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벌마의꿈’ 스피드·뚝심 살아있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7번 벌마의꿈이 먼저 치고 나왔다. 당초 이 경주는 같은 마방의 말이 동반 출전하면서, 안쪽에 포진한 선행형 마필인 부경 김영관 마방의 감동의바다와 서울 김효섭 마방의 클린업천하 등이 외곽의 벌마의꿈과 금포스카이의 편한 선행을 어느 정도는 견제해줄 것이라고 판단돼 불량주로였지만 벌마의꿈은 인기순위가 중하위권이었다.
지난번 선행에 실패해서 고전했던 벌마의꿈은 이번엔 부경의 최고기수 김용근을 기용해 강력한 선행작전을 구사했다. 최시대 기수가 감동의바다를 열심히 밀어봤지만 순식간에 벌마의꿈이 앞선을 장악했고, 그 옆을 같은 마주의 말인 석세스스토리가 붙었다. 말의 순발력도 차이가 났지만 기수의 스타트 능력이 더해지면서 초반 흐름은 생각보다 싱겁게 우열이 드러났다. 클린업조이는 출발을 매끄럽게 하지 못해 출발과 동시에 뒤로 처져버렸다. 대상경주에서 더군다나 주로가 불량한 상태에서의 이런 실수는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곧바로 최하위로 밀려버리고 말았다.
이후 경주는 벌마의꿈이 안쪽을 장악하고 페이스를 유지한 채 달리고 석세스스토리가 외곽에서 커버해주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한때 1번 클린업천하와 2번 감동의바다가 거리를 좁히는가 싶었지만 이내 12번 러시포스와 14번 금포스카이가 이들을 앞질러 2위권을 형성했다. 인기 1위마 트리플나인은 4위그룹에서 침착하게 따라가고 있었고, 서울의 기대주 클린업조이는 맨 후미로 처져 외곽으로 돌아나와 다른 말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뛰어서 막판에 과연 힘을 더 쓸 수 있을까 우려가 되기도 했다.
지난 3일 렛츠런파부경에서 열린 부산광역시장배 대상경주에서 벌마의꿈이 우승했다. 트리플나인은 석세스스토리를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3코너를 돌면서부터 12번 러시포스가 조금 처졌을 뿐 앞선은 크게 양상이 변하지 않았다. 벌마의꿈이 앞서가고 석세스스토리가 바짝 뒤를 쫓는 형국이었고, 조금 떨어져서 금포스카이가 3위로 따라갔다. 클린업천하와 감동의바다는 그 다음으로 달렸다.
4~5위권에서 달리던 트리플나인이 서서히 추격의 고삐를 당길 무렵, 후미에서 맹렬하게 거리를 좁혀온 클린업조이도 바로 뒤에서 좀더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4코너를 통과하고 나자 벌마의꿈은 더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고, 석세스스토리도 버티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이제 전성기에 돌입한 뚝심의 화신 트리플나인과 서울의 자존심 클린업조이가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강한 채찍과 함께 추격의 고삐를 당기면서 석세스스토리와의 거리가 바짝 좁혀졌는데, 바로 이때 세 마리 간의 진로가 좁혀지는 변수가 생기면서 레이스가 뒤틀렸다. 진로가 막힌 걸 의식한 유현명 기수가 임기응변으로 안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강한 채찍으로 말을 독려, 석세스스토리보다 먼저 머리를 내밀어 2위를 차지했다. 클린업조이의 함완식 기수는 진로를 확보하지 못한 채 앞말과 부딪칠까봐 순간적으로 주춤했고, 이후에도 그런 상태가 계속되는 바람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승선은 코앞에 있고, 말도 기수도 기운이 다해가는 상황이라 더 이상의 추격은 무리였다.
경주가 끝나면 항상 그렇지만 이 경주는 클린업조이한테는 다른 어느 때보다 아쉬움이 컸다. 우선 최근에 보이지 않던 발주 악벽이 하필 이번 경주에서 보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안쪽에서 따라가지 못하고 외곽으로 나와 체력 소모가 너무 컸다는 것이고, 셋째는 막판 진로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발주만 제대로 됐다면 어떻게 탔던 멋있는 한판승부가 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곱씹어볼 부분은 감동의바다다. 감동의바다는 한창 때는 선두력이 남달랐던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경주에선 왕년의 빠른 발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 선추입으로 경주를 운영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순발력이 조금 무뎌진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상황이 와도 강한 수말들에게는 역부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거리 차이로 지고 말았다.
트리플나인의 패인은 불량주로 탓이 아닌가 싶다. 벌마의꿈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선행을 나서면서 초반경합이 없었고, 중간에 견제도 받지 않아 상상이상으로 막판에 힘을 내는 바람에 따라잡기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었다. 중반에 자신이 직접 벌마의꿈을 견제하기엔 경주 흐름이 너무 빨랐고, 거리도 제법 벌어져 있었다.
다음 출전 때를 대비해 가장 관심을 가져볼 말은 마천볼트와 볼드킹즈다. 두 마리 모두 주로 선입으로 경주전개를 하면서 입상을 해온 말인데 이번엔 중후미에서 추격전을 전개했다. 게이트가 최외곽이라 안쪽에 자리잡기도 쉽지 않았지만 막판에 더 힘을 냈다. 의외로 선전한 마천볼트와 능력마다운 모습을 보인 볼드킹즈 모두 다음 출전 때 더 뛸 여지를 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마필은 위닝앤디다. 원래 느린 말이라 이번 대상경주는 언감생심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빠른 경주에서 자신의 평소 스피드와 비교하면 오버페이스였는데도 잘 따라갔고 막판까지 좋은 걸음을 보였다. 순발력은 다소 처지지만 느린 말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앞으로 이 말은 홈그라운드인 서울에서 출전하면 중반에 무빙하면서 뛸 것 같고, 그 경우 현재보다 훨씬 안정감 있는 전개와 함께 더 나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이 경주의 매출은 49억 3900만여 원에 달했다. 최근에 도입된 삼쌍승식 매출은 3억 6400만여 원이었고, 복승식은 19억, 삼복승식은 16억여 원 이상을 기록했다. 배당면에서도 삼쌍승식 574.5배, 삼복승식 67.3배, 쌍승식 48.9배, 복승식 15.9배로 고른 배당을 선사, 개미군단들을 즐겁게 했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