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기 모아모아 최순실게이트도 영화로 만들어봐?
단지 제작 편수의 증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마다의 영화가 담은 표현의 방식도 과감하다. 때로는 짙은 풍자로, 때로는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담는다. 현실에 기반을 둔 ‘팩트’가 스크린에 구현됐을 때 그 위력이 더욱 거세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영화가 발휘할 폭발력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 다큐 <자백>으로 시작된 열기
현재 극장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는 다큐멘터리 <자백>(감독 최승호·제작 뉴스타파)이다.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파헤친 이 영화는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흥행 기록을 쌓아 가고 있다.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로는 처음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극장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누적관객 10만 명을 돌파하기는 <자백>이 7번째다. 그만큼 거두기 어려운 성적이라는 의미다.
영화 ‘자백’ 홍보 스틸 컷. 현재 극장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영화 ‘자백’은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자백>은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친 영화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가 국정원에 의해 간첩 혐의를 받은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사건이 어떻게 조작됐는지를 고발한다. 국정원과 검찰로 상징되는 정권의 심장부에 화살을 겨눈다. 전하려는 메시지는 물론 작품의 완성도가 탁월하지만 대중을 끌어들일 만한 장르로 꼽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백>은 여러 우려를 딛고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대박’ 수준인 10만 명을 거뜬히 넘어섰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감독 전인환·제작 ‘무현’ 제작위원회)를 둘러싼 열풍도 예사롭지 않다. 10월 26일 개봉해 4일 만에 1만 관객을 돌파했고 곧바로 2만 명을 모았다. 특히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개봉 직전까지 상영관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탓에 제작진이 호소문까지 내놓았다. 관객에 제대로 공개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라질 뻔했지만 정작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순식간에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지금 분위기만 놓고 보면 ‘열풍’이라 할 만하다.
영화 ‘택시운전사’ 홍보 스틸 컷.
# 송강호 최민식 조인성…톱스타 선택도 ‘현실 비판’
현재 성과를 나타내는 장르가 다큐멘터리이지만 상업영화의 움직임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다. 실제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시도부터 권력 위에 군림하는 검찰의 세계를 비추는 영화도 있다. 대기업 배급사가 투자하고, 톱스타들이 주인공으로 나서 제작 규모를 키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들 영화의 제작이 비슷한 시기에 맞물리면서 내년에는 영화계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송강호가 주연을 맡은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제작 더램프)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았다. 1980년 5월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는 서울의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평범한 소시민의 눈을 통해 본 뒤틀린 권력의 욕망을 보여준다.
송강호가 <택시운전사>를 끝내고 참여할 또 다른 영화 <제5열>(감독 원신연·제작 와인드업필름)도 주목받는다. 완벽한 허구의 이야기인 데다, 실화 혹은 실존인물과 전혀 무관한 내용이지만 극의 주요 소재인 국방 비리 자체가 뉴스를 자주 장식하는 논란의 이슈라는 점에서 개봉 이후 현실을 떠올리는 관객의 반응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더 킹’ 홍보 스틸 컷.
현재 혼돈에 빠진 정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세력은 검찰이다. 바로 그 검찰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그리는 영화도 있다. 조인성·정우성 주연의 <더 킹>(감독 한재림·제작 우주필름)이다. 영화는 몇 명의 대통령을 바꿔가면서 권력의 몸통을 차지한 검찰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오직 삶의 목표가 ‘권력의 쟁취’에 있는 검사들이 주인공이다. 허구이지만 그저 상상 속 이야기라고 간과하기 어려운 현실성 짙은 내용이다.
최민식이 주연한 영화 <특별시민>(감독 박인제·제작 팔레트픽처스)은 현실 정치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대한민국 최초로 3선 시장에 도전하는 서울특별시장의 이야기다. 치열한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고든다.
12월 개봉하는 김남길 주연의 <판도라>(감독 박정우·제작 CAC엔터테인먼트)에도 시선을 거두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지진에 따른 원전 사고를 그린 영화는 재난을 맞닥뜨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최근 늘어나는 재난 블록버스터로 볼 수 있지만 원전 사고라는 소재가 가진 ‘민감성’으로 인해 영화계 안팎에서 예민한 시선을 받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