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10일 열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선거 토론회에 나선 이해찬 총리 지명자. | ||
이 지명자는 88년 13대 총선 때 서울 관악을에서 당선된 뒤 이 지역에서 내리 5선을 지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거쳐,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 총선기획단장, 16대 대선에선 국민회의 대선기획 부본부장, 17대 대선에선 민주당 대선기획본부장을 거치며 실무능력을 갖춘 ‘책사형’ 정치인으로 불렸을 정도로 검증된 인사라는 평이다. 국회 인준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제 정가의 시선은 이해찬 지명자의 총리 인준 통과나 총리직 수행에 대한 적합 여부보다는 열린우리당의 두 대권주자와의 관계에 모아지고 있다. 이 지명자와 입각이 예정된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전 원내대표 간에 펼쳐질 역학관계가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이해찬 지명자는 두 ‘잠룡’과 오래 전부터 끈끈한 개인적 인연을 맺어왔다. 정 전 의장은 이 지명자와 서울대 문리대 동기생으로 사석에선 말을 편하게 하는 ‘친구 사이’다. 57세로 52세인 이 지명자보다 다섯 살 위인 김 전 대표는 민주화운동 직계선배로 사석에서 이 지명자가 깍듯하게 ‘형님’이라 부른다. 이 지명자 총리 지명 직후 정가에선 ‘정 전 의장이 친구 밑으로 들어가려 할까’ ‘김 전 대표가 후배 밑에서 장관 노릇을 하려 할까’란 추측이 나돌면서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의 입각이 무산될 것이란 예측도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나 이 지명자 총리 지명에 대한 축하를 보내며 “국정운영에서 선·후배나 나이를 따지는 것은 책임지려는 자세가 아니다”고 밝혔다. 일본 방문중이었던 정 전 의장도 이 지명자에게 전화해 “훌륭한 총리가 될 것으로 믿는다”며 축하의 뜻을 전했다. 아울러 두 사람 모두 ‘입각 불변’ 입장을 밝혔다.
인간적인 면에서는 김 전 대표보다는 정 전 의장이 이 지명자와 가까운 사이다. 이 지명자가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 정 전 의장 계보인 천정배 의원과 맞붙을 때 정 전 의장 직계 인사들이 총동원돼 천 의원을 지지했던 와중에도 정 전 의장은 “내가 (이)해찬이 따라다니다가 학생운동 하게 됐고 정치도 하게 됐다”며 이 지명자와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했다. 대학 시절 이 지명자는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으며 정 전 의장은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학내 시위로 무기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지난 96년 15대 총선 직전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이끌던 국민회의가 총선에 출마시킬 외부 인사 영입작업을 할 때 정 전 의장 영입에 나선 인물도 이 지명자였다. 당시 외부 인사 영입을 총괄하던 권노갑 전 고문이 MBC 기자였던 정 전 의장에 호감을 갖고 친분이 두터운 이 지명자를 물밑 라인으로 삼아 정 전 의장 영입에 성공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문리대 72학번 모임 ‘마당’의 주축 멤버다. 이 모임은 이들의 졸업 직후인 지난 76년 가을 공안당국의 눈을 피해 출판·독서 활동을 할 목적으로 ‘72학번 모임’이란 이름으로 결성됐다. 이후 80년 서울 덕수궁 근처 한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정식 발족하면서 그 식당 이름을 따 모임 이름을 ‘마당’이라 정했다. 이들은 아직도 이곳에서 모임을 가진다고 한다.
▲ 지난 2001년 민주당 워크숍에 함께 참석한 이해찬 정동영 당시 민주당 의원. | ||
이렇듯 인간적으로는 가까운 사이지만 정치적 행보에서 두 사람은 다소 ‘엇박자’를 보여온 게 사실이다. 이 지명자가 직접 영입한 정 전 의장이 지난 2000년 말 당시 소장파 인사들을 규합해 당내 개혁을 주창하며 이른바 ‘정풍 운동’을 벌였다. 정 전 의장 등이 비판하는 세력의 중심에는 권노갑 전 고문이 서 있었다.
그러나 이 지명자는 정치적 노선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권 전 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 핵심인사들과 가깝게 지내왔다. 한때 권 전 고문이 함께 자주 골프를 치던 당내 인사로 이해찬 의원이 꼽히기도 했다. 이 지명자는 정 전 의장 등이 주도한 ‘정풍운동’에 대해 “문제제기 방식이 도가 지나쳤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이 지명자는 당시 “그만큼 응집력 있는 세력이 없다”며 ‘동교동 역할론’을 비호하기도 했다.
이들의 정치적 갈등은 17대 총선 직후 벌어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재연됐다. 재야파인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지원을 받은 이 지명자와 대결을 벌인 천정배 의원이 정 전 의장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의 지지를 받아 원내대표직에 오른 것이다.
이해찬 지명자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김정길 전 상임중앙위원은 “아무리 사적으로 친해도 정치적으로 이견을 보이면 같이 정치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며 “이해찬 지명자와 정동영 전 의장은 정치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사람들”이라 선을 긋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정가에선 ‘정치적 행보를 포함한 인생 역정에서는 정 전 의장보다는 김 전 대표가 이 지명자와 더욱 밀착돼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김 전 대표와 함께 옥살이를 했던 이 지명자는 이후로 김 전 대표를 재야운동계 선배로 예우해 왔다. 지난 83년 김 전 대표가 민청련 의장에 올랐을 때 이 지명자가 민청련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돼서 김 전 대표를 보좌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운동권 출신 의원은 “(이 지명자의) 김근태 전 대표에 대한 예우는 당내 인사들 모두가 알 정도다. 이 지명자가 정치권 후배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도 멀리 김근태 전 대표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면 벌떡 일어나 ‘형님, 이리 와서 앉으시오’라며 상석을 내준다”고 밝힌다.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김근태 전 대표가 당내 재야세력의 대부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이해찬 지명자가 공개석상에서 김 전 대표에게 깍듯이 대해온 점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힐 정도다.
지난 2002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김 전 대표는 ‘2000년 최고위원 경선 당시 권노갑 전 고문으로부터 2천만원 격려금을 받았다’고 양심고백을 한 적이 있다. 이 발언으로 권 전 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 인사들을 핀치에 몰아넣기도 했지만 이는 곧 권 전 고문과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동교동계 출신의 한 정치권 인사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권 전 고문과 김 전 대표가 한동안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배경엔 이해찬 지명자의 노력이 컸다. DJ가 재야 인사 배려 차원에서 지난 95년 영입해 총선 출마 직전 부총재직도 줬지만 2000년 최고위원직 당선을 거치면서 차기 주자로 조기 성장하는 것에 대해 동교동계 인사들이 경계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해찬 지명자가 ‘김근태 선배 같은 사람이 클 수 있는 당이 돼야 한다’라며 역성을 들어주곤 했다”고 회상했다.
얽히고 설킨 인연으로 빚어지는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이해찬 지명자의 총리직 입성과 관계없이 일단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의 입각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정치특보를 지낸 문희상 의원은 총리 지명 직후 “그들(정동영 김근태)의 입각은 대권수업 차원에서 추진된 것인 만큼 입각 안하면 바보가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명자의 총리 지명과 관계없이 당초의 개각 구상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청와대의 의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 측근들 사이에서 ‘입각 철회론’이 잠시나마 불거졌던 것은 사실이다. 입각을 둘러싸고 그동안 낳은 잡음 때문에 두사람 다 입지가 좁아져 입각을 못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돌기도 한다. 그러나 당 중앙위원회에서 신기남 의장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는 ‘좋든 싫든’ 입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평이다.
▲ 악수하는 이해찬 총리지명자와 김근태 의원. | ||
이 지명자의 행정부 장악이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의 조기 대권 행보를 단속할 수는 있겠지만 노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국정2기를 이끌어가기엔 이 지명자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란 평이다. 이 같은 전망은 그의 이력에서 비롯된다.
지난 90년 이해찬 지명자는 당시 ‘꼬마 민주당’ 소속 의원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길 전 의원, 이철 전 의원 등과 함께 ‘의원직 사퇴’를 결행한 바 있다. 3당 합당 이후 거대야당이 된 민자당이 국회 내 주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하던 와중에 방송관계법 날치기 통과를 한 것이 이들 4인방을 자극하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정길 전 의원은 “원래 이상수 전 의원도 함께 의원직 사퇴를 하려 했다. 그런데 평민당 소속이었던 이 의원은 ‘원내 투쟁을 하자’는 DJ의 뜻에 밀려 결국 사퇴를 포기했다. 그러나 이해찬 지명자는 DJ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 의지대로 우리들과 함께 의원직 사퇴를 밀어붙였다”고 회상했다. 이들 4인방의 행동에 자극 받은 야권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의원직 사퇴 결의를 하게 되는 상황까지 갔다. 이후 야권에서 주장한 지방자치제 선거 법안을 여권이 받아들이면서 의원직 사퇴 소동이 일단락 됐고 ‘꼬마 민주당’이 평민당과 통합되면서 ‘통합 민주당’이 출범하게 됐다. 이 때부터 노 대통령과 이 지명자가 한 당에서 한솥밥을 먹게된 것이다. 그런데 92년 총선을 앞두고 이 지명자는 공천을 박탈당할 위험에 처하게 됐다. 김정길 전 의원은 “결국 DJ에게 맞섰던 전력이 공천과정에서 안좋게 작용한 것 아니었겠나. 당시 당 원내총무였던 나와 당 대변인이었던 노 대통령이 적극 나서 결국 이 지명자가 공천을 받아 출마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DJ가 대통령직에 오른 이후에도 이 지명자는 DJ의 의지에 대항해 ‘소신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또한번 보여준다. 지난 2001년 이 지명자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었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지시하자 “지금 이 문제를 다루면 색깔논쟁으로 비화돼 다른 개혁에 차질이 생긴다”며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정을 이끌게 될 ‘노무현-이해찬’ 조합에 대해 “흥분했을 때 한 사람은 집어던지고 한 사람은 사라져버리는 스타일”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집어던지는 사람’은 노 대통령이 지난 88년 5공 청문회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집어던졌던 일에 빗댄 표현이다. 이 의원은 “이해찬 의원은 상임위 진행 중에도 다른 정파 의원이 자신과 반목하거나 자신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으면 상임위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버려 잠적해버리곤 했다”면서 ‘노무현-이해찬’조합에 대해 “다혈질인 두 사람의 조합이 박자가 맞을 땐 한없이 좋겠지만 서로의 개성이 부딪칠 위험도 있지 않겠나”란 조심스런 전망을 덧붙이기도 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지명자가 과거 당 총재나 대통령에게 소신있는 주장을 펼쳤던 전력이 있는 만큼 노 대통령 앞에서도 할 말 다하는 총리가 될 것으로 본다. 이는 결국 입각을 앞두고 있는 정 전 의장이나 김 전 대표를 포함한 전체 내각에 대한 군기반장 역할도 예측케 하는 대목”이라 설명했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순순히 말 잘듣는 총리감보다는 자신에게도 할 소리 다하면서 국정을 힘있게 아우를 수 있는 총리감을 택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은) 바른 말 하는 아랫사람과의 ‘기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이라 평하기도 했다.
‘이해찬 총리, 정동영 김근태 입각’ 카드에 대해 정가에선 “헌정사상 초유의 실세 내각”이란 평을 내놓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더불어 이들 세 사람이 만들어낼 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이 될지 아니면 ‘불협화음’이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