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뛰는데…인플레이션이냐 스태그플레이션이냐
하지만 증권사들의 새해 증시 전망은 빗나가기 일쑤였다. 불확실한 시장전망보다 2017년 증시에 영향을 미칠 주요한 변수들을 챙겨보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증권사들 중에서도 주요한 이벤트 중심으로 시장대응을 준비하라고 조언하는 곳이 적지 않다.
2016 증권·파생상품시장 폐장일인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직원들이 색종이를 뿌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리·환율 & 가계부채
증시 최대 화두는 단연 금리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두세 차례 올리면 우리도 금리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금리가 오르면 빚을 낸 가계는 이자부담이 늘어난다. 미국 경기가 더 좋으면 국내에 들어왔던 외국인들의 돈이 빠져나갈 수 있고, 이는 원화 가치를 떨어뜨려 외국인들의 환차손을 촉발시킬 수 있다. 외국자본 이탈의 악순환 구도다.
정부의 재정집행 등으로 경기를 부양해 실업을 최소화하고 자산 가격과 가계소득을 떠받칠 수 있다면 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계부채 문제가 증시를 강타하지 않을 수 있다. 아울러 원화약세가 수출경쟁력을 뒷받침해 기업들의 이익 성장을 크게 이끌어낸다면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을 수도 있다. 정부가 지난달 말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강현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 분명한 것은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경기에 대한 판단이다. 경기가 좋아지는 인플레이션 초기라면 채권보다 주식과 원자재로 확실하게 자산군을 옮겨가야 할 것이고, 경기 개선이 어려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판단한다면 거의 모든 투자자산에서 비중을 줄여 현금성 자산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검수사 & 탄핵심판
상반기 최대 현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심판이다. 특검 수사와 관련해서는 기업인들이 뇌물공여죄로 기소될지 여부와 국민연금에 대한 청와대 외압 사실 관계다. 재벌 총수들이 기소된다면, 특히 구속 기소된다면 증시에 영향을 미칠 만한 재료다. 국민연금도 새로운 운용체계와 지배구조에 대한 변화 시도가 나올 수 있다. 100조 원 규모의 국내 주식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변화는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익명의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을 때도, 증시는 이를 불확실성의 해소로 풀이했다. 같은 논리면 탄핵심판이 기각될 경우 증시에 큰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성난 촛불민심으로 온 나라가 용광로처럼 들끓을 수 있고, 이는 증시는 물론 우리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최근 특검 수사 방향을 보면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입증된다면 뇌물을 제공한 재벌 총수들도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기대선 & 재벌개혁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경우 60일 안에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선 국면에서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또 다시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리스크가 드러날 수 있다. 특검 수사 결과 재벌 총수들이 구속·기소된 상황에서 재벌개혁 정책까지 논의된다면 증시에도 상당한 파장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4·13총선에서 여소야대 구도가 만들어진 데 이어 새누리당까지 쪼개지면서 국회는 야권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보수신당은 안보는 보수지만, 경제에서는 진보적 색채를 담고 있다.
기존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야 3당만으로도 경영권 승계와 총수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각종 법안과 정책이 펼쳐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개혁보수신당까지 합세할 경우 야권 단독 법안 상정(해당 상임위의 3분의 2 이상) 요건을 충족할 수 있어 재벌체제를 위협하는 개혁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민주당에서는 김종인 전 대표, 추미애 대표 등이 보수신당을 향해 재벌개혁 입법 동참을 압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국회의 칼이 재벌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연금과 의결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의 주요 수사사항 중 하나가 국민연금 기금운용 의결권 행사 과정의 문제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대기업의 주요주주 또는 핵심주주다. 다른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당장 올 3월 주총 시즌에는 국민연금은 물론 거의 모든 기관투자자들이 깐깐하게 의결권 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특히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외압을 밝혔고,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긴급체포되면서 국민연금기금의 의결권 행사 시스템 자체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해 총 3018개의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안건 중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심의된 안건이 단 한 건도 없다.
민주당은 올 2월 임시국회에서 추진할 개혁입법 중 하나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개별 의원 차원에서 이미 관련 법안들도 속속 발의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제윤경 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을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여권에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1월 22일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주주권행사전문위원회’란 법정기구로 개편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기업 합병과 같이 중요한 사안은 반드시 이 위원회에서 심의·승인하고, 그 세부내용은 외부에 공개하도록 했다.
최열희 언론인
전경련 존립 자체 위기 ‘해체? 변신? 올 대선 후 윤곽’ LG그룹이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삼성도 이미 탈퇴를 공언했다. 현대차와 SK 등이 아직 입장을 유보하고 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후폭풍이 워낙 큰 데다 재정기여도가 절대적인 5대 그룹 가운데 삼성을 포함한 2곳 이상이 탈퇴할 경우 존립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올 대선과 함께 재벌개혁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어서 재계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박은숙 기자 전경련과 함께 재계 양대 축으로 꼽히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역할을 대신하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하지만 대한상의는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설치된 단체다. 운영방식은 물론 회계까지 투명하게 관리돼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보고의무가 있고, 검사도 받는 만큼 운신의 폭도 좁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아우르는 만큼 대기업 이익만 대변하기도 어렵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경련과 마찬가지로 경제 5단체 중 법에 의해 설립되지 않은 임의단체다. 노사관계를 주로 다뤄왔지만 ‘기업경영의 합리화’도 설립목적에 포함되느니만큼 명분은 존재한다. 다만 대기업 총수 입장에서는 가장 껄끄러운 노사문제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재벌단체’로 전환하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단 전경련을 대체할 새로운 재계 단체를 만들기도, 기존 경제단체에 기능을 넘기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그동안 경제 5단체가 정부의 경제정책 파트너로 활동해왔지만,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졌다. 일단 전경련으로서는 최대한 버티면서 여론의 동향을 보며 해체든 변신이든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대선을 치르고 나면 새로운 정부도 재벌 측 창구가 필요할 것이고 이에 따라 전경련의 선택지도 구체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