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에비타 열풍

어려움에 처하면 강력한 지도자를 희구하는 것이 어리석은 민초들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IMF 위기 때 난데 없이 되살아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가 그 좋은 예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아르헨티나에도 그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최악의 정치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을 배불리 먹게 해준 옛 지도자를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 그들에게 그 지도자의 문제점을 아무리 지적해도 귀에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이다. 에비타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아니 애초부터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그녀는 잊혀질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는 에바 페론이 세상을 떠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52년이었다. 당시 33세의 한창 나이였던 그녀를 떠나게 만든 것은 암이었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알아주는 배우였다. 남편 후안 페론이 1946년 정권을 잡으면서 그녀 역시 일약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다. 물론 많은 적들도 만들어 냈다. 부유층이 그들이었다. 에바 페론은 빈곤층과 서민층들을 위해 모든 정책이 돌아가도록 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에비타의 정치적 파워가 너무 커지자 군부도 그녀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일반국민들의 지지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녀는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모금을 했다. 에비타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수백만달러를 모았으며 이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의 여성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병마를 못이기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는 그녀는 이미 ‘전설’이 되어 있었다. 1970년대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노래로 그녀를 찬양했다.

	▲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에바 페론의 생전 모습.

아르헨티나가 1980년대에 들어 군부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돌아서면서 그녀는 더욱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인물로 평가되어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에비타박물관과 그녀가 살던 유럽풍의 맨션을 방문했고 지금도 그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박물관에는 에비타의 화려한 드레스와 모자들, 그리고 사진과 녹음테이프들이 있다.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라는 혹평으로 조금은 주춤하던 에비타 바람은 아르헨티나가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다시 거세게 살아나고 있다. 에비타가 생전에 보여 주었던 ‘열정’이 지금 아르헨티나를 휩쓸고 있는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생전 모습을 담은 포스터들이 전국에 걸쳐 나붙고 있고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녀 흉내를 내고 있다. 대통령선거가 열기를 더해가자 후보들은 정파에 관계없이 에비타의 제스처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생전의 에비타는 두 팔을 밖으로 펼치는 제스처를 즐겨했는데 그것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에비타에 대해 다소 쌀쌀하던 정부에서조차도 그녀를 동전 속 모델로 넣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술 더 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에서는 최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에비타의 사진들을 공개했다.

심리학자들은 에비타의 부활을 두고 “정치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몇 가지의 심리학적 이유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원래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아르헨티나가 경제적으로 가장 형편없는 나라가 되자 국민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정치지도자를 불신하게 됐다는 것.

그러다 보니 화려했던 과거를 보게 됐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의지할 정신적 지주로 에비타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한 언론인은 “그녀는 인간 존엄성과 사회정의를 위해 싸웠다. 그것이 우리가 그녀를 다시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