원인으로는 해양수산부 등 해운 당국의 일관성 없는 항만정책이 우선 꼽힌다. 당국은 거점항만을 집중 육성하기는커녕, 얼마 안 되는 물동량마저 철저히 분산시켰다. 원포트, 투포트, 트라이포트, 멀티포트 등 정부의 항만정책이 정권에 따라 계속 오락가락하면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투포트에 더해 인천항, 평택당진항, 울산항, 포항항까지 전국 항만을 동시다발적으로 키우는 멀티포트 전략기조가 이어졌다. 투포트 거점항에 대한 규모의 경제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여기에 중구난방으로 설립된 항만공사들 간에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은 광양항 화물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부산항만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경기평택항만공사, 당진항만관광공사 등이 난립해 한정된 항만 예산을 나눠 먹기하며 경쟁하고 있다.
이대로 지속되면 광양항은 허브포트(Hub Port)는 커녕 피더포트(Feerder Port)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광양항의 컨테이너 물동량 감소로 투포트정책이 사실상 폐기되고 인천항을 포함한 멀티포트(Multi-Port)로 변경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상황이니 정부의 광양항 ‘재도약 플랜’에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광양항 활성화 및 중장기 발전방안’을 보고하고 4대 추진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해수부는 2025년까지 민간자본 24조 2000억 원과 재정 1조 2000억 원 등 총 25조 5000억 원가량을 들여 광양항을 국내 최대 산업클러스터항으로 탈바꿈시키려고 한다. 기능 재편을 통해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과 같은 ‘산업클러스터 항만’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컨테이너부두 4선석을 자동차 전용부두로 전환해 활로를 찾는다는 복안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광양항 배후산단 연간 생산액을 현재 100조 원대에서 2025년까지 200조 원대로 끌어올려 ‘국내 최대 산업항’으로서 광양항의 위상을 다시 세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건은 재원이다. 정부의 계획을 보면 25조 500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 사업비의 95%인 24조 2000억 원을 민간기업 투자로 충당한다고 한다. 예산 투입은 주로 인프라 구축에 쓰일 1조 2000억 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의 계획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민자 확보가 필수불가결이라는 지적이다. 배후산단의 주력이 될 석유화학·신재생에너지 기업이 순조롭게 유치되고, 자동차 전용부두도 활기를 띠어야 광양항은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양항은 오지 않는 화물량 유치보다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과 연계해 고부가가치 화물창출형 항만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제공=여수광양항만공사
침체된 광양항의 활로를 찾으려면 무엇보다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활성화가 중요하다. 원료와 제품의 원활한 수송역할을 하고 있는 광양항이 있어서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고 경제자유구역이 개발되면 화물창출로 항만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 11년이 된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77.68㎢)은 계획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오는 2020년까지 16년 동안 250억 달러(500개 업체) 투자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12년이 된 지금까지 154억 7400만 달러((2015년 9월말 현재) 유치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투자유치액은 전체목표량의 250억 달러의 61%에 지나지 않고 있다.
광양경제청은 현재 광양, 율촌, 신덕, 화양, 하동 등 5개 지구로 나눠 산단이나 택지를 개발해오고 있다. 하지만 산단개발을 모두 민간개발에 의존하다 보니 제때 개발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선정됐다가도 PF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2020년까지 개발하기로 한 경제자유구역의 개발진도는 현재 59.8%다. 이 같은 진척도는 계획 69%보다 9% 정도가 뒤처진 것이다.
지난 1987년 부두 진입로를 시작으로 부두축조, 항로준설, 배후지 개발 , 장비설치 등 항만조성에 총 4조 2000억 원이 투입됐다. 항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막대한 사업비를 들여 조성된 컨테이너항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는 오지 않는 화물량 유치보다 고부가가치 로컬화물을 자체적으로 창출하는 매력있는 항만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보다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동북아 항만여건 변화로 더 이상 화물유치만 고집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수광양항만공사 선원표 사장은 “광양항은 국내외 물량 유치에 주력할 뿐만 아니라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과 함께 고부가가치 화물창출형 항만으로 거듭나야 한다”면서 “광양항의 미래에 대해 중앙정부나 지자체, 지역사회의 관심이 멀어져 가고 있는 것도 광양항 활성화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지역사회나 정치권이 광양항과 경제자유구역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종합대책을 세워 전략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