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몰라라 기소’ 비판받은 방산비리 수사 오버랩
검찰의 수사 단서는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었다. 남 전 사장이 검찰에서 강만수 전 은행장에 관련된 비위를 털어놨기 때문. 남 전 사장은 “강만수 당시 은행장에게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는데, 검찰은 이를 근거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번 수사 방향을 놓고 볼 때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로 시작된 수사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이름과 명성, 전 정권과의 관계를 감안해 수사 대상을 고르는 검찰의 정치적인 수사 관행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반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이끌고 있는 김기동 검사장(사법연수원 21기)은 검찰 내에서도 정무적인 판단에 충실하기로 유명하다.
대우조선해양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김기동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은 탁월한 정무 감각이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당연히 잘못 관리한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수사를 해 처벌하는 게 맞다. 하지만 털어서 안 나오는 사람은 없고, 검찰에게는 시간과 인력의 한계가 있다. 여기서 검찰의 고민이 시작된다. 누구를 수사 대상으로 고를 것인지 말이다.
이때 대부분의 특수통 검사들은 ‘잘못의 크기’보다는 ‘이름의 크기’로 수사 대상을 고른다. 더 잘못한 놈보다, 더 유명한 놈을 잡아서 기소하는 게, 이왕이면 구속해서 재판에 넘기는 게 특수통 검사들에게는 좋은 성적표이기 때문.
그 기준에서 봤을 때 이번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선택도 ‘특수통의 셈법’에 너무나 충실했다. 지난 2009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면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김기동 단장에게 대우조선해양 수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재직했던 2009∼2010년, 대우조선해양의 비리를 수사하면서 남상태·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들에 대한 의혹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수사의 방향은 ‘비리 사장’들이 아니었다.
공중파에 여러 차례 출연해 유명했던 건축가 이창하를 구속한 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고려대학교 동기이자 측근으로 불린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수사 대상으로 선택했다. 대우조선해양 측으로부터 들은 비리 혐의를 찾아 천신일 회장을 구속 기소했고, 당시 연임 로비 의혹이 있었던 남상태 사장과 그걸 지켜보며 대우조선해양 수장이 된 고재호 사장은 수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을 더 곪고 곪아 대우조선해양은 만신창이가 돼서 다시 검찰의 칼날 아래 돌아왔다.
그럼에도 검찰은 또 강만수 전 행장을 골랐다. 강 전 행장은 기획재정부 장관 등을 지낸 뒤 산업은행장으로 갔던, 단순한 공기업 은행장 그 이상의 힘을 발휘했던 ‘MB(이명박) 측근’으로 분류되기 때문. MB 정권 당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등과 함께 ‘금융 4대 천왕’으로 군림하던 그다. 죄질보다는 명성을 보고 수사 대상을 골랐기 때문인지, 검찰은 피의 사실도 언론에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강만수 전 행장이 재직 시절 대우조선해양에 압력을 행사해 바이오업체 B 사에 54억 원을 투자하게끔 했다는 게 검찰이 밝힌 주된 혐의. 검찰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과 B 사의 계약 체결과정 일정이 다소 지연되자 B 사 대표는 평소 알고 지내던 강만수 행장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계약이 지연돼 어려움이 많다. 빨리 해결 부탁드린다”라며 계약 체결에 힘 써줄 것을 청탁했다.
그러자 강 행장은 남상태 사장 등 대우조선해양 측에 수차례 연락해 계약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는 것인데 이를 놓고 남상태 사장이 “부당한 외압 지시였다”고 털어놨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가성 돈이 오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사 중이라는 것이 검찰의 부연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정황을 보면 ‘범죄 혐의’로까지 연결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당시 바이오업체 B 사는 정부로부터 떨어져 나와 설립됐던 실험적인 벤처 회사. 게다가 정부 등의 각종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있었고, 장관 출신인 강만수 전 행장 역시 그때부터 B 사를 알게 돼 대표와도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B 사로부터 ‘도움’을 대가로 뒷돈을 받은 게 나오지 않는 한 ‘정말 나쁜 놈’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권한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산업은행장은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 관리·감독 권한이 있기 때문. 검찰은 제3자 뇌물수수나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법원의 최근 판단을 보면 다소 무리가 있다. 강만수 전 행장이 설사 권한을 넘어서 지시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 B 사에 대한 투자 적정성 여부를 법원에서 어떻게 볼지 알 수 없다.
당시 B 사는 유망한 바이오업체로 분류되며 여러 차례 언론에도 공개된 적이 있던 곳. 최근 법원이 ‘배임’에 대해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경영인들의 ‘투자 권한’을 폭넓게 봐야 한다고 결정해온 만큼 검찰이 주장하는 강만수 전 행장의 혐의가 처벌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강만수 전 KDB산업은행장은 검찰 수사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일요신문DB
특수수사에 밝은 한 법조인은 “특수통의 대표주자로, 정무 감각이 밝은 게 김기동 단장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공개된 범죄 혐의들만 놓고 봤을 때 이미 검찰 수사는 검찰의 존재 이유인 정의 구현과는 거리가 멀다”며 “최근 법원이 각종 증거와 진술 등에 대해 꼼꼼하게 판단 여부를 따지는데 김기동 단장은 거칠게 수사하는 편이다. 지난해 김 단장이 방위산업비리 합동수사단을 이끌면서 재판에 넘긴 사건들이 올해 법원에서 줄줄이 무죄가 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지난해 방위산업비리 합수단이 구속 기소했던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과 정옥근 전 해군총장은 올해 1심과 대법원에서 각각 무죄를 선고받으며, ‘나 몰라라’ 식 기소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 역시 “잇따른 법조계 악재 속에 국정감사를 앞두고 남상태 전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해 정치인들을 건드릴 수 없으니 산업은행의 수장들을 상대로 수사를 펼치려는 것 같다”며 “검찰이 너무 주변을 의식해 스스로 비판을 자초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수사가 진행 중이라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러워한 법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름값을 따질 수밖에 없는 게 검찰의 생리”라면서도 “검찰의 존재 이유는 사회 정의 실현인데, 거악 척결이라는 기치에 검사들 스스로가 함몰돼 잘잘못보다 피의자의 이름에 집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