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구단별 연루자 적힌 ‘찌라시’ 나돌아…선수들 “왜 내 이름이” 분통
NC 다이노스의 투수 이태양이 승부조작 혐의로 7월 21일 불구속 기소됐다.
아직 흥행에 큰 타격은 없다. 오히려 승부 조작 사건과 관계없이 관중은 더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KIA, 한화와 같은 인기 구단이 후반기 들어 좋은 성적을 올린 덕분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때는 아니다. 인기는 물거품과 같다. 금이 간 유리컵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승부 조작 사건이 올바른 방향으로 깨끗하게 해결돼야 하는 이유다.
# 선수 가족도 연루됐다
선수만 연루된 게 아니라 더 충격이다. 알고 보니 선수의 가족이 브로커였다. 승부 조작 가담을 자수한 KIA 유창식에게 그 대가로 돈은 건넨 브로커는 현직 프로야구 투수의 친형 A 씨로 밝혀졌다. A 씨는 대학 시절까지 야구 선수 생활을 했다. 부모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야구하는 두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형도 고교 시절 유망주로 인정받았고, 전국 대회에서 완봉승을 따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대학에서 성적이 좋지 못했다. 고교 시절 야구부 회비 문제로 1년 유급을 하는 바람에 동기생들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았던 게 문제였다. 적응이 어려웠고, 야구에 집중할 환경이 못 됐다. 결국 형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동생만 프로 선수가 됐다. 형은 졸업 후 동생의 소속 구단에서 신고 선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가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형제의 우애는 변함없었다. 형이 야구를 그만둔 뒤에도 형제가 같은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 과정에서 동생과 잘 아는 투수들과 형도 친분을 쌓게 됐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유창식이었다. 그리고 그 친분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A 씨가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A 씨의 동생에게도 의혹이 시선이 쏠렸다. 동생의 동료에게 손을 뻗었으니, 친동생도 가담시키지 않았겠느냐는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동생이 나 때문에 괜한 피해를 볼까봐 출두했다. 유창식에게 두 차례 승부 조작을 청탁하고 돈을 준 것은 인정하지만, 동생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 전직 선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B 씨도 불법 스포츠 도박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B 씨는 유창식 사건과는 별개의 인물이다. A 씨와도 관련이 없다. 별개의 수사가 또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B 씨는 승부 조작보다는 불법 스포츠 도박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 머니를 실제 현금으로 바꿔주는 환전 업무를 맡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불법 베팅업자들은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베팅과 환전 업무를 구분한다. 일명 ‘대포 통장’으로 거래를 하기도 하고, 직접 만나 현금을 건네주기도 한다. 일반 통장으로 돈을 주고받았다가는 2012년 영구 제명된 박현준의 사례처럼 단박에 들통 날 수가 있다. 일부 업자들은 이 점을 노려 배당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환전 업무는 ‘고객 관리’를 위해 중요한 업무다.
경찰은 B 씨가 해온 일 외에도 또 다른 현역 프로야구 선수를 끌어들이지 않았는지 집중 조사했다. B 씨는 2000년대 중반 지방 한 구단에 입단해 투수로 활약했고, 한 차례 팀을 옮겼다가 2010년 은퇴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만 해오다 갑자기 야구공을 놓게 되면서 방황하다 잘못된 길로 빠진 케이스다.
A 씨와 B 씨는 야구 선수 출신이 승부 조작과 불법 스포츠 도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을 안겼다. 팀에서 방출되거나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이 ‘먹고 살기 위해’ 맞닥뜨려야 하는 냉혹한 현실의 민낯이 드러났다. 힘들어도 좋은 선택을 하는 은퇴 선수들이 훨씬 많지만, 이들은 결국 가장 쉽고 가장 나쁜 길을 골랐다.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인생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다시 한 번 “학생 야구 선수들도 운동에만 전념해선 안 된다. 수업을 함께 들으며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수직이 아닌 수평의 단체 생활을 통해 평범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부상이나 다른 이유로 야구를 더 이상 못하게 됐을 때, 언제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 이재학 이름도 나왔다
NC 이태양, 넥센 문우람, KIA 유창식에 이어 또 다시 승부조작과 관련된 의혹으로 실명이 공개된 선수도 등장했다. NC 이재학이다. 이태양이 승부 조작을 시인한 직후, “이재학도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야구계에 떠돌았다. 이태양과 이재학은 절친한 사이였다. 실제로 수사기관에서 이재학의 소환 조사 일정을 잡았다가, 날짜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재학은 구단과의 면담에서 “절대 승부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 이태양과 달랐다. 구단도 의혹에 관련된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엔 소문이 너무 커졌다. 승부 조작과 관련된 기사 댓글마다 이재학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난해 다승 20위 안에 들었던 국가대표 투수’가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이니셜 보도도 나왔다. 누구나 이재학의 이름을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이재학의 선발 등판일이 시시각각 다가왔다. 7월 30일이었다.
결국 NC는 하루 전인 29일 이재학이 아닌 이민호를 다음 날 선발 투수로 예고했다. 30일에는 보도 자료를 내고 이재학의 1군 엔트리 등록을 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학이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게 팀과 선수 모두에게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려서다.
물론 NC가 이재학의 혐의를 간접 인정한 것은 아니다. “선수는 결백하다는 입장이지만, 워낙 중대한 사안에 연루됐기에 엔트리 제외를 결정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모른 척 이재학의 출전을 강행했다가, 만약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NC가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 위험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재학은 일단 NC 2군인 고양 다이노스에 합류해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정해진 등판일에 2군 경기도 뛰었다. NC는 일단 “앞으로도 선수단 부정행위에 대한 의혹으로 정상적인 참가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선수의 1군 등록을 말소하겠다”는 방침이다.
# 정체 모를 괴담의 피해자도 속출
이재학의 엔트리 말소 이후 승부 조작에 관련한 ‘괴담’은 더 기승을 부렸다. 각 구단별 연루자의 이름이 적힌 ‘찌라시’가 마치 사실처럼 나돌기도 했다. 등판 일정이 들쑥날쑥해 사실상 승부 조작에 가담하기 어려운 불펜 투수들의 이름까지 버젓이 포함돼 있었다. 그 안에 이름이 적힌 선수들은 지인의 연락이나 기사 댓글을 통해 그 내용을 접하고 분통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난데없이 엄청난 사건에 자신의 이름이 등장했으니 억울할 만도 하다.
2012년에도 그랬다. 수도권과 지방, 투수와 야수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소문에 오르내렸다. 결국 당시 혐의가 드러난 것은 LG 소속 투수였던 박현준과 김성현뿐. 이번에도 혐의를 확실하게 인정한 인물은 이태양과 유창식이 전부다. 문우람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10개 구단은 선수단 전수 조사와 개별 면담을 여러 차례 진행했고, 일부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후배들을 잘 다독이고 이끌어달라”는 주문도 했다. KBO도 자진 신고 기간을 정해 선수들의 ‘자수’를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각 구단 관계자들은 혹시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승부 조작은 뿌리를 뽑아야 하지만, 애꿎은 피해자도 없어야 한다. 지금 그라운드에는 정정당당하게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훨씬 더 많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대만 야구 망한 이유? 판 커질 만하면 승부조작에 ‘발목’ KBO리그에 승부 조작 사건이 터질 때마다 늘 언급되는 나라가 있다. 대만이다. 많은 야구인들과 언론인들이 “대만처럼 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만 프로야구는 승부 조작 후유증으로 리그 전체가 파국으로 치달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야구는 대만의 국기다. 그만큼 대만 국민들에게 의미 있는 스포츠다. 인기도 가장 많다. 1990년 4개 구단 체제로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이듬해 곧바로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 1995년에는 165만 명 규모로 관중이 급증했다. 그러나 그 기세를 단숨에 꺾어 버리는 사태가 1996년에 터졌다. 이른바 ‘검은 호랑이’ 사건이다. 산샹 타이거스의 일부 선수들이 사조직 내의 친분과 학연을 앞세워 도박사가 개입된 승부 조작을 진행한 사실이 적발됐다. 일단 주동자들이 은퇴하면서 사건이 무마됐다. 그러나 야구팬들이 분노했다. 관중이 30만 명으로 급감했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검은 독수리’ 사건이 터졌다. 스바오 이글스 선수들이 범죄 조직인 삼합회와 결탁해 고의로 아웃되거나 실책을 범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조작했다. 여러 선수가 거미줄처럼 얽혔고, 스무 명이 넘는 선수들이 구속되거나 영구 제명됐다. 뛸 선수가 없어진 스바오는 결국 1998년 해체됐다. 다행히 충격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2001년 대만 국가대표팀이 야구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야구의 인기도 부활했다. 다시 100만 관중을 넘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선전도 큰 힘이 됐다. 그러나 2005년 다시 한 번 날벼락이 떨어졌다. 도박사 조직이 6개 구단의 감독, 코치, 선수들을 협박하고 매수해 승부를 조작한 사건이 8년 만에 재발했다. 외국인 선수까지 포함됐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이 조직은 감독과 선수들의 취미와 취향을 자세히 파악한 뒤 돈과 술, 향응을 제공하며 접근했다. 그 ‘접대’는 결국 감독과 선수들의 약점이 됐다. 승부조작에 가담할 것을 요구하다 응하지 않으면 협박과 폭력을 행사했다. 내야석에서 경기를 직접 ‘감시’하다가 선수들이 조작에 실패하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결국 주동자들과 가담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꼬리를 잡혔다. 무려 27명이 야구계에서 퇴출됐다. 게다가 2008년 10월에는 사상 최악의 승부 조작 스캔들이 터졌다. 신생팀 디미디어 티렉스가 중신 웨일스와 손잡고 승부 조작을 했다가 적발됐다. 양 구단 관계자의 전화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검찰의 손에 들어갔다. 디미디어는 폭력 조직의 사채를 썼다가 이미 운영권까지 빼앗긴 상태였다. 구단 경영에 폭력 조직이 참여했다는 얘기다. 이 조직은 야구 승부 조작을 통해 거액의 지하 도박판 배당금을 챙겼다. 결국 디미디어 티렉스는 사건 직후 대만프로야구연맹에서 제명됐다. 한 달 후에는 중신 웨일스가 창단 10주년을 불과 3개월 앞두고 해산을 선언했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었다. 대만 프로야구 출범 20주년이던 2009년에는 슝디 엘리펀츠 선수들이 연루된 ‘검은 코끼리’ 사건이 불거졌다. 선수와 지도자를 포함해 총 34명이 조사를 받은 굵직한 스캔들이었다. 이번에도 흑사회라는 폭력 조직이 개입됐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도박 조직과 마찬가지로 선수들을 일부러 함정에 빠트렸다. 아예 선수의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 주거나, 아버지의 집에 돈 뭉치를 놓고 오기도 했다. 대만 선수들은 몸값이 높지 않다. 대만에서 역대 최상위권 몸값을 받는 선수의 연봉이 한국의 평범한 주전급 선수 연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구단의 모기업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들이다. 따라서 돈의 유혹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도박과 폭력의 검은 손이 그 빈틈을 노렸다. 심지어 2013년에는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한 호주 선수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쳤다. 호주 리그 우승팀 캔버라의 주전 포수는 대만 타이중에서 준결승전을 준비하다 정체불명의 한 남자에게 연락을 받았다. “준결승전에서 경기가 7점 차 이상으로 지도록 동료들을 움직여주면, 3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세미 프로리그인 호주에서 3만 달러는 한 시즌 연봉에 맞먹는 금액이다. 그러나 그는 이 내용을 곧바로 코칭스태프에 알렸고, 캔버라 구단이 주최 측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첫 승부 조작 사건이 불거진 후 20년째. 대만 프로야구는 여전히 슝디 엘리펀츠, 퉁이 라이온즈, 싱뇽 불스, 라미고 몽키스의 4개 팀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1990년 출범 당시와 같은 숫자다. 리그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승부 조작에 발목을 잡혀 뒷걸음질을 쳤다. 다행히 최근 국제대회에서 대만 야구대표팀이 맹활약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도 예전처럼 부활할 조짐이 보인다는 후문이다. 그 상승세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승부 조작 추방’일 터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