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북송금 의혹사건의 민감한 성격 탓인지 송두 환 특별검사는 언론과의 접촉을 삼간채 수사준 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 ||
대북송금 특별검사로 임명된 송두환 특검에 대한 인물평의 화두이다. 법조계 주변 인사들은 한결같이 그에 대해 “신중하고 차분한 양반”이라는 표현을 빼놓지 않았다.
지난 3월26일 ‘대북송금 의혹’ 사건 담당 특검에 임명되면서 그는 일약 뉴스메이커로 언론의 최대 관심인물이 됐다. 하지만 그는 이 ‘부담스런’ 세간의 관심을 특유의 침묵으로 버텼다.
특검에 임명된 후 열흘이 지나는 동안 그가 가진 공식 인터뷰는 단 한 차례였다. 그것도 임명 직후 기자들의 요청에 못이겨 자신의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잠시 가진 상견례였다. 이 자리에서도 그는 자신의 소감을 짧게 피력하는 선에서 세간의 관심을 피해갔다.
송 특검은 그 자리에서도 말을 극도로 아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대답은 간결체로 일관했다. 시종일관 어둡고도 무거운 표정을 지어 오히려 기자들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묘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정도였다.
취재진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번 특검 취재는 힘 꽤나 들겠다”는 푸념이 새어 나왔다. 이런 우려에 송 특검은 한술 더 떠 “이번 수사는 피의 사실 공표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강화됐기 때문에 기자분들이 다소 섭섭하게 느끼게 될 일이 많을 것”이라며 쐐기를 박았다.
이날 송 특검이 조심스럽게나마 피력한 소감의 일단은 이번 수사의 난해함을 대변해 준다.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반면 내용이 모두 공개되면 남북관계에 장애가 된다는 입장도 있는 만큼 이런 입장들을 모두 조화시키기 위해 지혜로운 사람들의 조언을 많이 듣고 균형있게 임무를 수행하겠다.”
그의 짧은 이 말 속에 유난히 강조된 두 단어는 ‘조화’와 ‘균형’이었다. 송 특검 인물평에 있어 이어지는 또다른 화두는 바로 이 조화와 균형이다.
그의 경기고 63회 동기인 서울 법대 호문혁 교수는 “조화와 융합 능력이 워낙 탁월한 친구”라고 말하고, “그런 만큼 이번 특검이 시작되기도 전에 불거졌던 일련의 걱정거리들을 슬기롭게 잘 극복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법조계 후배인 안병용 변호사 또한 “성실하고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균형 감각이 있다. 송 특검은 중도적인 입장에서 전체 의견을 잘 수렴하고 이끄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헌정 사상 네 번째 특검을 뽑는 과정에서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는 두 가지 점에 가장 중점을 둔 것으로 전해졌다. 탁월한 수사능력과 원만한 조정능력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역대 특검팀과는 달리 이번 사건이 검찰의 기본 수사 자료가 전혀 없이 ‘0’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 때문이었고, 후자의 경우는 진실 규명과 국익 고려라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양측의 이해 관계를 적절히 잘 조화시킬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변협은 후자쪽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송 특검을 추천했다. 수사능력은 특검보 이하 수사관들 몫으로도 충분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송 특검에 대해 마땅치 않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전직 외환은행 사외이사 경력 논란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그가 민변 회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측 인사들과 심정적으로 가깝다는 점도 썩 달갑지 않은 듯했다.
법조계에서는 벌써부터 “송 특검과 강금실 법무장관은 역대 가장 죽이 잘 맞는 민변 회장, 부회장이었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 송두환 특검이 지난달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 ||
송 특검을 잘 아는 법조계 지인들은 그의 가장 큰 장점으로 신중함과 합리성, 그리고 조용하면서도 강단있는 리더십을 꼽는다.
지난 2000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회장 시절 사무차장으로 그를 모셨던 김도형 변호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밴 분이다. 자기보다 어리다고 또는 부족하다고 해서 무시하는 법이 절대 없다. 항상 존중하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이해심이 많은 선배”라고 소개했다.
그를 가리켜 민변 후배들은 “가장 민변다운 선배”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그를 말할 때 민변은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난 90년 8년간 입었던 판사복을 벗자마자 곧바로 민변에 가입했다. 마치 민변 가입을 위해 사표를 낸 것처럼 보였다. “인권옹호라는 대원칙에 가장 충실한 조직이 민변이라고 생각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그가 내세운 논리였다.
그에게는 판사, 검사보다는 변호사란 직업이 훨씬 잘 어울리는 법조인이라는 평도 따른다. 송 특검 또한 변호사에 더 깊은 애착을 표시하곤 했다.
그는 변호사 개업을 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항상 “변호사라는 직함은 인권옹호라는 일차적 사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을 했던 것으로 법조인들 사이에 전해진다.
송 특검이 신중하면서도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스타일이라는 점은 최근의 행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특검으로 임명된 이후 ‘이용호 게이트 사건’을 다룬 차정일 특검에게 자주 자문을 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차정일 전 특검에게 특검보와 수사관 인선에 대한 조언에서부터 특검에 임하면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조목조목 물어봤다는 것.
그의 자문 역할은 비단 차 특검만이 아니었다. 민변과 특검에 걸쳐 모두 선배가 되는 최병모 전 특검을 비롯한 법조계 선배들은 물론, 심지어는 서울지검 형사9부 등 대북송금 사건 관련 수사 자료를 갖고 있는 검찰 쪽에도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정식 수사팀이 구성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개인 사무실 문을 꼭꼭 닫아 걸고서 소리없이 일을 먼저 챙기고 있는 셈이다.
송 특검과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워낙 조용해서 잘 튀지 않았던 친구”로 기억한다. 송 특검은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그의 인맥은 크게 학교 동문과 민변 선후배로 나뉠 수 있다.
경기고 63회 동문으로는 강지원 변호사, 이우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동욱 서울고검 검사, 호문혁 서울대 교수, 임웅 성균관대 법대 교수, 김진환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이 있다.
서울 법대 67학번 동기로는 송광수 검찰총장, 곽영철 대검 강력부장, 양동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박국수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신범 전 의원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친구들에게 있어 송 특검과의 추억은 희미하기만 하다. 학창시절 으레 있을 법한 그 흔한 에피소드 하나 없다.
강 변호사는 “작고 강단있는 친구로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호 교수는 “워낙 조용하고 과묵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학창시절 가장 단짝 친구였다는 이우근 판사조차도 “그저 친한 친구였다”는 말에 그쳤다.
사시 22회 동기인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아름다운 재단’ 이사장 박원순 변호사에게 있어서도 송 특검은 동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려운 한참 위의 선배뻘에 더 가깝다. 송 특검이 서른이 넘은 뒤늦은 나이에 사시에 합격한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말이 사시 동기이지 사실상 훨씬 선배같은 분이기 때문에 특별히 친하게 어울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제4대 민변 회장을 지낸 송 특검의 법조계 인맥은 사실 모든 민변 회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임원을 함께 지냈던 강금실 법무장관, 이석태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 박연철 윤기원 김도형 김진국 안병용 변호사 등이 가깝다.
학교나 사시 동기들에게 조용한 친구로 통했던 송 특검에 대한 느낌은 후배들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는 듯하다. 워낙 조용해서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선배로 통했다. 하지만 의외로 따뜻하고 소박한 면도 많았던 것으로 후배들은 기억한다.
민변 시절 임원을 함께 역임한 안병용 변호사는 “송 회장은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필요한 말만 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선입견을 고쳐주었다. 그는 이어 “가끔 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에는 지난 에피소드를 얘기하면서 좌중을 한번씩 웃게 만드는, 탁월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유머 감각을 갖춘 선배”라고 소개했다.
김도형 변호사 또한 “송 특검은 술을 썩 즐긴다거나 좋아하지는 않지만, 후배들을 위해 술자리에 기꺼이 합석해서 잔을 주고받으며 교감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고 전했다.
송 특검은 말을 하기보다는 듣기를 더 좋아하는 스타일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뒤에서 지켜보지 않고 앞장서는 스타일이었다.
지난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에 즈음해서 변협과 민변이 심각한 대립 양상을 빚었을 때 보여준 송 특검의 행보는 이를 잘 말해준다. 당시 DJ개혁정책에 변협이 반대 목소리를 내자, 민변을 이끌었던 송 특검은 민변 회원의 변협 탈퇴라는 초강수를 던지기도 했다.
그는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물론 언론이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러나 할 말을 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탈세나 사주 비리까지 눈감아 줘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언론의 특권적 이기주의일 따름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당시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 기고 거부 운동에 동참할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민변 회장에 취임하면서 그는 “여성, 시국, 노동, 외국인 노동자, 탈북동포 문제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인권문제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한 후배 변호사는 “송 선배를 보면 돌아가신 조영래 변호사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송 특검은 지금도 서슴없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인권변호사의 상징적 존재이며 민변의 창시자인 고 조영래 변호사를 꼽는다.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인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겠다던 그는 이번에 본의 아니게 ‘외도’를 하게 된 셈이다. 그 역시 특검에 임명된 후 “솔직히 특검을 피하고 싶었지만,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피하기만 할 수도 없었다”고 자신의 감정을 밝혔다.
어쨌든 그의 말처럼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특검은 시작될 것이고, 특검이 시작되면 지금껏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인 송 특검의 말과 행보에 따라 향후 정국은 격렬하게 요동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