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원정 범죄단 사건을 심층보도한 일본 <주간문춘>. | ||
1999년 이후 일본 도쿄의 스기나미구, 세타가와구 등지에서는 부유한 집안의 현금과 귀금속만을 전문으로 노린 16건의 강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모두 미해결 사건으로 남은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일본경시청이 이미 해결된 16건의 사건 중 범행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5건의 강도살인사건이 한국인 범죄단체의 범행이라고 단정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일본의 <주간문춘>이 보도했다.
서울 압구정동의 번화가. 그 한켠에 자리한 빌딩 2층에는 롤렉스, 불가리, 피아제 등 중고 고급손목시계를 시세보다 싸게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한 ‘A’점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지난 4월 하순 서울지방검찰청 외사부 수사원과 일본에서 파견된 경시청 조직범죄대책2과 수사원 등 모두 합쳐 7명이 들이닥쳤다. ‘A’의 점장은 곧바로 외사부 취조실로 연행되어 갔다.
거의 같은 시각 일본. 역시 경시청 조직범죄대책2과는 도쿄 우에노 오카치마치, 신주쿠 가부키초, 닛포리 등지에 있는 아파트를 가택수색하고 있었다. 가택수색 후, 경시청에 차례차례 연행되는 사람은 모두 5명의 한국인 남성. 아지트에서는 도난품으로 보이는 시계와 귀금속이 압수되었다.
마치 만화에서나 나옴직한 이 수사장면은 이날 이후 5월 중순까지 경시청이 주가 되어 한국인 절도단의 아지트로 추정되는 도쿄의 아파트, 오락실, 한국기독교단체시설 등을 차례대로 수색해 나갔다. 그러나 가부키초에 있던 한국의 ‘지하은행’(부정송금 아지트) 등에는 정보가 사전에 유출되어 한걸음 차이로 관계자를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일본 경시청이 이렇게 극비리 주한일본대사관을 통해 한국 법무부, 지방검찰청에 수사의뢰서를 제출한 것은 지난 4월 초순. 한일수사당국이 공세를 취하고 있는 이 사건은 일본 도쿄 도내에서 미해결로 남아있는 한국인 강도집단 ‘K호’의 범행으로 보이는 재산가 연속강도살인사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5건의 살인사건의 범인들은 ①눈만 뚫린 모자와 장갑을 사용 ②경비회사 방범시스템을 꿰뚫고 있음 ③피해자 전원을 결박해 재갈을 물렸음 ④반드시 가족 중 한 사람에게 금고까지 안내하게 했으며, 현금과 귀금속 외 주식, 골프회원권, 예금통장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음 ⑤세심하게 현장 예비조사를 했다는 것 등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5건의 사건이 동일한 한국인 단체의 범행이라고 단정짓게 된 것은 차량 추적결과 때문.
5건의 사건 현장에서는 모두 사건 직전 똑같은 흰색의 경차가 목격되고 있었다. 이 차의 번호판을 알아내 경로를 추적해본 결과 모두 범행현장 주변을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용의자들이 범행현장에 대한 예비조사를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조사 결과 이 흰색 경차의 소유자는 도쿄 도내에 거주하는 재일한국인으로 밝혀졌다. 일본 경시청 수사원은 이 경차를 미행해 우선 용의자가 자주 들르는 곳을 알아냈다. 그리고 아지트라고 생각되는 몇 곳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해 감시를 계속했고, 이윽고 접촉자를 선정하고 범인 선별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들 멤버의 대부분은 관광비자로 입국한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사건을 저지른 후 바로 나리타공항을 이용해 출국해 버려 곧 추적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결국 한국에 요청해 공조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이 급전개되는 단서가 되었던 것은 지난해 11월4일 벌어진 아다치구 호키마 강도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피해를 입은 일본 부동산회사 사장이 도난품으로 신고된 고급손목시계 8개 중 1개가 서울 강남의 고급 손목시계점 ‘A’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을 4월 상순에 일본 경시청이 알게 된 것.
일본인 피해자가 ‘A’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자신의 손목시계 사진을 보게 되었고, 이를 경시청에 통보했다. 현지수사원이 ‘A’에서 현물을 확인한 결과, 시계 뒷면에 피해자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 확실한 피해품이 맞다고 단정지었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A’ 오너의 경력은 ‘일본에서 수십 년 동안 고급 브랜드 손목시계 등 명품 공부를 했다’고만 간단히 소개되어 있는데, 과연 ‘A’점포가 사건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하고 있는지 아직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다.
또한 현재 일본에서 실시했던 일제수색에서 경시청이 신병을 확보한 5명의 한국인은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열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불법체류 사실 이외에는 대부분 진술을 하지 않는데, 조사가능 기한이 지나면 한국으로 강제송환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경차의 소유자인 재일한국인은 안내역, 실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은 단기비자로 출입국을 반복하고 있는 4∼6명의 한국인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멤버의 대부분이 위조여권으로 입국하고 있어 진짜 이름을 알 수 없다. 수사 결과 이들 중 두 사람의 본명은 확실해졌고, 현재 서울지방검찰청에 신변확인을 의뢰해 놓고 있다.”
경시청은 도쿄 도내에서 발생한 5건의 사건에 대해서 발생 당시부터 국제조사과의 수사원을 투입해 이 사건들을 단순한 ‘주택침입강도’ 사안으로 보지 않고 ‘국제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전개해 오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사건과 관계된 것으로 보이는 한국인 범죄조직 ‘K호’가 일본의 관서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사카, 고베를 포함한 관서지방에서는 1989년 8월3일부터 99년 5월에 걸쳐 한국인 조직 ‘K호’가 재산가의 집을 터는 연속강도사건이 30건이나 발생했다. 이 일련의 사건은 모두 입에 재갈을 물리고 피해자를 결박하는 동일한 수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1999년 5월 이들은 도요나카시 공무원 집에 들어가 똑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르던 중 여성 한 명이 질식사한 이후 관서지방에서 종적을 감췄다.
이후 범인의 한 명으로 알려진 한국인 양아무개씨, 안내역의 재일한국인 이아무개씨, 일본인 이케가미씨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K호’ 사건은 한 차례 결말을 고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해명되지 않는 점이 아직 남아 있다. 현재 이들 세 사람의 공판은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계속되고 있는데, 공판기록을 풀어보면 도쿄 도내에서 발생한 5건의 사건과 범행수법부터 사건의 전개까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K호 사건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이들 범죄단체의 멤버 구성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수사가 막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경시청은 도요나카 공무원집 강도살해사건의 일당을 이미 체포된 실행범 양씨, 안내역 이씨, 이케가미씨 외에도 한국으로 도망간 실행범 또다른 이아무개씨와 손아무개씨 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공판기록에는, 운전도 하고 정보제공도 했던 또다른 한국인 K씨(미검거), 폭력단 관계자 등 복수의 정보제공자(모두 미검거)도 있는 것으로 적혀있다.
당시 사건 주모자의 한 사람인 양씨는 1999년 5월 도요나카 살인 사건 이후 1년9개월 동안 일본에 입국하지 않다가, 다음해인 12월 나리타 공항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양씨는 그 후 월 1회 꼴로 나리타공항을 통해 입국. 새로운 강도조직을 결성하고, 활동의 장을 도쿄 도내로 옮겼으나 1년 후인 2001년 4월, 미나토구 롯폰기에서 절도 현행범으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경시청 관계자는 “양씨가 새롭게 결성한 조직의 잔당이 현재 도내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인 조직의 멤버와 연결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멤버 구성이 거의 파악되지 않아 추적조차 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체포된 양씨 일당의 진술기록을 보면, 피해자들을 협박하는 등의 일본어는 안내역이 실행범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배당은 실행범이 분배했으며 안내역, 정보제공자에게는 20∼30% 정도가 돌아간다. 이들은 또 ‘동료가 된 이상 배신은 용서하지 않는다’, ‘금고가 있는 집을 찾아라. 금고가 있는 집은 탈세금을 숨겨놓고 있다. 도둑맞아도 신고할 수 없다’는 나름대로의 철칙도 가지고 있었다고.
강탈한 귀금속, 보석, 시계 대부분을 한국의 블랙마켓으로 가지고 가 돈으로 교환했다. 한일관계만큼이나 복잡한 이 사건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나올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나운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