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 기획자를 만나다
지난 5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을 행진 중인 중고생혁명 지도부(사진=최훈민 기자)
중고생혁명 집회는 2시부터 4시까지 50명으로 신고됐다. 모인 인원은 10배를 넘어섰고 4시가 넘어서도 해산하지 않았다. 경찰은 4시를 기점으로 해산을 명령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애초에 신고한 50명의 10배가 넘는 500명이 행진에 참가했다. 신고 범위 이탈로 집시법 위반 행위다. 집시법에 따라 채증 절차를 진행하고 채증 자료를 바탕으로 사법처리한다”고 경고했다. 선두에 선 일부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으나 별다른 충돌 없이 시위대는 곧 세종대왕 동상 근처로 이동했다.
시위대가 든 플래카드 정중앙에는 교복을 입은 한 청년이 섰다. 그는 교복을 입은 채 확성기를 들고 행진 내내 앞장서 시위대 600여 명을 지휘했다. 명료한 구호와 진행 방향을 설정한 그는 이번 행진을 주도한 최준호(18) 중고생혁명 지도부 임시대표였다.
최준호 중고생혁명 지도부 임시대표(사진제공=최준호)
시위가 끝나고 보도된 중고생혁명 관련 기사에는 부정적인 반응이 거셌다. ‘혁명정권’이란 단어 선택과 ‘세워내자’라는 표현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다. ‘업자’ 냄새가 난다는 반응부터 ‘빨갱이’ 논쟁까지 붉어졌다. 이에 <일요신문>이 직접 최준호 임시대표를 찾아 세간의 반응과 의혹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1998년생으로 고교 졸업생이다. 1년 일찍 졸업했다.”
─ 중고생혁명 지도부는 무엇인가.
“이번 집회를 계획하면서 만든 신생 단체다. 중고생 집회를 총괄해 나가자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시국에 대한 목소리를 이 단체를 중심으로 담아내고자 모였다.”
─ 구성원은 어떻게 되나?
“중고생혁명이란 단체는 집회를 준비하는 준비팀 수준이었다. 원래 10명도 채 안 됐다. 50명 정도 집회 참여할 거라 예상했는데 전국 중고생 참가인원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활동을 희망해 현재 500명 정도로 구성됐다.”
─ 행진 때 중고생 연대라는 곳도 눈에 보이던데 이곳이랑 관련이 있나.
“중고생 연대는 2년 정도 된 교육제도 개혁이나 학생의 현안에 대해 활동해 온 단체다. 규모는 200여 명 정도 되고 나 역시 소속돼 있다. 오랫동안 활동한 친구 위주로 이뤄져있다.”
─ 언제 이번 행진을 기획하게 됐나.
“최순실 관련 <JTBC> 보도가 처음 나간 다음날 중고생 신분에 사회활동을 해온 사람들 사이에서 ‘민주주의 위기에 중고생 집회를 기획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한 일주일정도 내가 담당해서 기획하고 진행하게 됐다.”
페이스북 ‘최준호 페이지’에 따르면 최준호 임시대표는 지난 2010년 민주노동당 최연소 당원으로 활동했고 옛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청소년비상대책위원장과 청소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을 거쳐 현재 중고생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사교육 금지, 공교육 개혁, 중고생 정치결사권’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청소년을 억압하는 교육제도와 청소년 제도를 혁파를 꿈꾼다. “중고생이 시위하면 학교가 뒤바뀐다”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 통진당이 없어지긴 했지만 잔존 인력이 시켰거나 배후가 있다는 이야기가 돈다. 본인이 통진당 활동 이력 탓에 이런 의혹이 제기된 듯 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관계는 전혀 아니다. 그런 이야기가 슬슬 나오는데 통진당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일말의 관계도 어떠한 배후도 없다. 이번 집회는 진짜 나 혼자서 준비해 나갔다. 배후가 있다면 나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한 사람이니까.
이런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엄청난 규모의 중고생이 결속력있게 나온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중고생을 자기 주도성이 결여된 존재로 바라보는 것 같아 좀 슬픈 생각도 든다. 광장에 나온 중고생과 저는 어떤 배후나 성인의 도움 없이 우리의 힘과 의지로 준비해나갔다. 정말 명확하다.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 그럼 플래카드와 확성기 등 시위에 필요한 물품은 어떻게 마련했나. 학생이라면 돈도 부족할 텐데.
“플래카드는 지난 5일 시위에 한해 자비로 충당했다. 9일부터 후원 계좌를 만드려고 한다. 성인이나 여유가 있는 중고생에게 십시일반 걷어 운영비로 사용할 예정이다. 확성기는 중고생연대에서 빌려왔다.”
─ 행진 때 사용된 플래카드에 ‘세워내다’는 문법적으로 ‘세우다’가 맞다. 일각에서 북한식 표현이란 말이 돈다. 왜 세워내자를 사용했는가.
“세워내자가 북한에서 많이 쓴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 단순히 구호를 만들거나 플래카드를 제작할 때 4 음절을 끊어 쓴다. 4 음절로 만들다 보니 ‘세우자’ 말고 세워내자로 들어간 상황이다.”
─ 왜 굳이 ‘혁명’인가. 혁명이 뭐라고 생각하나.
“단체 이름과 플래카드에 혁명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4·19 혁명 때문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처했던 위기 가운데 중고생이 가장 많이 참여했고 또 희생된 사건이 4·19 혁명이다. 4·19 혁명을 본받아 무수한 중고생이 거리로 나와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공산 혁명과 체재 전복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가 의미한 바는 다르다. 현재 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정권과 얽힌 수많은 기득권 층이 드러났다. 단순히 박근혜, 최순실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 ‘헬 조선’이라고 불리는 이 사회 자체를 바꿔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싶어서 사용했다. 모순이 심해진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의 움직임을 이야기해야 할 때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 한국 사회에서 진보는 크게 통진당과 궤를 같이 하는 민족해방주의이자 자주파 NL(National Liberty) 계열과 정의당으로 불리는 민중민주주의이자 평등파 PD(People‘s Democracy) 계열로 나뉜다. 혁명은 보통 늘 종북주의로 논란이 되는 NL 계열에서 많이 쓰는 단어다. 통진당의 배후설을 떠나서도 본인은 NL에 가까운 성향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나.
“내가 통진당 활동 경력이 있는 건 이전 정당인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입할 당시 민노당은 NL과 PD가 합쳐진 정당이었다. 거기에 쭉 그냥 가만히 있었다. 당이 통진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최준호 임시대표의 주장과 달리 최 군이 최연소 민노당원이 된 2010년 10월은 민노당 내 PD 계열 대부분이 빠져 나간 지 3년을 넘긴 시기이자 이정희 전 의원이 민노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였다. 2008년 3월 민노당 내 PD 계열 당원 대부분은 민노당을 떠나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 정당 활동하고 있는가.
“두 세력이 나뉜 뒤 하지 않고 있다.”
─ 본인은 어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나.
“회색분자 같은 소리지만 두 계열 다 공감하는 입장이다. 두 계열의 주장 모두 우리나라에 필요한 주장이고 우리나라를 바꾸려는 기본 가치관에서 나온 거라 생각한다. 만약 한쪽에 가깝다고 느꼈다면 한쪽에 가 있었을 거다. 난 둘 다 지지한다. 진보진영이 힘을 합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 NL과 PD 둘 다 지지한다고 했는데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는 통진당의 강령과 활동이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위배한다며 강제 해산을 결정했다. NL로 불리는 통진당의 주장 가운데 지지하는 대목은 어디인가.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체 결정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이다.”
─ NL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건가.
“NL의 필요성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사회고 다원주의를 이야기하는 국가인데 나라가 나서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을 위축시키고 재단하는 게 말이 안 된다.”
─ NL이 필요하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NL에 따로 매력을 느낀 건 없다. NL과 PD를 떠나 진보라는 담론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현 사회의 문제점을 느끼고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 틀이 있다. 그런 이유에서 진보 진영을 지지한다.”
─ 기본 틀이라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가 인정 받지 못하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NL의 기본 틀과 북한 정부 방향의 유사성을 꼽는다. 본인은 NL도 필요하다 말했는데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뭔가.
“이 문제가 중고생혁명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NL이든 PD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기 마련이다. NL의 주장에 동조한다는 생각은 없다. NL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도 많지만 난 다르게 생각한다.”
─ 어떤 게 다른가.
“다수가 동의하는 북한 정권의 특수성이 있다. 독재정권과 군비 확충이 특수성으로 꼽히지 않나. 난 이 부분을 전혀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당연히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 NL의 어떤 부분을 지지하는지 아직 답변하지 않았다.
“중고생혁명과 관련이 없는 것 같아서 답변하지 않겠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내 개인 정치 성향을 답한 것 같다.”
오는 12일 최준호 임시대표는 다시 광화문 광장을 찾을 예정이다. 중고생혁명은 지난 5일 내건 슬로건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의 유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최준호 임시대표는 “일부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했지만 동의하지 못했다”면서도 “너무 세다는 의견과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소리에 대해 내부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전국민의 95%가 박근혜를 반대한다. 이번에는 조금 온화한 슬로건으로 95%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