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 가깝지만 남은 길 더 험난
▲ 이명박 후보는 BBK 수사 발표 등 몇 가지 고비를 더 넘어야 대선 결승선에 안착할 수 있다. 사진은 11월 29일 이 후보가 여의도역에서 거리유세를 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런데 정치권에선 이 후보의 11월 위기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김경준 씨가 입국해 BBK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 이명박 후보가 11월경에 후보교체론에 시달려 낙마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 후보는 BBK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를 앞두고 “한방이 아니라 헛방에 그쳤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녀 위장취업, 이회창 전 총재의 깜짝 출마, 범여권의 단일화 변수 등의 허들을 모두 뛰어넘어 결승선을 향해 질주할 태세다. 수사 결과를 봐야겠지만 하나둘 BBK 사건과 관련 유리한 이야기도 언론에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가 결승선에 안착하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허들’을 집중분석해봤다.
이명박 후보 측은 BBK 사건에 대해 자체적으로 사건의 종결을 선언하며 더 이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BBK 사건과 관련한 내부의 ‘자신감’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먼저 이 사건을 보는 민심은 ‘이 후보와 BBK 사건이 관련이 일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왜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여권이 네거티브 공세로 밀어붙이는 것인가. BBK도 문제가 있지만 오로지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여권의 전략 부재 역시 똑같이 문제가 있다’라고 보는 것 같다. 이 후보와 BBK의 연관성을 따지는 것은 좋은데 그것을 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는 ‘양비론’이 이 후보의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두 번째는 검찰의 태도다. 대한민국 검찰이 어떤 집단인가. BBK에 확실하게 문제가 있었다면 벌써 어떤 식으로든 조사 결과를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무리 파헤쳐 봐도 이 후보를 기소까지 할 ‘꺼리’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둘러본 민심은 검찰이 확실한 증거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 후보가 대선에 낙마할 정도의 결격사유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또한 그의 지지율이 유지되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후보 측이 BBK 사건에 대해 이렇게 자신감을 내비쳐도 그들의 희망대로 이것이 완전하게 종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검찰 주변에선 “수사팀이 이 후보가 꼼짝못할 확실할 증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발표할지 고민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이 후보 측도 검찰의 태도를 이번 사건의 중요한 키포인트로 보고 물밑에서 계속 내부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다.
사실 이 후보 측이 검찰의 ‘한칼’을 두려워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지난 8월 당 경선 때 도곡동땅 실소유주 논란과 관련해 이 후보 측의 전반적 기류는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당시 이 후보 측은 수사결과 발표 직전까지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심지어 검찰 쪽에서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검찰로 가고 있던 중에 발표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이번에도 “검찰이 또 어떻게 마음을 바꿀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편 이 후보 측은 만약 이번에 검찰이 ‘BBK 사건과 이명박 후보가 일정한 관계가 있다’라며 그들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에 대비하고 있다. 이 후보 측은 “검찰이 경천동지할 수사결과를 발표할 경우 우리는 전면적인 공세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다. ‘검찰의 야당 후보 탄압’ 논리를 앞세워 대 검찰 투쟁을 선언할 것이라는 게 유력한 시나리오라고 전해진다. 민심에 호소해 ‘민란’에 버금가는 강력한 대 정부 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캠프의 한 외곽 조직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검찰이 이 후보를 기소할 정도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며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경우 우리도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 후보를 느슨하게 지지하는 그룹의 응집을 불러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회창 전 총재 출마도 이 후보 측에는 ‘눈엣가시’ 같은 변수다. 이 전 총재가 후보등록을 하고 완주할 분위기가 확연해지면서 이 후보 측에서도 “창을 막아야 하는데 쉽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단 이 후보 측은 ‘강온 양면’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먼저 겉으로는 이 전 총재에게 ‘겁만 주는’ 형태로 압박하고 있다. 이 후보의 최측근이자 선대위 총괄기획팀장인 정두언 의원은 “이회창 후보와 관련한 의혹이 여러 건인데 그 내용이 밝혀지면 대선 후보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파멸할 것이다. 2002년 대선잔금 횡령 의혹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파괴력이 있는 것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 의원은 “언제 이 전 총재 의혹을 공개할 것이냐”라는 물음에 대해 계속 함구하고 있다.
이 후보 측은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비약적으로’ 오르지 않을 경우 계속해서 ‘관리모드’로 대응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이명박-이회창-정동영 3자의 지지율 퍼즐 게임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9일 실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이 후보가 39.2%의 지지율을 기록, 여전히 선두를 질주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출마선언 직후에서 답보상태인 20.2% 수준에 머물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11.6%로 두 자리 수 지지율까지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이를 토대로 보면 이 전 총재의 출마가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잠식한 것보다 정 후보를 3위권으로 밀어내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 후보 측은 최근 유세에서 이회창 후보에 대한 공격보다 현 정권의 실정을 부각하고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이 전 총재의 출마가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자신감과 함께 향후 연대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이 전 총재를 정동영 후보를 계속 3위로 누르는 ‘페이스 메이커’ 정도로만 끌고 갈 경우 대선 전략에 굳이 손해볼 것이 없다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세 번째로 이명박 후보 측은 최근 곽성문 김병호 의원의 잇단 탈당으로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에도 골몰하고 있다. 일단 캠프에서는 두 의원의 탈당에 대해 돌출행동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캠프 한 관계자는 “두 의원 모두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를 맹비난한 뒤 그쪽으로부터 ‘찍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년 총선을 겨냥해 일찌감치 짐을 싸고 나갔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진심’은 여전히 이 후보와 ‘동행’하는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 전 대표가 최근의 호남 지역 지원 유세에서 이명박 후보의 실명을 몇 번씩 거론하며 ‘화끈하게’ 연설을 해준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또한 앞서의 캠프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BBK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 유세 일정 확정을 유보하겠다’라고 말하며 ‘조건부 지원’을 언급한 것도 따지고 보면 친박 그룹 진영의 ‘강온’ 양대 세력을 의식한 절묘한 절충식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된다. 또한 내년 총선 공천과 당권을 담보로 이 후보와 일종의 기 싸움을 벌인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원칙주의자 박 전 대표가 결국 대선에서 이 후보를 지원해줄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박 전 대표가 대선 직전 이명박 후보를 버리고 이 전 총재와 손을 잡은 뒤 내년 총선을 겨냥, 영남권 보수 신당 창당을 위한 연대를 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이회창 전 총재 측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천동지할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것도 박 전 대표와의 연대를 통한 보수신당 창당이라는 ‘밀약’이 있었기 때문에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지난 재보궐 선거 공천 탈락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장시간 독대하며 향후 정국에 대해서도 ‘농밀한’ 대화를 많이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내침을 당한 강 팀장이 정치적 재기를 꿈꾸며 박 전 대표와 이 전 총재와의 연대를 거의 성사시켰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 측은 이러한 시나리오에 대해 “어차피 대선 뒤 정계는 재편될 것이다. 나갈 사람은 나가야 한다. 하자있는 곽성문 김병호 의원이 나간 뒤 당은 더욱 깨끗해졌다. 한나라당이 수구보수 세력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영남 중심의 당 운영에서 벗어나 제 3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그런 점에서 박-이 연대의 보수신당 창당은 시대를 역행하는 바보같은 행동”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네 번째로 이명박 후보 측이 대선 승리를 목전에 두고 가장 우려하는 변수는 바로 ‘방송’이다. 특히 MBC와는 최악의 대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후보 측으로서는 MBC가 BBK 사건과 관련해 에리카 김과의 인터뷰(손석희의 시선집중)를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내는 등 편파적인 방송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일부 방송이 BBK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에도 계속 그 문제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으로 보고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이 후보 측은 방송과의 전면전을 선언할 정도로 강공 일변도로 나가고 있다. MBC 100분 토론에 연이어 불참한 데 이어 외곽 조직을 총 동원해 MBC 앞 시위 등을 통해 직·간접적인 압박 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 시위에 가담하고 있는 한 외곽조직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는 계속해서 일부 방송의 편파적 보도에 항의할 것이다. 이렇게라도 견제를 해야 방송에서도 부담을 가질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