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11~14시의 기록…취재기자 폭행 등 아수라장 속 ‘갑호비상’ 경찰 소극적 대응
10일 오전 11시 최종 선고가 시작된 지 20여 분이 흘렀을까.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세 번의 ‘그러나’로 온 국민을 들었다 놓고 나서야 마침내 주문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초유의 역사적 결정을 안국역 사거리 4번과 5번 출구 사이에 마련된 일명 ‘태극기 집회’ 한복판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해들었다. 그러나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그들은 탄핵이 결정된 지 1분이 넘게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탄핵 기각’을 연호하고 있었다.
# 11:00 분노한 집회 참가자, 눈에 보이는 것은 ‘기자’뿐
갑자기 함성이 멈추고 30초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주위에서 “인용이래? 인용됐대?” 하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도 소식을 접했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목 놓아 우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대통령직 파면 발표가 전해지자 아무런 말도 이어나가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사진=봉성창 기자
표정을 보니 대부분 ‘올 것이 왔다’는 느낌보다는 ‘예상치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헌재 발표가 있기 전 중앙 무대에서도 기각 결정을 당연시 여기고, 1주일 동안 전국에서 태극기 축제를 벌이자며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마이크를 든 진행자는 일단 기자들을 모두 무대에서 내려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싸움은 시작이니 할복이나 분신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질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의 성난 분노는 즉각 주변의 기자들에게 향했다. 기자들과 참가자들 사이에서 고성과 욕설이 오가고 일부는 부상을 당했다. 사진=봉성창 기자
그러나 순간적으로 폭발해버린 집회 참가자들의 분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중앙무대 턱 밑까지 달려들었다. 질서 유지선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때였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무대 좌우로 빠지고 있는 기자들에게 달려들었다. 당장 분노를 풀어낼 곳이 없었던 상황에서 주변에 보이는 것은 집회 참가자 이외에 기자뿐이었던 것이다.
한 집회 참가자가 펜스를 집어던지며 무대로 달려가고 있다. 사진=봉성창 기자
이들은 카메라와 사다리 그리고 가방 등을 붙잡고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는 주먹으로 기자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기자들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욕설이 오고갔지만, 기자들은 일단 빼고 보자는 분위기였다. 한 집회 참가자는 일본 아사히TV 기자에게도 다가가 어디서 왔냐며 으름장을 놨다. 일본 기자라고 하니까 별 다른 말없이 돌아섰다.
# 12:00 ‘헌재를 박살내자! 돌격!’
무대 아래가 아수라장이 되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에서 ‘헌재를 박살내자’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때까지 질서를 강조하던 사회자 대신 검정 선글라스를 쓰고 군복을 입은 다른 사람이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분위기가 급변했다. 무대에서는 연신 ‘돌격’을 외쳤고 사람들은 무대 왼쪽과 오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어디서 밧줄을 구해왔는지 사거리에 설치된 차벽(방어벽)을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안국역 2번 출구로 올라가는 길은 경찰이 사전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이 호흡곤란으로 실려갔다. 사진=봉성창 기자
기자는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취재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안국역에서 헌재로 연결되는 통로는 2번 출구. 그러나 이곳은 새벽부터 경찰이 출입을 통제한 곳이다. 이곳에서도 일부 기자들이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참가자는 한 여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다가 다른 기자 들이 간신히 뜯어 말리기도 했다.
이후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봉쇄된 2번 출구를 뚫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과정에서 최소 3명이 의식을 잃고 실려 나갔다. 경찰은 방패나 곤봉 없이 스크럼을 짜고 철저히 버티기만 했는데,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가운데 대치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 호흡곤란을 호소한 것이다.
한두 명 씩 허술한 방어를 노리고 넘어오기 시작하자 경찰은 집회 참가자 안전을 감안해 방어선을 잠시 뒤로 후퇴했다. 사진=봉성창 기자
막아서는 경찰에 대한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경찰이야 말로 종북이자 빨갱이”라며 “대한민국 국민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는 절규가 터졌다. 시종일관 경찰은 적극적인 진압 대신 참가자보다 더 많은 숫자의 병력을 세워 버텨나갔다.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디선가 지하철 내부에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해보니 한 경찰이 지하철 밖에 누군가 뭘 태운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거리의 크기보다 방어벽 크기가 작아 양쪽에 여백이 생긴다는 거였다. 그 여백을 막기 위해 전투 경찰들을 빼곡하게 세워났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는 양쪽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일부는 경찰이 세워놓은 버스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억지로 끌어내리기 보다는 계속 자제를 주문했다.
지하철 입구 진입이 막히자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 차벽을 올라가 건너가기도 했다. 사진=봉성창 기자
# 13:00 1차 방어벽 붕괴, 그러나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은 도넛 가게가 있는 오른쪽 코너에서 경찰을 끊임없이 밀어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경찰의 양해를 구해 방어벽 뒤로 돌아 들어갔다. 20분쯤 지났을까. 경찰 방어선 뒤에서 보니 집회 참가지 몇 명이 슬금슬금 전경을 밀어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듯,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결국 수백 명의 사람들이 넘어오며 아수라장이 됐다.
1차 방어벽 뒤 약 50m 떨어진 곳에는 버스 2대로 만든 2차 방어벽이 설치돼 있다. 이곳을 넘으면 사실상 헌법재판소 앞이다. 경찰들도 이곳은 뚫리지 않기 위해 결사 항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내 방패를 들어 두텁게 스크럼을 짰다. 그리고 더 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합류하지 못하도록 곳을 다시 막았다. 1차 저지선과 2차 저지선 사이의 공간 자체를 전경으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바둑으로 따지면 수를 메워버린 것이다.
1차 저지선이 뚫리고 나자 경찰은 더 많은 병력을 2차 저지선에 배치하며 총력을 다해 막았다. 사진=봉성창 기자
1차 저지선을 넘어온 이들은 더욱 격렬하게 2차 저지선을 뚫기 위해 노력했다. 길 양쪽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 옆 건물로 넘어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됐다. 중앙 무대에서는 사람이 죽었다며 경찰의 폭력성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이러한 가운데 지휘관으로 보이는 경찰 간부는 마이크를 대고 끊임없이 이성을 잃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집회 참가자 중 한 명이 방송사에서 설치한 카메라와 삼각대를 집어 던져 경찰로부터 제지를 받고 있다. 사진=봉성창 기자
갑자기 오른쪽 구석에서는 백발을 한 참가자가 금속으로 된 긴 물체를 들고 건물 사이를 뛰어넘었다. 위에서 전경들을 공격하기 위해서다. 경찰 몇 명이 지붕위로 올라가 쩔쩔 매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자칫 낙상을 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경찰이 해당 참가자를 제압하자, 다시 집회 참가자 사이에서 경찰이 노인을 죽였다며 손가락질 했다.
쇠로 된 긴 막대기를 구해 경찰 저지선을 뚫어보려는 한 집회 참가자. 사진=봉성창 기자
계속 경찰이 작심하고 막아서자 시위대는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더욱이 헌재 앞으로 간다고 해도 정문에는 또 다시 경찰 버스가 막고 있었다. 뒤에서 또 다른 집회 참가자들이 보충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면에 선 사람들의 체력은 계속 떨어져 갔다. 몇 명은 탈진한 듯 아예 길거리에 누워 버렸다.
대치가 계속 이어지자 일부 참가자들은 아예 길에 누워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봉성창 기자
그럼에도 성난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경찰들의 방패를 뺏고 보호 장구를 벗기는 등 격렬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호칭은 깍듯하게도 ‘아버님, 어머님’이었다. 한 집회 참가자가 앳된 외모의 전경의 뺨을 때리자 옆의 전경이 이를 말리며 말했다. “아버님. 얘는 애기예요. 제발 애기란 말이에요.”
# 14:00 끝나지 않은 분노 “헌재가 나라 망친 국치일”
경찰은 태극기 집회 참가자를 자극하지 않고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물대포도 없었고, 방패로 찍어 누르지도 않았다. 몇 차례 폭력 시위를 자제해달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이는 경고가 아닌 당부로 들렸다.
교착상태가 계속되자 곳곳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한 참가자는 “헌재가 나라를 박살낸 국치일”이라며 “나도 헌재를 박살내고 죽겠다”고 했고, 다른 참가자는 “우리나라를 드디어 빨갱이들이 점령했으니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미국이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비교적 젊어 보이는 기자에게 다가와 “젊은 사람이 앞장서서 경찰들을 하나씩 끌어내라”고 주문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이나 숫자를 감안하면 2차 저지선을 돌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끊임없는 탄식을 뒤로 하고 기자는 현장을 빠져나왔다. 지금까지 살면서 ‘죽겠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하루였다.
봉성창 비즈한국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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