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황금티켓 ‘3장’ 잡아라
면세점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롯데그룹이 고강도 수사에 주춤한 사이 연내 면세점 특허권 4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사들의 물밑 싸움이 치열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현재 서울시내에서 영업 중인 면세점은 모두 9개다. 이중 7개는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 몫으로 신규 면세점 3개를 더 추가한다. 기존 면세점 사업자들은 사업권 추가 획득으로 규모를 키우고 싶은 눈치다. 또 새롭게 면세점 사업 진입을 노리는 곳도 적지 않다.
면세점업계 최강자는 롯데다. 매출액과 영업이익률 등 수치상으로뿐 아니라 가장 오래된 업력과 노하우도 돋보인다. 서울시내 면세점 매장 수도 3개로 가장 많았지만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사업권 연장에 실패해 지난달 문을 닫았다. 현재는 소공동 본점과 강남의 코엑스점 2곳만 운영한다.
업계에서는 월드타워점 특허 연장 실패를 두고 롯데가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롯데그룹 오너 2세 신동주‧신동빈 형제 사이의 경영권 분쟁으로 국민정서가 악화됐다는 것. 롯데 측은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 입찰에 참여해 반드시 사업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계획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이번 시내면세점 특허 입찰에 당연히 참여할 것이며 결과가 나오는 12월까지 월드타워점을 철거하지 않고 기다릴 계획”이라며 “월드타워점의 사업성은 이미 검증됐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공정한 평가가 이뤄진다면 탈락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전과 다르게 이번 면세점 특허 입찰 평가 결과는 항목별로 공개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롯데그룹에 대한 전방위적 검찰 수사가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면세점은 국가에서 사업권을 주는 일종의 특혜사업”이라며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른 영향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관련자들의 무혐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롯데면세점의 ‘아성’이 깨질 수도 있는 셈이다.
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신라면세점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호텔신라가 운영하는 업계 2위 신라면세점의 참여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매출의 90%가 면세점에서 나오는 만큼 호텔신라에 면세점은 핵심 사업부문이다. 호텔신라의 실적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경영능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비춰질 수 있다. 이 사장은 지난해 현대산업개발과 합작해 신규 사업권을 따내며 HDC신라면세점을 출범시켰다. 신규 면세점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 입점 성공에는 이 사장의 수완이 발휘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번 입찰에 대해서 신라면세점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특허신청 공고를 면밀히 검토한 후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무리한 외연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롯데와 함께 ‘유통공룡’으로 불리는 신세계는 최근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확장 공사를 마쳤다. 서울시내 면세점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롯데면세점 소공점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신세계는 명동점을 앞세워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은 명동 상권을 롯데와 양분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신규 면세점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며 신세계도 이번 특허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신세계 관계자는 “사업성 등 면세점 추가 입찰에 관한 검토는 올해 초부터 계속 해오고 있다”면서도 “아직 정확히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영업이 종료된 워커힐면세점을 운영했던 SK네트웍스도 일찌감치 입찰 참여를 선언했다. 지난해 사업권 연장에 실패한 SK네트웍스는 이번 신규 면세점 사업권 획득으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최신원 회장이 SK네트웍스 회장으로 취임하며 기업을 이끄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24년 동안 면세점을 운영하며 축적된 노하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며 “철저히 준비해 반드시 워커힐면세점을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다크호스로 꼽힌다. 지난해 입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이번에는 사업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부에서는 무역센터(코엑스)에는 이미 롯데면세점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현대백화점이 신규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번 면세점 특허 입찰에 참여한다”며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국내 최초로 프리미엄 면세점을 구현하겠다”며 차별화 전략을 밝혔다.
만약 현대백화점이 면세점 특허권을 따내 코엑스에 두 개의 면세점이 들어설 경우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먼저 코엑스부터 영동대로까지 개발이 예정된 곳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옛 한국전력 부지에 현대차그룹은 105층 규모의 신사옥 건립을 계획 중이다. 또 영동대로 지하 공간 개발 계획도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코엑스 일대는 새로운 관광 중심지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여행사는 면세점을 중심으로 여행상품을 개발한다”며 “면세점 두 개가 붙어 있으면 두 면세점을 모두 거치는 상품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랜드의 재도전도 점쳐진다. 이랜드 역시 유통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다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브랜드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랜드그룹의 사정이 썩 좋지 않은 것이 문제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이랜드는 잇단 사업부 매각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그룹 내 여러 이슈로 면세점 입찰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면서도 “면세점 입찰 여부에 대해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합작해 만든 HDC신라면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올해 신규 면세점을 개점한 두산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두타면세점이 확실히 자리잡도록 안정화시키는 데 주력할 단계”라면서도 “그러나 면세점 입찰 참여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63빌딩에 갤러리아면세점63의 문을 연 한화갤러리아도 유력한 입찰 참여자로 거론된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면세점업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에 수익성 등 다양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한화갤러리아가 추가로 서울시내 면세점을 운영한다면 압구정에 있는 명품관을 활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특허 공모에) 이미 입찰 선언을 한 곳도 있고 아직 검토 중인 곳도 많다고 알고 있다”며 “이번 신규 사업권이 3개나 되기 때문에 결국 입찰 후보자로 거론되는 거의 모든 업체가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공모 마감까지 3개월이나 남은 상황이지만 사실상 물밑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입찰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