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법원, 권혁빈 65 대 이화진 35 판결…이 씨 측 확보 35% 지분 매각할지 경영권 견제할지 주목
[일요신문] 이혼을 위해 재산을 나눴는데 회사의 중요한 결정을 놓고 계속 마주해야 한다면 어떨까. 게임기업 스마일게이트 창업자인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와 배우자 이화진 씨가 그런 사이가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재산분할 소송 1심이 회사 지분을 나눠 가지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확정되면 부부관계는 끝나도 주요 주주로서의 관계는 남는다. 이혼이 경영권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에 위치한 스마일게이트 본사. 사진=스마일게이트 제공서울가정법원은 지난 9월 9일 두 사람의 이혼을 인정하면서 권혁빈 CVO가 보유한 스마일게이트 주식 35%와 현금 650억 원을 배우자 이화진 씨에게 넘기도록 했다. 주식평가액을 합친 재산분할 규모는 약 2조 5500억 원으로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인정된 9440억 원의 약 2.7배에 달한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1심 판결이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국내 이혼소송 판결 가운데 최대 규모다.
재판부는 “양측이 장기간 갈등하게 된 경위, 관계 회복 가능성 등을 검토한 결과 혼인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며 “그 책임은 원고와 피고 모두에게 있고, 책임 정도도 대등하다고 봐 원고(이화진 씨)의 이혼 청구는 인용하되 위자료 청구는 기각한다”고 설명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이른바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상장 게임사로 꼽힌다. 2002년 권혁빈 CVO가 창업한 이래, 스마일게이트는 글로벌 메가 히트작을 연달아 배출했다. 스마일게이트의 성장을 견인한 1등 공신은 단연 1인칭 슈팅(FPS) 게임 ‘크로스파이어’다. 2007년 출시된 이 게임은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스마일게이트에 캐시카우로 자리잡았다. 2018년 선보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로스트아크’가 국내는 물론 서구권 등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하면서 특정 IP(지식재산권)에 편중되었던 수익 구조를 성공적으로 다변화했다. 여기에 모바일 RPG ‘에픽세븐’까지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의 지난해 매출은 1조 4365억 원, 영업이익은 3598억 원을 기록했다. 스마일게이트는 경쟁사와 비교해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창업자인 권혁빈 CVO가 스마일게이트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화진 씨는 소송에서 창업 초기 30% 주주였고 친정의 지원도 있었으며, 등기이사와 대표이사로 등재된 이력이 있고 장기간 가사와 자녀 양육을 맡았다며 재산을 절반씩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혁빈 CVO 측은 이 씨가 실제로 출자하거나 근무한 적이 없어 공동창업자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가정법원은 이 씨의 재산 형성·유지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회사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업 능력과 경영 판단에서는 권혁빈 CVO의 기여를 더 높게 평가했다. 재산분할 비율은 권혁빈 CVO 65 대 이화진 씨 35로 정했다.
세간의 관심은 재산분할 규모에 쏠렸지만 이번 판결의 핵심은 주식 35%다. 일반적인 의결권 구조를 전제로 권 CVO는 지분 65%로 이사 선임 등 보통결의 사항을 주도할 수 있다. 그러나 정관 변경이나 합병 등에 필요한 특별결의에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이면서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이라는 요건이 필요하다. 이화진 씨가 자신의 지분 35%로 의결권을 행사하며 반대하면 통과가 어렵다. 다양한 주주권을 활용해 경영진을 견제할 수도 있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 사진=연합뉴스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는 현금을 지급하는 재산분할 방식이 채택됐다. 주요 분할 대상인 SK(주) 주식도 상장돼 있어 시장가격과 매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스마일게이트는 비상장사이고, 이번 1심은 주식 자체를 넘기도록 했다. 돈으로 정산하는 ‘대상분할’은 회사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 배우자가 처분하기 어려운 주식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현금 마련을 위해 주식을 무리하게 처분해야 한다면 당사자 사이의 형평을 고려해 주식을 직접 나누는 ‘현물분할’이나 두 방식을 혼용하는 방안이 쟁점이 된다.
권혁빈 CVO와 이화진 씨 모두 1심 결과에 승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권 CVO는 이 씨의 경영기여분이 거의 없다는 주장이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다, 분할 방법에서 현금 정산이 배제된 점이 불만일 수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현재 권 CVO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배당, 상장 등 경영권을 지키면서도 대규모 현금을 만들 방법이 적지 않다. 스마일게이트의 2025년 말 기준 이익잉여금은 3조 5482억 원이나 된다.
1심에서 법원이 지정한 감정인은 상속·증여세법 기준 평가와 현금흐름할인법(DCF) 등을 사용해 스마일게이트 기업가치를 평가했는데, 4조 9000억 원대에서 8조 160억 원까지 격차가 났다. 이후 보완감정 과정에서 할인율과 순자산 반영 방식 등이 조정되면서 평가액은 7조 1049억 원으로 정해졌다. 항소심에서 현금 정산이 가능해진다면 권혁빈 CVO 입장에서는 평가액을 최대한 낮추려 다시 시도할 만하다.
반대로 이화진 씨는 초창기 경영 기여까지 고려하면 35%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노소영 관장 소송에서 노 관장은 직접적인 경영 기여 없이도 33%의 분할 비율을 인정받았다. 현금 정산은 이 씨에게도 검토할 만한 선택이다. 35%의 주주권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현금으로 바꾸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권혁빈 CVO가 지분 65%로 경영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이 씨 혼자 상장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제3자에게 지분을 팔 수는 있지만 상장 시점이 불투명하고 경영권도 확보하기 어려운 비상장 지분을 살 투자자를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유동자산이 유동부채의 약 6배이고 영업에서 매년 수천억 원의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이처럼 자체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면 회사가 상장을 서두를 필요성은 크지 않을 수 있다. 이화진 씨가 회사의 성장을 함께 누릴 주주로 남을지, 현금을 받고 관계를 정리하려 할지는 분할 비율 못지않게 중요한 선택이다.
'관계 파탄 뒤 법적으로 더 끊기 어려워…' LG가 김영식-구광모 파양 소송 아이러니
구광모 LG 회장과 양어머니 김영식 씨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9월 3일 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 이은주 판사는 김영식 씨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낸 재판상 파양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전경. 사진=박은숙 기자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전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이다. 외아들을 사고로 잃은 구본무 전 회장이 그룹 승계를 위해 2004년 조카인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들였다. LG그룹의 ‘장자 승계’ 전통에 따른 것이다. 구 회장은 ‘모’자 항렬 가운데 가장 연장자다.
2018년 별세한 구본무 전 회장은 보유한 (주)LG 지분 11.28%를 포함한 재산에 대해 법적 효력을 갖춘 별도의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다. 가족 간 협의에 따라 구광모 회장이 8.76%,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가 2.01%, 구연수 씨가 0.51%를 상속했다. 김영식 씨는 (주)LG 지분을 받지 않았다.
2023년 김영식 씨와 두 딸은 “상속재산을 다시 분할하자”며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냈다. 세 모녀 측은 구 회장이 지분을 더 많이 가져가는 대신 이들의 상속세를 부담하기로 했는데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LG 측은 합의 내용대로 이행했다며 반박했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유효하게 작성됐고 그 과정에 기망행위가 없었다며 구광모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세 모녀 측은 구본무 전 회장의 재산을 법정상속 비율인 배우자 1.5, 자녀 각각 1의 비율로 다시 나눠야 한다며 항소했다.
만약 구본무 전 회장의 (주)LG 지분 11.28%만 법정상속 비율대로 나눴다면 김영식 씨가 약 3.76%, 세 자녀가 각각 약 2.51%씩 받게 된다. 2018년 당시 기존 지분까지 합하면 김영식 씨는 약 7.95%, 구광모 회장은 약 8.75%가 된다.
김영식 씨는 현재 (주)LG 지분 4.37%를 갖고 있다. 구광모 회장 16.60%, 구본식 LT그룹 회장 4.66%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상속회복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24년 11월 김영식 씨는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재판상 파양 청구 소송도 냈다. 양부모가 양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 파양을 청구할 수 있다는 민법 제905조 제2호가 근거다.
1심에서 패소했지만 김영식 씨는 항소 등을 통해 법률상 모자관계의 해소를 계속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파양의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김영식 씨와 구광모 회장은 법적으로 모자 관계다. 이 관계가 유지되는 한 구 회장은 김 씨 재산의 상속인이다. 김 씨가 유언으로 보유한 (주)LG 지분 전부를 두 친딸에게 물려줘도 구 회장은 유류분을 청구해 자신의 몫에 해당하는 재산가치를 받을 수 있다.
상속권 상실제도가 있지만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이나 심히 부당한 대우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추고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재판상 파양 사유와 상당 부분 겹친다. 김영식 씨가 구 회장에게 자신의 재산이 일부라도 넘어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으려 한다면 파양은 사실상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반대로 구광모 회장은 파양에 동의할 경제적 유인이 크지 않다. 성년 양자와 양부모는 협의로 파양할 수 있지만, 이미 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더라도 법적 친자관계를 유지하는 쪽에 경제적 이해가 있다면 협의파양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관계가 파탄난 뒤 오히려 법적으로는 더 끊기 어려운 사이가 되는 아이러니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전 회장의 양자이지만,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 자격도 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친부가 가진 (주)LG 지분 3.17%도 대부분 물려받을 가능성이 크다. 공고한 지분율만 20%다. 이사회도 장악하고 있다.
반면 김영식 씨와 두 딸의 (주)LG 지분율은 8.15%다.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 다른 가족 주주들의 지지를 모두 받지 않는 한 구광모 회장에 열세다. 가부장적인 LG그룹 문화를 감안하면 다른 구 씨 형제들이 김 씨 편에 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김영식 씨 모녀의 지분율만으로도 경영권 견제는 충분히 가능하다. 구광모 회장과 (주)LG 주식 공동보유관계를 해소하면 주주총회에서 별도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1~4%의 가족지분이 경영권에 큰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주주가 둘 이상으로 갈리고 주총 표 대결이 벌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각각의 지분에는 캐스팅보트로서 새로운 협상가치가 생긴다.
최열희 언론인 journalist@ilyo.co.kr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