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은 살아 있다.
8월 29일 중국 후난성의 관광명승지 봉황고성의 남방장성에서 벌어진 ‘2009 세계 바둑 정상대결’, 이세돌 9단이 백이다. 제한시간 각 50분. 초읽기가 따로 없고, 50분을 넘기면 타임아웃 반칙패. 재미있는 룰이다. 봉황고성은 지명이다.
<1도> 중반이 무르익는 장면인데, 여기서 좌하귀 백1이 작렬했다. 이세돌이 아니면 둘 수 없는 수. 백1에 대해 흑A로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상대는 백1과 같은 수를, 마치 표창처럼 날리는데, 나는 흑A로 후퇴한다? 지더라도 그렇게는 못하는 것.
<2도> 흑1은 당연한 반발. 사실은 흑이 이렇게 쉽게만 두어도 오히려 백이 이상해지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아니었다. 이세돌은 백2, 4를 준비하고 있었다. 왼쪽 백과 하변 일대 흑돌, 이걸 바꿀 테면 바꾸자는 것. 흑5 때 백6, 거침없이 끊었다. 무시무시하다. 구리 9단은 아마도 이런 기세에 일단 밀렸을 것이다.
<3도> 흑1, 3으로 밀고 올라올 수밖에 없는데, 백은 이번에는 4로 단수치며 다시 흑에게 길을 묻는다. 흑5부터 13까지는 일사천리. 기호지세다. 다음 백14, 그러고 보니 백은 바꾸자는 것도 아니었다. 좌하귀 쪽은 백을 살리고, 하변 일대 흑은 잡자는 것이었다.
<4도> 흑1, 3은 말하자면 ‘강요된 반격’이다. 흑은 혹시 싸움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피할 수 있는 방도가 없으니 싸울 수밖에.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위태위태한 줄타기 곡예가 이어지고 있다. 백4, 6으로 이제 수상전인데, 이 바둑을 관전했던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이세돌 9단의 착점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전한다. 흑11에는, 이번에는 백12. <1도> 백1과 같은 그것. 현란한 맥점이다. 다음 흑A나 B는 백C로 들어가 다음에 보는 것처럼 실전과 같아지고, 흑D는 백B로 따라붙어 그만이다.
<5도> 흑1~5 다음 백은 흑▲를 잡지 않고, 애초의 목표대로, 하변 흑 전체를 향해 백6으로 총부리를 들이댄다. 하변 흑A면 백B. 흑은 백△ 두 점을 잡을 수 있지만, 그걸로 사느냐는 것. 바둑은 여기서 완전히 백에게 기울고 말았다. 좌하귀와 하변 쪽은 흑C로 넘어가더라도 백D~흑G 다음 백F로 완생이다. 앞서 <3도> 백4 때….
<6도> 흑1로 이으면? 백2로 둔다는 것. 흑A로 연결해야 하니 그 사이 백은 산다는 것.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