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한일은행 출신이 돼야” 계파 안배론 등 일축 두 번째 출항 닻 올려
앞서 1월 23일 임추위는 1차 면접을 통해 이광구 행장, 이동건 우리은행 영업지원그룹장, 김승규 전 우리은행 부사장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임추위가 제시한 후보 자격 기준은 금융산업에 대한 이해, 재직 당시 경영능력, 미래 비전, 리더십, 윤리의식과 책임감 등이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제공=우리은행
금융권에서는 이미 이 행장의 연임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행장은 2014년 12월 행장으로 취임한 이후 우리은행의 실적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오랜 숙원이던 지분 매각에 성공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14년 8977억 원이던 우리은행의 영업이익은 2015년 1조 3516억 원으로 상승했다. 2016년 1~3분기 영업이익은 1조 3892억 원으로 2015년의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행장 후보였던 이동건 그룹장은 2014년 3월 수석부행장으로 선임된 후 지금까지 우리은행의 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그룹장은 내실을 튼튼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우리은행 매각이라는 이 행장의 업적을 뛰어넘지 못했다. 김승규 전 부사장은 이 행장을 도와 우리은행 매각을 이끌어낸 주역 중 한 명이지만 현직 프리미엄에서 이 행장에게 밀린 것으로 보인다.
변수는 우리은행 내 계파 간 갈등이었다.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아직까지 상업은행 출신과 한일은행 출신 간 세력다툼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광구 행장과 전임 이순우 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으로 차기 행장은 한일은행 출신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 행장이 현직 프리미엄을 안고도 연임을 장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 그룹장과 김 전 부사장이 한일은행 출신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파벌 타파를 위해 이광구 행장을 지지한 직원도 있었다. 우리은행 한 직원은 “이동건 그룹장이 행장으로 선임되면 출신 은행 간 파벌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며 “검증된 행장을 놔두고 굳이 다른 행장을 선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 행장이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서금회)’의 일원이라는 점이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본 시선도 있었다. 이 행장은 서금회 논란에 대해 “정치 단체도 아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모임에 한 명도 없으며 회비도 없는 친선 모임”이라고 해명했다.
임추위는 이 행장이 서금회 일원이라는 점과 상업은행 출신이라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은 주주들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목표”라며 “내부 파벌이나 이미지보다 실적을 낼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이번 행장 선임 절차가 이전에 비해 투명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고무적이다. 2014년 행장 선임 당시 후보군,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 구성원, 평가항목, 일정 등을 일체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임추위가 후보 선정 과정과 선임 기준을 모두 공개했다. 외부 세력을 차단하고자 차기 행장 후보를 내부 출신으로 제한했다.
이광구 행장이 가장 중점을 두는 계획 중 하나는 금융지주사 전환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우리은행의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예보)는 이번 행장 선임에 관여하지 않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정부 관계자들은 행장 선임 등 우리은행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말해왔다. 행장 선임 때마다 불거진 ‘낙하산 논란’이 이번에는 그다지 회자되지 않은 것도 이전 행장 선임 때와 달라진 풍경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행장 후보 선정은 임추위원들의 자율적인 토론과 협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며 “정부의 입김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이 행장의 임기는 2년이다. 2014년 이 행장이 취임하면서 2년 안에 우리은행 매각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면서 행장 임기를 2년으로 줄였다. 우리은행 이사회는 이 행장의 연임이 결정된 직후 이 행장과 사업계획을 논하면서 임기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행장이 가장 중점을 두는 계획 중 하나는 금융지주사 전환이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 매각 이후 줄곧 지주사 전환 계획을 밝혀 왔다. 이 행장은 “지주사 전환에 대해 사외이사들과 사전 교감을 많이 한 만큼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을 이른 시간 내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캐피탈 등의 계열사부터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과점주주들이 영위하고 있는 증권은 그 다음, 보험사 인수는 가장 마지막에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은행의 실적 유지와 상승도 이 행장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은행 주주 중 사외이사를 추천하지 않은 유진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재무적투자자(FI) 성격이 강해 주가가 하락하면 보호예수 기간이 만료되는 올해 말 이후 언제든지 주주에서 이탈할 수 있다. 나머지 5곳의 주주는 우리은행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우리은행의 실적이 악화하면 이 행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 행장 역시 “일반 회사에서 최고경영자(CEO) 임기는 주주들에게 달려 있다”며 “2년 임기지만 잘하면 4∼5년도 하고 못 하면 6개월 안에도 그만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지난 2년간 좋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올해 경영환경은 녹록지 않다. 우선 올해 초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을 앞두고 있고 미국의 금리 인상, 부동산 시장 악화 등 악재가 겹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행장은 “자산관리 경쟁력 강화, 플랫폼 네트워크 확장, 글로벌 사업의 질적 성장, IB(투자은행) 강화 및 이종산업 진출 활성화, 사업포트폴리오 재구축 등 5대 신성장동력을 통해 입지를 굳히겠다”며 신성장동력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