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은 ‘여’로 굽고 칼은 ‘야’로 휘나?
▲ 돈 공천 의혹을 받고 있는 친박연대 양정례 당선자(왼쪽)와 신성해운 감세로비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광재 의원. | ||
검찰은 지난해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제기된 고소 고발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박계동 곽성문 의원 등이 이미 검찰 조사를 받았고 통합민주당 이해찬 박영선 서혜석 김종률 김현미 의원 등에 대해서도 조만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신성해운 감세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부인을 24일 전격 소환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권 거물급들이 검찰 사정권에 포함돼 있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면서 ‘음모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검찰발 ‘정계개편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면서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걸리면 친다.”
총선 당선자를 대상으로 거침없는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검찰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말이다. 이미 3명의 당선자를 구속한 검찰의 칼날은 여전히 정치권을 향해 예리한 칼끝을 겨누고 있다.
지역구 당선자와 마찬가지로 비례대표 당선자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문제는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될 경우 같은 당 후순위 후보자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이 승계되는 게 아니라 아예 결원으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검찰의 사정 의지와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18대 국회의원 정수(299명)가 조정되는 말 그대로 검찰발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수의 비례대표 당선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70명에 달하는 지역구 당선자가 검찰 수사망에 걸려 들었다는 사실도 검찰발 정계개편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요신문>이 검찰과 언론사 자료 등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4월 25일 현재 지역구 당선자 70명이 검찰에 입건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35명으로 절반을 차지했고 민주당 18명, 자유선진당 3명, 친박연대 2명, 민주노동당 1명 순이었다. 무소속 당선자도 11명이나 됐다.
18대 총선과 관련한 공소시효(10월 초)를 감안하면 당선자 내지는 18대 국회의원 신분으로 입건될 대상자는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입건된 당선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 및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재선거는 불가피한 실정이고 무더기 당선 무효형이 확정될 경우에는 ‘미니 총선’ 정국이 도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18대 총선 결과 아슬아슬한 ‘여대야소’ 정국으로 재편됐지만 재보선 대상 지역 및 그 결과에 따라 거대 여당이 탄생하거나 반대로 ‘여소야대’ 정국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7대 총선에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과반(152석) 의석을 확보했지만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여소야대’ 정국에 직면했던 사례가 있다.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은 당선자 11명 중 열린우리당 소속이 6명이나 됐고 열린우리당은 이들 11곳에서 치러진 재선거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이후 치러진 8곳의 보궐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은 완패를 당해 결국 의석 수는 142석으로 줄어들었다.
따라서 18대 총선이 끝난 지 20여 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지역구 당선자 70명이 입건된 사실과 그 어느 때보다 정치권에 대한 사정 의지가 강한 검찰의 매서운 칼날에 비춰볼 때 17대 때보다 많은 지역에서 재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벌써부터 ‘미니 총선’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서도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마친 검찰은 조만간 야권 의원들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이미 정봉주 민주당 의원 등이 BBK 사건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된 상태여서 야권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상당수 의원들이 사법처리 대상에 오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손학규 박상천 민주당 공동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을 향해 ‘야당 탄압’ ‘정치 보복’ 등을 외치며 대선과 관련한 형사 고발건을 모두 취하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이번 총선에서 생존한 몇 명 안 되는 친노 인사 중 하나인 이광재 의원을 겨냥한 검찰의 칼날도 예사롭지 않다. 해운업체인 신성해운이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정·관계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4월 24일 이 의원의 부인을 전격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 의원 부인이 신성해운 측 정·관계 로비 창구 역할을 맡았던 K 씨로부터 2004년 1000만 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검찰이 전직 대통령 측근을 비롯해 야권 정치인을 겨냥해 거침없이 사정 칼날을 휘두르자 야권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며 조직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비례대표 ‘돈 공천’ 논란에는 정치 관행상 여당인 한나라당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은데 검찰의 사정 칼날은 야권 비례대표 및 지역구 당선자만 우선적으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에 입건된 지역구 당선자 수는 한나라당이 제일 많은데도 지금까지 검찰의 칼날은 야권 당선자에게만 부쩍 다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일부에선 6월 4일 기초단체장 재·보궐선거 때까지 검찰의 공세가 주로 야권을 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고 있다.
이런 까닭에 야권 일각에선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여권 핵심부가 ‘야당 죽이기’ 내지는 ‘야당 길들이기’ 차원에서 사정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검찰 사정권에 야권 거물급 인사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이란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자 야권은 더 이상 참지 말고 대여 강경투쟁으로 맞서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사상 유례 없는 대대적인 당선자 수사와 맞물려 정치권 사정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검찰의 칼날이 과연 어디까지 향하고 또 그 칼끝은 누구를 겨냥하게 될까. 여의도를 뒤덮고 있는 검찰발 ‘먹구름’이 정치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