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적인 에이즈 캠페인으로 코피 아난 UN사무총장에게 서 상을 받고 있는 다임러의 슈렘프 회장(왼쪽). | ||
다임러 크라이슬러 공장 직원이자 에이즈 캠페인 책임자인 마징코(28)가 동료들을 모아 놓고 에이즈 예방에 관한 특별 강연을 하는 동안 청중 속에서는 연신 킥킥 대는 웃음소리와 함께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콘돔’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수줍은 듯 얼굴이 뻘개지면서 어쩔줄 몰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들어선 안될 것을 들은 양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직원들을 모아놓고 ‘에이즈는 창피한 것이 아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에이즈에 대해 무지한 동료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전한 섹스나 에이즈, HIV 감염 등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에이즈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나의 임무다”라고 마징코는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에는 본인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때문에 무엇보다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먼저 직원들에게 에이즈 감염 여부를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회사측에서 아무리 ‘익명성’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그리고 무료로 에이즈 검사를 실시한다고 홍보해도 에이즈를 수치로 여기고 있던 직원들은 검사를 받으러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보다 못해 결국 간부들이 앞장서서 에이즈 검사대에 올라 실천을 하자 하나 둘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1년이 지난 지금은 매일 30명 정도가 꾸준히 검사실을 찾고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 에이즈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다임러의 캠페인단. | ||
현재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총 5천6백22명의 종업원 가운데 에이즈 바이러스(HIV) 보균자수는 5백명 정도. “이런 추세라면 2005년에는 30명 정도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크리스토프 쾨프케 다임러 크라이슬러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사장은 말한다. 하지만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턱없이 비싼 약값과 의료비 때문에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2천8백50만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의 전체 에이즈 보균자 중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는 고작 3만명 선이다.에이즈에 걸린 경우 연간 치료비는 1천유로(약 1백20만원) 정도. 보통 자동차 조립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이 연 4백50달러(약 54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공장 직원들에게 치료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한 회사측은 에이즈에 감염된 직원들을 위해 의료비를 전액 지원해 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누구나 에이즈 감염 사실을 회사측에 알리면 무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물론 다임러 크라이슬러측의 이런 노력은 순전히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쾨프케 지사장은 “오랜 기간 돈과 시간을 투자해 열심히 키운 기술자가 반년 만에 에이즈로 목숨을 잃는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비생산적인 일인가”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에이즈 프로젝트’에 투자한 금액은 수천만유로. 이 프로젝트는 좁게는 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넓게는 한 나라의 에이즈 확산을 적게나마 방지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현재 남아공 각지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