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고 불러” “내 XX 만질래?” 현지 시사 고발 방송으로 드러나…방송 이후에도 피해 제보 폭주
연인끼리의 대화라고 생각해도 낯 뜨거운 수위의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은 고작 열두 살의 칠레 여학생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문자를 보낸 상대방이 중년의 한국 남성이라는 점이다. 주칠레 대사관에서 참사관(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한국, 특히 케이팝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어린 여학생에게 접근해 지속적인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그가 인정한 사건은 2건이지만 칠레 현지에서는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2월18일 칠레 방송국 Canal13의 시사 고발 방송 <엔 수 프로피아 트람파>에 촬영된 박 아무개 참사관의 모습. 20세 여성이 연기하고 있는 13세 여학생을 껴안고 입을 맞추려 하고 있다. 사진 Canal13 방송 화면 캡처
문제의 참사관은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칠레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쳐 주는 ‘한국어 학교’의 운영책임자로 알려진 박 아무개 씨. 그의 또 다른 얼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칠레의 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 덕이었다. 우리나라의 <궁금한 이야기 Y>, <그것이 알고 싶다>와 비슷한 프로그램인 카날13(Canal13) 방송사의 <엔 수 프로피아 트람파(En Su Propia Trampa·제 덫에 걸리다)>는 지난 12월 18일 박 참사관 사건을 다룬 방송을 공개했다.
이 방송은 지난 9월 박 참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한 열두 살짜리 여학생의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섰다. 피해 학생은 박 참사관이 운영하던 한국어 학교의 학생으로 박 참사관으로부터 음란한 내용의 문자를 받거나 이마와 입술에 키스를 당하는 등 추행을 당했다.
방송을 통해 밝혀진 박 참사관이 여학생들에게 접근하는 수법은 대체로 유사했다. 먼저 한국어 교실이나 대사관에서 개최하는 한류 이벤트에 참석하는 여학생들에게 다양한 선물을 준다. 처음으로 신고한 피해자는 시계와 사전, 좋아하는 케이팝 그룹의 물건 등을 선물로 받았다고 말했다. 박 참사관은 선물을 하나씩 줄 때마다 스킨십의 강도를 높여가는 식으로 학생들을 유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피해 학생에게 “내 XX를 만지고 싶지 않느냐” “내 무릎에 앉아라”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선물을 주면서 입술에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여학생은 끊임없는 박 참사관의 스킨십과 음란 문자로 인해 “너무 부끄러워서 자살하고 싶었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박 참사관의 사건이 방송되자 칠레 전역이 들끓었다. 칠레 국민들은 방송사인 카날13의 공식 계정에 댓글로 박 참사관과 한국을 비난하는 글을 게시했고, 칠레 교민들 역시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라고 토로했다. 방송 직후 외교부는 부리나케 그를 직무정지시키고 12월 20일 한국으로 불러들였으며, 같은 날 주칠레 한국대사관은 홈페이지에 공개 사과문을 올리기에 이른다. 이어 21일에는 박 참사관에 대해 중징계 의결을 요구한 뒤 서울중앙지검에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형사 고발할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외교부의 이런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행태가 어제오늘일이 아니라는 것. 매년 드러나는 해외 주재 외교관과 외교부 직원들의 성 관련 사건은 국정감사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고질적인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부는 물론 현지 대사관까지 전혀 사실 파악을 하지 못하다가 매스컴에 보도되고 나서야 부리나케 사건 진화에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주칠레대사관의 박 아무개 참사관 사건과 관련한 공식 사과문. 사진 주칠레한국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이번 사건은 박 참사관의 현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다. 대사관에서 공식적으로 문화 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 자신의 지위와 업무를 이용해 여학생들을 유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총괄하고 있는 대사관이 사건을 몰랐다는 것은 신빙성 문제를 떠나 대사관에도 직무 유기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 여학생들의 증언은 방송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칠레 여학생은 “이 사람(박 참사관)은 내 한국어 선생님이었다. 나에게 집으로 놀러오라며 권했지만 가지 않았고, 내게도 ‘귀엽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했다.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 외에 다수의 칠레 여학생들이 박 참사관을 “한국어 선생님”으로 칭하며 “나 말고도 많은 여학생들에게 왓츠앱(카카오톡과 유사한 해외 메신저)을 이용해 이상한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 (박 참사관을)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였다”라고 속속 피해 증언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다수의 현지 여학생들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있지만 박 참사관은 현재 현지 검찰에 제출한 1차 조사 자료와 이번 방송을 통해서 밝혀진 12살, 13살 여학생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만 일부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피해 학생들의 수가 많은 점 △페이스북 메신저 등을 통해 박 참사관이 학생들에게 보낸 음란 문자 증거가 확보된 점 △칠레 방송사인 카날13이 방송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피해 사례를 모으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박 참사관의 혐의는 칠레 검찰과 한국 검찰의 공조 수사를 통해서 상당 부분 인정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외교부 역시 “외교관에게는 면책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칠레 현지에서 박 참사관이 기소가 되지는 않지만, 현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칠레 현지 교민은 “칠레에서 한국어 교실에 다니거나 대사관 주최 한류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이고, 한국 여행이나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라며 “그런 아이들의 취약점을 노려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 한만큼 박 참사관의 모든 혐의에 대한 수사가 칠레와의 공조를 통해 면밀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관들의 현지 성범죄·추문은 1996년 주네덜란드 대사의 인도네시아 가정부 성추행 피소를 시작으로 △2011년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들과 중국 여성 1명의 부적절한 관계가 낳은 ‘상하이 스캔들’ △2012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총영사 여직원 성추행 △같은 해 태국 방콕주재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의 현지 한국인 여교수 성추행 △2013년 주프랑스 영사의 교민 여성 강제 볼 키스 △2014년 국방정보본부 소속 주벨기에 국방무관의 현지 공관 여직원 성추행 등이 보도됐던 바 있다.
외교부는 매년 자체감사를 통해 이 같은 외무공무원들의 성 관련 사건을 적발하고 있지만 다수의 경우 감봉~강등 등 비교적 낮은 수위의 징계를 내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