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미모와 몸매로 패션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던 그녀는 이미 뉴욕과 몬트리올의 밤거리에서도 유명한 인사가 되어 있었다. 돈과 명예를 가득 지닌 남성들이 그녀와 사귀기 위해 줄을 섰다. 물론 이 같은 인기가 그녀로서는 불행과 비극의 씨앗이었다.
그녀가 살해당한 이후 경찰은 모두 40명에 이르는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조사했다. 그들을 통해 그녀의 ‘그 날 밤’을 재구성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용의자로 떠오른 사람들은 있었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 20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패션 모델 마리 앙토인. 그녀의 원한에 찬 죽음의 진상이 이제서야 밝혀졌다. | ||
그는 몬트리올에서 대표적인 부자집에서 태어나 퀘벡주에서 가장 유명한 방송인이 되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면서 수많은 여성들과 어울려 다녔다. 물론 그 같은 향락의 뒤에는 언제나 코카인이 있었다.
분방하기 이를 데 없던 그는 몬트리올은 물론, 뉴욕의 사교계에서도 알아주는 바람둥이였다. 두 도시는 당시 세계를 휩쓸던 디스코 열풍의 중심지였다. 그는 이 두 도시의 제왕이었고 떠오르는 샛별 앙토인은 그가 즐기려는 한 여자에 불과했다.
죽은 자의 혼백이 그를 괴롭혔던 것일까. 20년 만에 범인의 윤곽이 드러난 것은 몽쁘띠 자신의 고백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자신과 사귀던 2명의 여자에게 “내가 마리 앙토인을 죽였다”고 고백을 했다. 그리고는 앙토인을 죽인 지 5년이 지난 1987년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코카인 남용으로 사망했다.
15년 동안 침묵을 지키던 2명의 몽쁘띠의 여인 중 한 명이 최근에서야 진실을 말했고, 경찰이 다시 그 정황증거 잡기에 나섬으로써 사건의 실체가 비로소 드러났다.
사실 범행 후 곧바로 몽쁘띠를 잡을 수도 있었다. 앙토인의 여자친구 중 한 사람이 사건 당일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서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살인자마저 죽고 세상에 없는 상태에서 범인을 잡았다며 호들갑을 떠는 경찰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