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종․1070건의 공문서를 날자별로 기록, 사법판결문 내용이 최다
-관찰사 부임, 인사고과, 우역(牛疫)돌림병 처방 등 다양한 사회상 기록
완영일록 번역(상) 발간 표지 <전북도 제공>
[전주=일요신문] 정성환 기자 = 전북도는 조선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이자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한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쓴 ‘완영일록(完營日錄)’ 1차 번역본을 출간했다고 15일 밝혔다.
완영일록은 서유구가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던 1833년(순조 33) 4월부터 1834년(순조 34) 12월까지 전라도 감영, 즉 완영(完營)이 있는 전주에서 지방 통치와 재정 운영에 관여해 수행한 공무를 일기 형식으로 서술한 기록이다.
8권 1책으로 구성된 완영일록은 13종, 1천70건의 공문서를 날짜별로 기록한 행정일기로 원본은 성균관대 존경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전북도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완영일록 1∼4권의 번역을 마무리했다.
이 일기의 1833년 6월 15일 기록을 보면, 관찰사가 전라도 수령 등 70명에 대한 상반기 인사고과 내용도 상-중-하로 기록했다.
광주 목사 조운명의 평가는 ‘상’이었는데, 일을 마무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정사가 맑고 송사가 간략하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조운선(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의 곡식은 어디 갔는가”라는 코멘트가 달린 해남 현감 백귀진의 인사고과는 당연히 ‘하’였다.
백귀진이 곡식을 빼돌렸다는 것을 관찰사가 이미 알고 있었다.
서유구는 비록 전라도가 아닌 서울 경화사족 출신이지만 46세때인 1799년에 순창군수를 역임하면서 농업정책을 마련했다.
이후 줄곧 전라도 지역의 농촌과 농민들의 현실에 관심을 갖았고, 70세 나이에 전라감사에 부임하기에 이르렀다.
풍석 서유구 초상화(1764~1845) <전북도 제공>
이는 서유구의 대표적인 저서인 조선 최고의 생활문화 백과사전으로 꼽히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토대가 되는 지역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전북도는 평가했다.
현존하는 관찰사의 기록물은 신변잡기나 개인의 기록 등이 수록된 내용은 확인할 수 있으나 사법, 행정, 군사 등 관찰사 제반 공문서 기록으로는 완영일록이 유일한 자료라고 덧붙였다.
노학기 전북도 문화유산과장은 “완영일록은 실학자이자 관료로서의 서유구의 면모뿐 아니라 전라도의 사회상과 생활사에 대한 기록이 생생히 담긴 또다른 전라북도의 보물이다“면서 ”향후 완영일록 번역을 통해 전라감영 복원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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